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터지는 '체육계 학폭'.. "'체벌=승리' 인식 버려라"

이병훈 2021. 2. 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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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프로배구선수 학폭 일파만파
민간기업·정부기관으로 확산 조짐
학부모·지도자들도 폭력을 당연시
학생시절 폭력피해 제때 신고못해
흥국생명 이재영(왼쪽)과 이다영/뉴시스
일부 프로배구 선수들에 대한 학교폭력(학폭) 가해 폭로가 잇따르면서 체육계 폭력 문제가 또다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학생 시절의 피해를 즉시 호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고 시스템의 부재도 학폭과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배경에는 지도자부터 학부모, 심지어 학생 당사자들에도 '체벌은 당연하다'는 인식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운동부 내에서 폭력이 당연시되는 현재 구조로는 학교폭력을 당하더라도 피해를 구제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연예계를 거쳐 체육계에서 터져 나온 학폭 파문이 민간기업, 정부기관 등으로 확산되면서 '학폭 미투(Me Too)'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10년전 피해, 지금 나오는 이유는

16일 체육계 등에 따르면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 자매로부터 시작된 배구계 '학폭 미투'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 파문은 남자배구 OK금융그룹의 송명근과 심경섭 선수로 이어진 후, 가해자를 지칭하지 않은 여자배구선수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폭로도 나왔다. 배구계에서 이어지고 있는 '학폭 미투'는 체육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특히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 선수들과 함께 운동부에서 활동하면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초등·중학교 배구부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를 상대로 폭행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학교 시절에도 학폭 가해를 저질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자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라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A씨도 "중학교 운동부 시절 집합을 당하고, 폭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학생 시절 당한 폭력 피해가 1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드러나는 배경에는 '승리를 우선시하는 운동부 문화'가 꼽힌다. 실력 향상을 위해 운동 중 체벌과 폭력이 당연시되는 환경에서, 피해 호소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A씨는 글을 통해 "엄마한테 무릎 꿇고 배구 그만하고 싶다고 빌기도 했다"며 "엄마는 그냥 운동이 힘들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조금만 참고 (배구를) 해보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폭 폭로는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까지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항공업계 등 민간 기업에서도 학폭 가해자가 있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누리꾼은 지난 15일 '학폭 가해자가 경찰하고 있네요…'란 제목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체벌 당연' 인식, 신고도 못 해

이런 분위기는 최근에도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 학생에게도 '맞을만 해서 맞는다'는 인식이 퍼져, 학생인권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학생선수 인권상황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체 폭력을 경험한 초중고 학생선수 중 21.4%가 '스스로 잘못해서 (폭행)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생 선수 38.7%는 폭력 피해를 당한 뒤에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승리를 위해 폭력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신고 피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로 인해 신고 비율은 극히 낮았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신체·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79.6%에 달했다.

인권위는 "학생선수들은 선수생활 특성상 소수의 동료선수와 지도자에게 모든 생활을 의존한다"며 "이로 인해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학교폭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체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권위도 시도교육청·대한체육회 등에 △학생선수 대상 인권침해 신고방법 교육 강화 △학교 내 학생선수 및 학교 운동부 지원체계 확장 △다양한 인권침해 가해자 유형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 등을 권고한 상황이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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