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백기완, 통일 못보고 가 애통"..이틀째 조문행렬(종합)
김영주·이형주·양향자 의원 등 빈소 찾아
"잊지 않겠다" 추모 메시지 빼곡히 적혀
오후 7시부터 '문화계 추모문화제' 개최
일부 참석자 소감 말하며 눈물 흘리기도
[서울=뉴시스] 박민기 이기상 기자, 박현준 수습기자 =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일생을 헌신해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지난 15일 향년 89세로 영면한 가운데, 빈소 마련 이틀째인 16일 오후에도 시민·정치인 등의 조문이 계속됐다.
16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백 소장 빈소에는 낮 한때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과 정치인 등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2시께 빈소에는 10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바닥에 붙은 파란색 테이프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빈소에는 조문객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준비돼 있었다. 여기에는 "백기완 선생님 보고 싶을 거에요", "우리의 큰 산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빈소 입구 벽면에도 추모 메시지 약 40여개가 붙어 있었다. 여기에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적은 "잊지 않겠습니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구가 있었다.
이날 빈소에는 김 의원을 포함해 이형석·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영길 전 의원, 박원석 전 의원, 박수현 전 의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유승현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 영화감독 임순례씨, 가수 전인권씨 등이 찾아왔다.
양 의원은 조문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백 소장님은) 대한민국의 심장이자 등대이기도 하셨다"며 "곧고 정의롭게 선생님의 길을 잘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은 "한 마디로 백기완 선생을 표현하자면,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라고 말했다.
오후 3시30분께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염무웅 문화평론가 겸 명예교수, 그리고 백 소장의 70년 지기 친구로 알려진 방배추(본명 방동규) 선생이 빈소를 찾았다.
김 의원은 "백기완 선생은 청년 시절부터 이 땅의 민주화운동과 조국 통일 운동에 헌신하신 분"이라며 "제게는 정치의 큰 지도자이신만큼 남다른 인연"이라고 했다.
이어 "그 분이 추구했던 통일,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이 됐지만 우리가 말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며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하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기셨다"고 덧붙였다.
이후 오후 5시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후 5시15분께는 이종걸 전 의원이 조문을 했다.
이 대표는 "집에 연탄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번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투혼을 유지하셨던 분"이라며 "선생님은 가셨지만 지금 나오는 노래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영생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이날 오후 7시께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야외마당에서 '문화계 추모문화제'를 진행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입장 인원을 제한했고, 이날 문화제에는 장례위원회 측 관계자 및 일반 시민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백 소장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영상 시청으로 시작된 문화제는 추모 공연, 문화예술인들의 추모 인사, 집단 분향 등으로 구성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문화제 막바지에 "좀 더 같이 계셨어야 하는데 아쉽다", "남북통일을 못 보고 가셔서 애통하다. 선생님의 뒤를 따르겠다", "이제 거침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시라. 민족통일은 저희가 책임지고 이뤄내겠다" 등의 짧은 소감을 전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백 소장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 별세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 출생으로,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백 소장은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으며,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활동에도 참여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이후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대선에서 낙선한 백 소장은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지원했다.
백 소장은 창작활동에도 힘을 썼는데, '장산곶매 이야기'와 '부심이의 엄마생각' 등 소설과 수필집을 펴내기도 했다.
백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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