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알리바바 · 징둥에 이어 화웨이까지..중국 기업들이 돼지 키우는 이유는?

송욱 기자 2021. 2. 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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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는 휴대전화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華爲不靠手機也能活)"

지난 9일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창업자가 한 행사에서 한 말입니다. 화웨이는 트럼프 전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의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너'를 매각했고,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8%에 그쳤습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생존을 위해 화웨이는 지난해 8월 '난니완(南泥湾)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미국 기술을 배제하고 중국 안에서 모든 부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난니완은 항일전쟁 때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난니완 지역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직접 공급했던 곳입니다. 난니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훙멍'을 탑재한 기기를 늘리고, 상하이에 통신칩 제조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화웨이의 다른 생존 전략은 자신들의 강점을 이용한 사업 다각화입니다. 런정페이 창업자가 참석한 지난 9일 행사는 화웨이와 산시성 정부 등이 함께 설립한 '스마트 광산 혁신 실험실'의 공식 출범 현판식이었습니다. 이 실험실은 산업용 무선 제어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등을 이용해 탄광 산업의 효율을 높이고, 사고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제철소와 항만의 스마트화 사업도 벌이고 있는 화웨이는 최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출을 밝혔는데 바로 돼지, 양돈 산업입니다.

● "돼지를 키웠어도 양돈 일인자가 됐을 것(養猪可能也是養猪壯元)"

런정페이 창업자는 지난 201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에 가지 못했다면, 돼지를 키웠어도 양돈 일인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자신의 성격을 언급하며 나왔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게 됐습니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화웨이기기시각의 총재 돤아이궈는 지난 15일 자신의 SNS에 스마트 양돈업에 공헌을 하겠다며 고객들의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본격적인 양돈 산업 진출을 선언한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화웨이는 '5G가 이끌고 AI가 적용된 현대 양돈'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미래 양돈의 핵심은 데이터이며 데이터를 활용해 축사를 관리하면 AI가 더 많은 과학적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화웨이기기시각 총재 돤아이궈의 SNS


화웨이기기시각 발표에 따르면 화웨이의 양돈 시스템은 빅데이터 분석, 디지털 관리, 인공지능(AI) 식별과 결정 등의 기능이 있습니다. 축사에는 각종 센서가 달리고, 로봇이 돌아다니며 돼지의 상태를 살펴 자동 원격 제어를 합니다. 즉, 양돈 산업에 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돼지의 상태를 AI가 판단하고, 로봇 등 기계들이 축사와 돼지들을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표준화된 관리가 가능해지고 사료와 번식 비용도 줄어들며, 방역 또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화웨이의 설명입니다.

●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편안하게 해 준다(猪粮安天下)"

중국에는 '주량안톈샤'(猪粮安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돼지고기가 식량과 함께 천하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뜻으로 그만큼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납니다. 실제로 14억 인구의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입니다. 중국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연간 평균 7억 마리의 돼지를 생산하는데 이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50%가 넘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8년과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을 강타하면서 돼지 사육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돼지고기 수입을 크게 늘렸지만 지난해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49.7%나 올랐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배경에는 낙후된 돼지 사육 시설과 유통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에서 출하되는 돼지의 절반 이상이 어미돼지 500마리 이하의 소규모 양돈장에서 나옵니다. 중국의 소규모 농장은 질병을 예방하는 방역 시설이 기업형 농장에 비해 미비합니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불리해 중국이 돼지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은 미국의 두 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인 수요가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 보니, 예전부터 양돈업을 시작한 IT 회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중국 유명 포털사이트 왕이는 2009년 중국 인터넷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돼지 사육에 나섰고, 온라인 쇼핑몰 업체 알리바바와 징둥도 '스마트 양돈'을 내걸고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이들 IT 기업은 양육 환경과 돼지의 건강에 관련된 데이터를 이용해, 돼지의 얼굴과 기침 소리 인식으로 체중과 병력 등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와 비구이위안 등도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축산업체를 설립해 양돈업에 진출했습니다.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화웨이는 통신 시설과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각종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이른바 토털 솔루션이 가능하고,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기술을 적용한 경험도 많습니다. 화웨이의 스마트 돼지 사육 기술 개발에는 중국 정부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돼지고기가 미국 제재로 사면초가에 놓인 화웨이까지 편안하게 해 줄지, 런정페이 창업자의 말처럼 화웨이가 양돈 산업에서도 일인자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욱 기자songx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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