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와 방북 함께한 재일 통일운동가..끝내 한국 땅 못 밟고 '50년 망명객 삶' 마감
[경향신문]
문익환·박형규 목사와 친분
1989년 ‘4·2공동성명’ 산파역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때
기고로 일본 사회에 DJ 알려
마지막까지 “38선 없애야…”
1989년 고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했던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이 16일 새벽 일본 요코하마시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고인의 아들 정강헌씨는 “아버지는 폐렴으로 고생을 하셨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선생은 경기공립중학교(현 경기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수료했다. 광복 후 서울대 의학부에 편입해 공부하던 중 1947년 이승만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50년 미국 에모리대 문리학부를 졸업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군에 지원 입대했다. 당시 맥아더사령부 통역요원으로 지내면서 문익환, 박형규 목사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51년 7월 문익환 목사의 주례로 유학 시절 하숙집 딸이었던 나카무라 지요코와 결혼했다.
고인은 휴전 이후 유엔군 군사정전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한국 정부의 기술고문 등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문필활동을 통해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1973년 ‘민족시보’ 주필을 지내면서 한·일 지식인들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김지하 석방 운동을 벌였다. 그해 8월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당시 일본의 시사비평지 ‘세카이(世界)’ 9월호에 기고한 그의 글은 김 전 대통령이 일본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어느 한국인의 마음-조선통일의 새벽에> <일본인과 한국인> <기로에 선 한국> 등의 저서를 냈다. 또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조선전쟁의 기원>과 작가 황석영씨의 <장길산> 등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1983년 여운형·김구·장준하 등 3명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의 픽션집인 <운상경륜문답(雲上經綸問答)>은 한국에서 <찢겨진 산하>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거름, 1992)돼 대학생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고인은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해 4·2공동성명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2001년 문 목사 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6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한국 정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그의 귀국을 불허했다.
아들 정씨는 “작년에 아버지의 귀국 직전까지 협의가 진전됐지만, 코로나19 탓에 결국 고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며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미국이 멋대로 그어놓은 38선을 없애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셨다”고 말했다.
2010년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은 그의 독특한 화법과 파란만장하고 대쪽 같은 생애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이 책에서 “나는 이제 이국 땅의 망명객으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데,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스스로가 걸어온 인생길에 대해서 여한은 없소이다”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한·일 고대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나카무라, 아들 강헌씨·아영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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