"20채씩 보고 계약 안 해".. '발품비' 논란에 중개사들 '씁쓸'

나진희 2021. 2. 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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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재미 삼아 몇 달 내내 20 몇집을 보고 결국 계약 안 한 손님도 있어요.”

서울 성북구 소재 한 공인중개업소 김모 소장이 16일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중개사들은 이러한 손님들을 소위 ‘쇼핑고객’이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중개사를 대동해 실컷 집 안 곳곳을 구경하며 사진까지 찍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핑계로 끝끝내 계약하지 않는 손님 유형이다.

김 소장은 “손님 퇴근 시간 맞춰 늦은 저녁이고 주말이고 집주인 허락 받아가며 집을 보여줬는데 미안해하는 기색도 하나 없었다”며 “중개사들이 자원봉사자도 아닌데 그런 손님을 만날 때면 힘이 쭉 빠진다”고 씁쓸해했다.

◆‘발품비’ 논의에… “옷 입어보는 것도 돈 받겠다” 비판도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주택 중개보수 요율체계 및 중개서비스’ 제도개선 권고안에서 중개알선수수료의 제도화를 제안했다. 중개사에게 소위 ‘발품비’를 주자는 것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집을 보기 전 원하는 집의 조건, 집을 찾는 기간, 소개알선 횟수, 중개보수 비용 등을 적은 중개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한다. 이러한 계약서를 작성한 중개사가 중개대상물을 보여줬음에도 실제 계약까지 가지 못한 경우 소개・알선 등에 들어가는 수고비 차원에서 손님이 수수료를 지급한다. 다만 계약이 성사된 경우에는 이를 내지 않아도 된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발품비에 대한 여론은 썩 좋지 않다. 한 누리꾼은 해당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 댓글로 “계약 성사되면 수백만원씩 복비를 받으면서 이제 발품비까지 받겠다고 한다. 보여준 집이 마음에 안 들면 매수자의 시간당 일당 보상은 중개사가 해주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옷 가게에서 옷 입어보는 것도 돈 내라고 할 판”이라며 “이상한 매물만 잔뜩 보여주고 수수료로 돈 버는 사람도 있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권익위 “수수료 부담스러운 수준 아냐… 실수요자 도움 될 것”

반면 권익위는 최저 시급 수준의 발품비가 실수요자에게 그다지 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입장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16일 통화에서 “국민 입장에선 갑자기 수수료를 내라고 하니 반감이 있을 수 있는데 중개사도 집주인, 세입자에게 연락해 방문시간 조율하고 설명하는 등 중개에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수료는 1시간에 만원도 안 될 것인데 그마저도 최종계약이 성사된 경우 안 내도 된다. 수억원짜리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 입장에서 좋은 집을 원하는 조건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수수료는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집 살 의향도 없으면서 소위 ‘임장’을 하는 사람들이 수십채씩 집을 보며 투기 조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막을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중개계약서 작성으로 미리 중개비 등을 정해놓아 사전에 분쟁을 막고 허위 매물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관계자는 “지금 같은 매도인 우위 시장에선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 ‘계약하실 거냐 마실 거냐. 안 해도 다른 사람 있다’며 배짱 중개를 하거나 계약 전에 중개료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며 “계약서 작성으로 중개사의 책임도 명확해진다. 중개사가 계약상 책임을 다 안 했다면 민사상 계약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공인중개사 협회 “서비스 질 향상 등 긍정적 측면 있어”

공인중개사 협회 측도 “아직 권고 수준이라 현실화될지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실제 제도로 정착되면 그동안 곤란을 겪은 중개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공인중개사 협회 관계자는 이날 “수십번 집을 보여줘도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으니 중개사들도 사람인데 지치기 마련”이라며 “집을 보여주기 전부터 계약서를 쓰면 서비스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전처럼 편하게 중개업소를 방문하기 어려워 알선수수료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 걱정도 나온다”며 “협회 입장에서 봤을 땐 단순히 선호도보단 수수료에 따른 지역적 편차 등을 종합적으로 실태 조사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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