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백신 이름표기·품질검증 생략 허용하는 법안 나왔다?

김수진 2021. 2. 1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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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법개정안 보도나온뒤 법안 관련 비난 봇물..법안내용 따져보니
비상시 백신 신속보급 위해 한글표기 생략 허용..영문표기는 남아
수입사의 품질검사 생략 가능하나 식약처 품질검사는 그대로 실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PG) [연합뉴스 일러스트 홍소영 제작]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제품명을 기재하지 않고 품질검사도 없이 수입 백신을 들여오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15일 한 온라인 매체가 이달초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약사법 개정안과 관련, '민주당 "백신 품질검사 면제" 황당법안…의료계 "안전성 검증 안 한다니 어이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뒤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해당 기사는 여당이 "일명 '비상시 백신명 미표기법'을 추진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백신이 공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또한 "국민이 중국 가짜백신 '마루타' 되면 어쩌려고?"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면서 김우주 고려대학교 감염내과 교수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등 의료계에서도 이 법안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고 기사는 소개했다.

이 기사만 보면 정부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이유로 백신을 아무 정보 제공 없이 접종토록 허용하고, 품질 검사도 생략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법안 내용인 것처럼 보인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정체불명의 백신을 강제로 맞게 될지도 모른다", "죽을 각오를 하고 맞으라는 것이냐", "백신 성분 표시 안 해도 된다는 법안에 반대한다"는 등 비난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서 해당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게시물이 4천200건을 넘어섰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실제 발의된 법안 내용과 현행 의약품 수입 관련 제도를 확인한 결과, 이 같은 보도 내용은 현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아무 백신이나 접종하는 법안 발의?' '비상시 백신명 미표기법'을 발의했다는 기사에 대한 반응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품질검사 없이 백신 수입?…수입사의 검사 생략 가능토록 했으나 식약처의 '안전성·효과' 검사 남겨둬

해당 법안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의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등 11명이 지난 1일 공동 발의해 입법예고 과정까지 거쳤다.

국가비상상황 등의 경우 예방·치료 의약품에 관한 특례를 규정한 제85조의 2에서 "생물테러감염병 및 그 밖의 감염병의 대유행 등"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필요한 의약품에 대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38조 및 제56조부터 제60조까지의 규정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아니하도록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약사법 제38조와 56∼60조는 의약품등의 생산·품질관리, 용기·외부포장·첨부 문서 등의 기재 사항, 주의, 금지 사항 등에 관해 규정한다.

특히 38조 1항은 "의약품등의 제조업자 또는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는 의약품등의 제조 및 품질관리[자가(自家)시험을 포함한다], 그 밖의 생산 관리에 관하여 총리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돼 있다.

결국 개정안은 비상상황시 제조업자 또는 품목허가를 받은 사람에게 품질 관리를 위한 자가 시험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른 백신 수입절차 비교 개정안에 따르면 품질검사가 기존 3회에서 2회로 줄어들며, 식약처의 국가출하승인 검사는 여전히 필수다. [식약처 자료=연합뉴스]

국내 백신 품질 검증 절차 전반에 대한 설명 없이 이 같은 법안 조문 자체와 일부 매체의 보도만 보면 법안 통과시 백신에 대한 국내 품질 검사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개정 법안 내용을 따져보면 백신 수입 시 이뤄지는 품질검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3차례에서 2차례로 줄어드는 것이다.

기존에는 수입 전 백신 제조사가 1차로 품질검사를 하고, 국내에 들여와 수입사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각각 품질검사를 진행한 뒤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유통을 시작하는데, 개정안은 이중 수입사의 품질검사를 해외 제조원의 실험 결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외 제조원과 국내 수입사가 진행하는 품질검사 내용이 대동소이한데다, 국내 수입사가 품질검사를 위해 기술이전, 시험 장비를 구입하는데 통상 6∼12개월이 걸리고 검사자체에도 최소 15일이 소요되는 만큼 비상시에 기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는 국제보건기구(WHO)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WHO는 지난 1월 발표한 코로나19 백신 배포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규제 관련 의사결정에서 중복을 최소화해 긴급한 보건 상황에서 백신 사용이 지연되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수입자의 품질검사가 생략되더라도 '국가출하승인'으로 불리는 식약처 검사는 생략되지 않는다.

식약처의 문은희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장은 "국내 유통되는 모든 백신에 대해 무균시험, 엔도톡신(Endotoxin·내독소) 시험, 확인 시험, 함량 시험 등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가 (품질검사를) 굉장히 까다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단계를 줄인다고 해서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법이 개정되면 백신 수입사의 품질검사가 생략 가능해지는 것이지, '민·관의 모든 품질검사'가 생략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안전성 검증 안 한다", "검증되지 않은 백신이 공급될 수 있다"와 같은 보도 내용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셈이다.

