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역습에 '미국 에너지 산업 심장'이 멈췄다
[경향신문]
텍사스, 알래스카보다 추운 이상 혹한에 대규모 정전 사태
극소용돌이 남하 원인…휴스턴 공항 30년 만에 최저 기온
정유공장·송유관 가동 중단…풍력발전소도 날개 얼어붙어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스 회사가 밀집된 미국 텍사스주에 대규모 순환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화석연료의 주요 거점이 기후 변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이상혹한 탓에 생산 활동을 멈춘 것이다.
가스를 공급하는 송유관이 가동을 멈춘 반면, 난방 에너지 수요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에너지 산업의 수도인 텍사스를 강타한 혹한은 기후변화로 예측 불가능한 날씨에 직면한 세계를 상징한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전역의 전력 정보를 수집해 공개하는 웹사이트 ‘파워아웃티지’를 인용해 15일 오후 9시(현지시간) 기준으로 텍사스주에서만 430만가구와 사업장의 전력 공급이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이상기후가 갑작스러운 정전의 원인이 됐다. 지난주부터 미국 중부 전역에는 혹한이 몰아쳤다. 북쪽으로는 캐나다 접경인 노스다코타주부터 남단의 텍사스주까지 수백곳의 도시가 일일 최저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한파 원인은 북극에 위치한 극소용돌이의 남하다. 극소용돌이는 차갑고 건조한 저기압 덩어리로 주기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극지방과 중위도 사이의 기온차가 클 때는 제트기류가 강해져 극소용돌이를 북극에 가둬두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극지방의 온난화로 기온차가 줄어들면서 극소용돌이가 이례적으로 남부 텍사스까지 남하한 것이다.
텍사스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휴스턴에서는 난방용 전력마저 끊기면서 장작이 매진되고 프로판가스를 충전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정전의 여파로 도로는 얼어붙고 신호등과 가로등까지 작동을 멈췄다. 이날 모든 항공편이 취소된 휴스턴 국제공항의 온도는 영하 8도로 1989년 이후 30여년 만에 가장 낮았다.
텍사스 일부 지역은 알래스카보다도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오스틴에 사는 코디 밀러(36)는 이날 새벽 1시30분부터 오전 10시까지 실내 온도가 10도 안팎으로 떨어진 집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는 WP에 “(고온건조한) 텍사스에 살면서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날씨”라고 말했다.
혹한에 난방용 에너지 수요는 급격히 치솟은 반면, 에너지 공급은 차질을 빚으며 대규모 ‘블랙아웃(정전)’으로 이어졌다. 기온 하락에 텍사스 소재 대규모 정유공장과 가스 송유관은 가동을 멈췄다.
블룸버그는 하루 동안 100만배럴 이상의 석유와 2억8000만㎥ 이상의 가스 생산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텍사스 전력 공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풍력발전소 역시 절반 이상이 날개가 얼어붙어 가동을 중단했다.
이날 가동을 멈춘 발전소의 전력 공급량을 모두 합하면 총 34GW(기가와트)로, 텍사스 전체 전력 공급의 40% 수준이다. 텍사스주는 주변의 다른 주와는 분리된 전력망을 가지고 있어, 외부에서 부족한 전력을 끌어오지도 못했다.
에너지 산업의 심장부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도 크게 요동쳤다. 대규모 유정의 생산 차질은 미국산 원유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년여 만에 배럴당 60달러에 거래됐다. 평소 100만BTU당 3달러 수준으로 거래되던 천연가스 가격은 이날 한때 600달러까지 급등했다.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역시 항구와 유정의 동결로 급감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블랙아웃은 향후 더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일본과 파키스탄, 프랑스는 이상기후로 인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가 극단적인 폭염으로 20년 만에 순환 정전에 돌입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 앞에 세계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준다”며 “이는 교통수단에서부터 냉난방까지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공급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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