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동역 아쉽지만..철길에 잘린 애국지사 맥 살린다

최흥수 2021. 2.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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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에서' 아무리 기다려도...옛 중앙선 철길 따라 임청각에서 월영교까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 중앙선 새 선로가 개설되면서 일제강점기 철길로 반토막이 난 집은 2025년 옛 모습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역 광장에 세워진 ‘안동역에서’ 노래비를 보면 가수 진성의 구수하면서도 애절한 음성이 들릴 듯하다.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이 왜 안 오는지는 이미 가사에 나와 있다. 기적 소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옛 안동역에는 더 이상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 새 안동역은 시내 외곽에 들어섰다. KTX이음을 이용하면 서울 청량리역까지 2시간가량 걸린다. 기존 선로에 비해 1시간30분 이상 단축돼 안동 여행도 그만큼 수월해졌다.

옛 안동역 광장의 '안동역에서' 노래비. 아무리 기다려도 이제 기차도 사람도 오지 않는다.
옛 안동역 건물 외벽에 중앙선과 안동역의 역사를 담은 대형 현수막이 전시돼 있다.
옛 안동역 선로는 상당 부분 철거된 상태다. 일대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옛 안동역 옆의 운흥동 오층전탑과 당간지주. 전탑은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 유독 많이 남아 있다.

1930년 말 개통해 90여년간 안동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옛 안동역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을 예고하며 문을 닫았다. 건물 외벽에는 안동역의 역사를 정리한 대형 현수막이 전시물처럼 내걸렸고, 승강장 주변 선로는 이미 상당 부분 철거된 상태다. 기차도 사람도 없는 역은 그만큼 스산한데, 그 동안 번잡해서 가려졌던 유적이 눈에 들어오는 건 의외의 소득이다. 역 광장에서 서편 주차장으로 나가면 검은색에 가까운 오층전탑(보물 제56호)이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옆에 꼭 그 전탑만큼 아담한 당간지주가 단짝처럼 세워져 있다.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은 전탑은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 유난히 많다. 옛 선로를 따라 안동댐 방면으로 약 1.5㎞ 이동하면 낙동강과 나란한 철길 옆에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이 우뚝 서 있다. 역시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남아 있는 전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높이 17m의 거대한 탑이지만 안정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래 전 보수 과정에서 기단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탑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숙종과 영조 시대에 지은 고택으로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연못과 정자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임청각 인근 법흥사지 칠층전탑.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왼편은 옛 중앙선 선로 방음벽, 오른편은 고성 이씨 종택이다.
낙동강가 햇살이 따사로운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임청각.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설한 중앙선 철도로 훼손된 임청각은 2025년까지 옛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더 유명한 집은 바로 옆의 임청각이다.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중종 10년(1515)에 지은 저택으로,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이 태어난 집이기도 하다. 별당 건물인 군자정은 보존상태가 양호해 보물 제182호로 지정돼 있다. 집터는 호젓하게 낙동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이어서 하루 종일 햇살이 따사롭다. 임청(臨淸)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두 글자를 따온 명칭이다.

이렇듯 평온하게만 보이는 임청각과 안동 명문가인 고성 이씨 집안은 일제강점기에 커다란 수난을 겪는다. 종손인 석주 이상룡(1858~1932)은 국권피탈 이듬해인 1911년 가산을 정리한 후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해 74세에 지린성 수란에서 별세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초대 국무령을 지낸 자신을 비롯해 가족 11명이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바로 앞으로 중앙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99칸 저택에서 50여칸이 사라져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안동 사람들은 일제가 독립운동가 집안의 맥을 끊기 위해 일부러 집을 반토막냈다고 믿고 있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중앙선 철도는 이 부근에서 굳이 휘어져 안동 시내를 동서로 관통한다. 주변에 평야나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회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눈엣가시였던 이 집안에 대한 보복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행히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2025년까지 임청각을 일제가 훼손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할 예정이다. 레일과 침목은 이미 철거한 상태이고 방음벽과 다른 구조물도 차례로 걷어내게 된다. 진정한 광복에 또 한 걸음 다가서는 과정이다.

안동댐 하류 저류지 호수 위에 세워진 월영교. 다리를 건너면 왼쪽 산기슭에 안동민속촌이 조성돼 있다.
안동댐 아래에 조성된 안동민속촌.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전통 가옥이 골짜기 일대에 수두룩하다.
안동민속촌의 석빙고.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빙어를 저장하던 시설로, 댐 수몰지역인 옛 예안면 소재지에서 옮겨왔다.

임청각 상류는 안동댐 관광지로 이어진다. 댐 아래 저류지 호수를 가로지르는 월영교는 근래 안동을 대표하는 명품 걷기길로 자리 잡았다. 호수 중간의 정자와 교각이 잔잔한 수면에 비치고,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리를 건너면 안동민속촌으로 이어진다.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 지역에서 옮겨 온 전통 가옥이 산자락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안동=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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