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여야 의원 불법사찰 DB까지 쌓았다

김원철 2021. 2. 16. 2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B 민정수석실, 국정원에 VIP 보좌 위해 '의원 전원 관리' 지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은 1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시기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매우 민감한 정보, 매우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문서를 열어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사찰 대상 목록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원이 구체적 내용에 관해 입을 다문다고 하더라도 4·7 재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의 불법사찰 논란이 정치쟁점화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어떻게 사찰?

국정원은 사찰의 방법·내용 등에 대해 함구했지만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의 정보공개청구로 인해 이미 언론에 보도된 2009년 12월16일 문건에 대해선 자세히 밝혔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정원에 중요 인사에 대한 정보 관리를 요청하면서 ‘브이아이피(VIP) 통치 보좌는 물론 대정부 협조관계 구축 및 견제 차원에서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신상자료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문서에 적었다. 또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자료를 수시로 축적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민감한 사안이므로 국정원에서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자료를 관리할 것을 지시했다. 또 “검찰·국세청·경찰 자료를 모아 국정원에 지원하면 국정원은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자료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민정수석실에서 자료를 요청할 경우 보고서 형태로 바로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국정 저해, 정치인 견제 차원에서 해당자에 대한 비리 정보 지원도 요청한다”는 문장이 명시돼 있어 자료를 축적한 정치적 의도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다만 국정원은 “미행과 도청 등 (불법 수단을) 사용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 국정원의 불법사찰은 이명박 정부 시기로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 국정원의 ‘자발적인 사찰’ 사실이 드러난 만큼 불법사찰은 정권 차원의 엄단 조처가 없는 한 계속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불법사찰이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히며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면 봉인 문서를 해제해서 보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선거에 영향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철저한 진상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당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보위원들의 보고를 받은 뒤 대응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상임위 차원에서 다룰지, 당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지 결정해야 하는데 후자 가능성이 높다”며 “사찰 자료 공개 청구도 의원 개인별로 할지, 당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낙연 대표는 15일 사찰 의혹과 관련해 “결코 덮어 놓고 갈 수 없는 중대범죄”라며 강한 어조로 국정원을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부산 선거 판세 뒤집기 공작’이라고 보고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관련 여러 여론조사에서 박형준 후보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판세를 흔들기 위해 민주당과 국정원이 합작해 사찰 문건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출연해 “박 후보가 부산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하고 있는데 이 정권 들어와서 적폐청산 한다고 하면서 6개월 동안 탈탈 털었는데 그때 뭐가 나왔느냐? 4년 동안 적폐청산을 하고 지금 와서 이것을 꺼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엄중한 불법행위인 만큼 진상 공개는 미룰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도 “선거 때문이라면 민주당이 먼저 움직였어야 한다. 민주당 의원실을 출처로 적시해 보도된 기사가 하나라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부산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지원 원장이 ‘이 이슈가 선거에 연결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형준 후보와 연관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공개된 정보에서 박 후보와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박 후보의 관여 여부가 추후 확인될 수도 있지만 선거일 전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지원 원장은 이날 “불법사찰을 한 정권도 나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정원의 불법사찰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움직임도 선거 이후에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철 노현웅 서영지 김미나 기자 wonchu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