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그만하고 싶다, 그만할 수 없다 / 권김현영
[세상읽기]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그만하시죠, 제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상호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지난 15일 ‘김현정의 뉴스쇼’ 진행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상호 후보는 언론에 보도된 강난희 여사의 손편지를 읽고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며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마음으로 서울시 정책을 펼쳐가겠다”는 내용의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글은 이미지 파일의 형태로 업로드되었다. 즉흥적인 감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 글은 당연히 피해자와 여성단체의 항의를 포함한 여러 파장과 논란을 불러왔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논란의 당사자에게 들어보겠다며 우상호 후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상호 후보는 “제가 이미 20여차례에 걸쳐 국가인권위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한 바 있다”며 “유가족의 손편지 전체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 후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는 유가족의 손편지에 공감으로 응답했고 공개적으로 이를 위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앵커의 질문처럼 비공개로 전달했어도 된다. 대답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현정 앵커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재차 물었다.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으셨다면 비공개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이때 나온 답변이 “그만하시죠, 제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 대답은 충분하지 않았다.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지도 않았고, 손편지의 어떤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적시하지도 않았다.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게 하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정책 비전은 없었다.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탄원하는 유가족의 손편지에 울컥했다는데, 피해자가 어떻게 서울시 공무원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만하시죠, 제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는 말은 매우 징후적인 문장이다. 우 후보는 앞서 이어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변별점을 ‘민주화 세대’로서의 경험에 있다고 했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대의민주주의의 모순을 정확하게 드러내는데, 특정한 시대의 정치적 사건에 참여한 경험을 일부가 독점하고 서민을 대변한다면서 문제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흔히 정치인들은 당사자가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구조를 열지 않은 채 자신이 바로 국민의 진정한 대변자이자 서민들의 친구라고 말한다. 노동자, 농민, 여성, 청소년, 소수자들은 정치권력에 직접 개입할 만한 시간과 자원이 없고, 이들이 출마한다고 해도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대표하라는 압력을 받기 때문에 확장성이 없다거나 편협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적 인격을 갖춘 일반의지(general will)를 표명할 수 있는 개인이 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보편자의 위치에 둘 수 있는 자들이 지닌 특권의 일부다. 서민이란 말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냐면 서민은 정치적으로 세력화될 가능성이 전무하면서도 이런 기득권을 감추는 데는 매우 유용한 말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항상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다가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정치를 주문하면 갑자기 악성 민원인 취급을 하며 공론장을 열지도 않고 사회적 합의를 운운해온 이들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환멸에 빠트리게 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의가 없다”거나 “그만하시죠”라며 소통과 참여라는 자신들의 오래된 정치적 수사마저 포기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모든 사람이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정의로운 사회적 상태는 ‘전제’가 아니라 ‘지향’이며, 이 지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민주주의의 반성능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반성능력은 “충분히 만족할만한(good enough) 토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제약 속에서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지향을 공유하고 불거진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참여적 토의는 그다음 논의의 장을 다시 열고 더 급진적인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기반이 된다. 그렇기에 그만할 수 없다. 충분히 듣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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