기사에서 개정안에 대해 "현재 법에서 작동하는 식약처의 역할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논평한 것으로 인용된 김우주 교수는 자신의 발언이 식약처 검사 절차까지 생략되는 것으로 질문 취지를 이해한데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가 문자로 품질검사를 생략한다고 말해서 그렇게 코멘트한 것"이라며 실제 법안 내용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한 답변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단, 특례수입은 식약처 검사 규정 없어…코백스 도입분은 특례적용 유동적, 제약사 6천900만명분은 특례 아니어서 검사 대상

다만, 이번에 발의된 법안과 상관없이 의약품 특례수입 제도로 들여오는 백신은 식약처 검사를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의약품 특례수입제도는 품목허가가 없는 의약품을 긴급히 도입하는 제도인데, 현행 약사법에서 이 제도에 대한 국가출하승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특례수입을 승인한 코로나19 백신은 이달 말 혹은 3월 초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서 받아 오는 화이자 백신 5만8천500명(11만7천도스) 분량이다. 정부는 이 백신을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 약 5만5천명에게 투여할 계획이다.

문은희 과장은 "해당 백신은 WHO가 긴급사용목록 등재를 승인하고 품질을 보증한 제품"이라며 "구체적인 품질검증 방법을 질병관리청과 협의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한 백신 1천만명분에 특례수입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특례수입을 적용할지, 일반적 절차로 들여올지는 향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는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백신 수입자 자격을 갖춘 국내 회사를 찾아 계약이 성사되면 코백스 백신도 특례가 아닌 일반 절차로 들여올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정부가 5개 제약사와 직접 계약한 백신 6천900만명분은 특례가 아닌 일반적인 절차를 통해 수입할 예정으로 모두 식약처의 국가출하승인 대상이다. 아스트라제네카 1천만명분, 얀센 600만명분, 화이자 1천300만명분, 모더나 2천만명분, 노바백스 2천만명분 등의 백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품명 미기재?…영문 포장 그대로 사용·의료진은 QR코드로 한글 설명 확인

해당 기사에서 "비상시 백신 생산업체명과 제품명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보도한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현행 약사법은 수입자가 의약품, 즉 백신의 용기나 포장에 "수입자의 상호와 주소, 명칭, 제조번호와 유효기간 또는 사용기간, 중량 또는 용량이나 개수 등"을 "의약품 용기나 포장"에, "취급 주의 사항 등"은 "첨부 문서"에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정확히" 기재하도록 한다.

통상 수입 의약품에 한글이 인쇄돼 있거나 한글 스티커가 붙어있고, 한글로 적힌 안내문이 첨부되는 것은 이 같은 약사법 규정에 따른 것인데, 이러한 한글 포장지·첨부 문서 등을 인쇄·제작하는데 통상 3∼4개월 정도가 추가로 소요된다.

평상시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들여와야 하는 현 상황에서는 아까운 시간인 셈이다. 또한 보관 기간이 짧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백신 제품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국내 의약품 업계에서 대두됐다.

따라서 개정안은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상시에 한 해 백신 포장과 안내문에서 한글을 생략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완화한 것이다. 즉, 개정안이 통과되면 백신명, 제조번호, 유효기간, 중량 등이 영어로 적힌 백신 상자와 용기를 그대로 의료기관에 공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어서 백신의 제품명과 정보가 결코 '은폐'되지 않는다.

이는 WHO가 '코백스 퍼실리티'에 참여하는 각국 정부에 포장 기준 적용을 면제해 달라며 요청한 내용이기도 하다.

모더나 코로나19 백신과 포장 용기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코로나19 백신이 영문이 표기된 상자 그대로 의료기관에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

특히, 의료진은 법이 개정되더라도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한글로 백신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외국 백신 제조사가 QR코드를 제품 포장에 인쇄하고, 각 수입자가 해당 링크에 한글로 상세 정보를 써넣어 의료진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그리고 법이 개정될 경우 일반 국민들은 접종 현장에서 어떤 백신 제품을 맞는지 안내받을 수 있고, 추후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도우미사이트에서 자신이 접종한 제품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백신명 미표기'로 인해 의료진이나 접종자가 어떤 제품인지도 모른 채 백신을 접종하거나 맞게 된다는 주장은 법안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아이템 선정 및 취재 과정에서 신유라 시민팩트체커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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