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은 세계적 흐름..국가 지도자 되려면 '환경 야망' 가져라
2050년까지 대통령만 7명
정권 바뀌어도 흔들리면 안돼
온실가스 제로 쉽지 않지만
국가명운 걸고 나서야 할일
탄소중립위원장, 文이 맡아야
신재생에너지 사용 'RE100'
글로벌 기업들 사이서 열풍
국내에서도 가입 서둘러야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기후환경회의를 이끌고 있는 반기문 위원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그는 매일 오전 8시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실에 출근한다. 탄소중립에 반대하는 산업계를 꾸준히 설득하고, 환경 교육 기회를 늘려달라고 고위 관료들을 만나 끈질기게 요구한다.
반 위원장은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로구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실에서 반 위원장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후변화'가 전 세계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은데.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나섰다. 지난해 9월 중국이 먼저 2060년까지 탄소배출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까지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틀 뒤에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도 안 하고 버틸 수 없다.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얼굴이 화끈한 적이 많았다. 유엔 기후변화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른 나라를 설득하려고 하면, 당신네 나라나 잘하지 왜 우리한테 잔소리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녹색성장을 강조하던 이명박정부 때도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해놓고 되레 늘었고, 박근혜정부도 파리기후변화협약 채택을 앞두고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재조정하기만 했지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한국이 기후 악당 소리를 계속 듣고 살 수는 없지 않겠나.
―환경 문제에 있어서 목표치만 높게 잡고 실현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내가 항상 지도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환경 목표를 정할 때는 '야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지금 목표보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는 게 야망이다. 누구나 달성할 수 있다면 그건 야망이 아니다. 그게 되겠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다른 나라가 하는 것을 보고 쫓아가선 안된다.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탄소중립 비전을 발표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문 대통령이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시라"고 제안했다. 지금 대통령 직속 기구를 만들어놔도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지금은 환경부 장관 소관으로 내려가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세계 최초 녹색성장법까지 만들었는데 지금은 국무총리실로 다 내려가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문 대통령을 포함해 앞으로 7명의 대통령이 똑같은 야망을 갖고 해야 한다. 문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상황에서 탄소중립 하나에만 매달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내가 직접 책임진다는 의식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이 지금 왜 중요한가.
▷2015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에서 전 세계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을 담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내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성과를 이끌어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가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 완화에 대해서는 최근 각국이 많은 진전을 보여왔지만, 적응에 대해서는 진전이 더뎠다. 기후적응정상회의(CAS) 2021에서 문 대통령을 비롯한 30여 개국 정상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 적응에 대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쓰는 돈 중 5%만이 적응에 쓰이고 나머지 95%가 완화로 간다. 이걸 50대50으로 맞춰보자는 게 이날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한국은 기후변화 적응에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나.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기후변화 '적응'의 개념은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영향에 대응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가 처한 코로나19 위기도 이 기후변화 '적응'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만일 기후 적응에 충분히 투자했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분야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일본·영국 등 나라엔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법률까지 마련돼 있지만 우린 관련 법조차 없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도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의 해결뿐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사회·재정 및 환경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RE100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현재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 284개는 공급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RE100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아 기업들이 RE100 가입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정부가 지난해 재생에너지 전력에 높은 비용(녹색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경우 인증서를 발급하거나 제3자 전력 구매계약을 도입하는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으니 우리도 앞으로 가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향후 신기후 체제가 출범하고 탄소국경세 도입 얘기가 각국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국내외적으로 기업들의 RE100 참여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한다.
환경교육 부족한 한국학교
초교부터 교과목에 넣어야
반기문 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대뜸 물었다. 반 위원장은 유엔 사무총장 시절 북극에 4번, 남극에 1번 총 5번이나 극지를 다녀왔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에 한 번도 가볼까 말까 한 곳. 과학자라 해도 그렇게 자주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반 위원장은 "극지에 갈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2007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과학자들과 함께 직접 녹고 있는 남극 빙하를 보러 간 것"이라고 술회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당시 그가 남극 빙하 앞에서 "해수면이 올라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때 이후 반 위원장에게 붙은 별명이 '미스터 클라이밋(Mr. Climate)'이다.
반 위원장은 "탄소중립, 환경 실천을 강조하는 우리 대통령·환경부 장관·정치인들 중에 누구라도 한 번쯤 남북극에 가봤으면 좋겠다"며 "직접 가서 자기 눈으로 보고, 사람들이 '환경 하면 누구'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위원장은 지난 2년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 17명을 일일이 만나면서 '환경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렇게 집요할 수가 없었다.
교육부 장관을 만나 환경 교육을 초등 교과에 집어넣어 달라 하고, 세종시·제주 할 것 없이 교육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초·중·고등학교 때 환경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어른이 돼도 머릿속에 환경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설득하고 다녔다. 한 명씩 만나고 다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한자리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초·중·고교가 5500개인데 그중 환경 교육을 선택으로라도 하는 곳이 2%가 안된다"며 "이런 건 언론에서 더 잘 챙겨봐야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과연 '환경운동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He is…
△1944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대 외교학 학사 △1970년 외무부 입부 △2004~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2007~2016년 유엔 사무총장 △2019년~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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