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ICJ 회부' 공론화되나..일본 정부 "논평 않겠다"
[경향신문]
일본이 재판 응해도 사실관계 등 모든 사안 인정받기 어려워
이 할머니 측 “국제법 위반 여부 판단과 증언 기록은 남을 것”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6일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받아달라고 정부에 공개요청함에 따라 이 문제가 국내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ICJ로 가져가는 문제를 상정하거나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후 정부는 일본에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나와 있는 절차대로 ‘중재위원회 회부’를 염두에 둔 외교적 협의 개시 요청이었다. 이 할머니가 이날 위안부 문제를 ICJ의 판단에 맡겨보자는 제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한 것은 새로운 차원의 문제 제기다.
하지만 ICJ를 통한 해결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에 응해야 재판이 성립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재판이 열리더라도 산 넘어 산이다. 우선 위안부 문제의 사실관계, 즉 강제동원에 따른 사실상의 성노예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지금 일본 정부에 법적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 타당한지를 따져야 한다. 국제법정에서 이를 모두 인정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을 ICJ가 지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국제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할머니와 이날 기자회견을 주선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 측도 반드시 승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할머니는 “일본이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추진위를 결성한 연세대 법학연구원 신희석 박사는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요구하는 건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과거행위에 대한 사죄, 책임 인정, 역사교육”이라며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 간에 위안부제도가 국제법 위반이었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밖에 없고,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다 기록으로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기는 것보다 재판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역사적 기록으로 공식화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외교부는 “위안부 할머니 등의 입장을 좀 더 청취해 보고 ICJ 제소 문제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외교적으로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것은 완곡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추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승소 가능성도 문제지만, 이 같은 방식은 ‘일본과의 관계회복’이라는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날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가) 어떤 의도로, 어떤 생각으로 발언한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논평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어 “한국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은 국제법과 일·한 양국 간의 합의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에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장은교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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