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으로 풀어놓은 '제주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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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설날 아버님이 계신 4·3평화공원 행불비에서 제를 지낼 때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제사상에 하얀 봉투를 올리셔서 무슨 편지인가 했더니 봉투에는 4·3 희생자 배우자에게 매달 주는 3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봉투에 들어 있던 돈을 꺼내며 손자들에게 1만원씩 주시며 '느네 하루방이 보낸 세뱃돈이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이들 아버지께서 주신 세뱃돈 잘 받았습니다."
제주4·3 희생자 유족 김경자(제주시 도두1동)씨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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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이래 1만여명 찾아와
“언젠가 설날 아버님이 계신 4·3평화공원 행불비에서 제를 지낼 때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제사상에 하얀 봉투를 올리셔서 무슨 편지인가 했더니 봉투에는 4·3 희생자 배우자에게 매달 주는 3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봉투에 들어 있던 돈을 꺼내며 손자들에게 1만원씩 주시며 ‘느네 하루방이 보낸 세뱃돈이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이들 아버지께서 주신 세뱃돈 잘 받았습니다.”
제주4·3 희생자 유족 김경자(제주시 도두1동)씨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다. 김씨의 아버지는 이유도 모른 채 목포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돌아온 뒤 이틀만에 친구가 ‘잠깐 나와보라’는 말에 집을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제주4·3트라우마센터에서 진행한 ‘문학치유―나를 어루만지는 4·3 글쓰기’ 과정에서 편지를 썼다.
16일 제주시 제주복합관사 2층에 있는 이 센터에 들어서자 ‘그리움의 안부를 묻는다’라는 제목의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유족들이 직접 그리고 쓴 작품이 전시된 ‘마음 그리기 작품 모음전’에서는 고영옥(제주시 도련동)씨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맨발로 눈 위를 뛰어가는 슬픈 이야기>라는 이 그림에는 군인들의 방화로 집이 불타고 가족들은 맨발로 도망가는 모습이 담겼다. 상담실 안에는 4·3 희생자들이 만든 도자기와 유족들이 만든 꽃바구니 등과 함께 문학치유 과정을 수강한 유족들이 희생된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에게 쓴 손편지들도 보였다. 아픈 기억과 기쁜 기억을 끄집어낸 뒤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몸이 아닌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곳이다. 문 연 지 8개월여 만에 70년 묵은 한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과 희생자 등 제주도민들을 보듬었다. 현재 프로그램이나 수업에 등록해 있는 475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1만699명이 상담·치유·운동 프로그램, 도수치료와 물리치료 등에 참여했다. 센터는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주민들이 나뉘어 고통을 겪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찾아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센터의 프로그램은 요일별로 다양하다. 음악치유(화), 문학치유(수), 원예치유 ‘내 마음 활짝 피우기’(목), 명상과 운동치유(수·목), 이야기마당(금) 등이다. 오승국 부센터장은 “프로그램당 1시간30분 남짓인데 참여자가 많아 10~15명으로 한 반씩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4·3 유적지 기행이나 숲치유 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정영은 센터장은 “올해는 찾아가는 치유활동 사업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센터가 위로와 치유의 안식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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