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반기문 "문대통령 탄소중립위 위원장 맡아야"
"2050년 탄소중립까지 대통령 7명
文대통령부터 직접 챙겨야"
환경문제, 다른 나라 쫓아가선 안돼
국가의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할 일
기후변화 완화뿐 아니라 적응에도
예산 적극 투입하고 힘써야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을 "절제되고 꼼꼼한 스타일(understated, methodical style)"이라 칭하면서도 "기후변화 문제에선 대단히 끈질겼다"고 표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일수밖에 없는 이유를 반총장에게 설명해주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다가 가끔 메모도 하고 안경을 고쳐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반 총장이 또다시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을 얘기할 정도로 끈질기더란 대목에선 '큭'하고 웃음이 새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기후환경회의를 이끌고 있는 반 위원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는 매일 아침 8시면 종로구에 위치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빳빳한 흰 와이셔츠, 양복 왼쪽 핀홀엔 17가지색 알록달록한 원반모양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뱃지를 달고서. 탄소중립을 비판하는 산업계를 꾸준히 설득하고, 환경교육을 강화해달라고 고위 관료들을 만나 끈질기게 요구한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기문 위원장은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외교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간 그의 주소지는 수없이 바뀌었고, 세계 최고의 외교관 UN 사무총장에서도 내려왔지만 반 위원장은 여전히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인 문제를 다루는 현역 외교관이다. 말하자면 그는 도합 51년차 외교관이다. 이 완벽무결한 외교관은 대화 중에 생소한 외국 지역명이 나오면 마치 단어를 외우기라도 하는 듯 알파벳을 한글자씩 떼어 발음하기도 했다. 행여 신문에 철자 틀린 외국어가 들어갈까 염려한 50년차 외교관의 배려임을 둔한 기자가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날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파리기후변화협약(2015년) 복귀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전세계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은데.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나섰다. 지난해 9월 중국이 먼저 2060년까지 탄소배출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일본 스가 총리까지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틀 뒤에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도 안하고 버틸 수 없다.
-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나.
▶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UN 사무총장 시절 얼굴이 화끈한 적이 많았다. UN 기후변화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른 나라를 설득하려고 하면, 당신네 나라나 잘하지 왜 우리한테 잔소리 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녹색성장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때도 온실가스 감축하겠다고 해놓고 되레 늘었고, 박근혜 정부도 파리기후변화협약 채택을 앞두고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재조정하기만 했지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한국이 기후 악당 소리를 계속 듣고 살 수는 없지 않겠나.
- 환경문제에 있어서 목표치만 높게 잡고 실현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 내가 항상 지도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환경 목표를 정할 때는 "야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지금 목표보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는 게 야망이다. 누구나 달성할 수 있다면 그건 야망이 아니다. 그게 되겠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다른 나라 하는 거 보고 쫓아가선 안된다.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한다.
- 문재인 정부가 탄소중립 비전을 발표했는데 구체적으로 뭐부터 해야할까
▶문 대통령이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시라"고 제안했다. 지금 대통령 직속 기구를 만들어놔도 정권 바뀌면 흐지부지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지금은 환경부 장관 소관으로 내려가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세계 최초 녹색성장법까지 만들었는데 지금은 총리실로 다 내려가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문대통령을 포함해 앞으로 7명의 대통령이 똑같은 야망을 갖고 해야한다. 문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상황에서 탄소중립 이거 하나에만 매달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내가 직접 책임진다는 의식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한다.
- 올해초 기후적응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기후변화 적응에도 나서야한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 적응이 지금 왜 중요한가.
▶2015년 UN사무총장으로써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에서 전세계의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담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내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성과를 이끌어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가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 완화에 대해서는 최근 각국이 많은 진전을 보여왔지만, 적응에 대해서는 진전이 더뎠다. CAS2021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30여개국 정상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 적응에 대해 긴밀히 협력해야한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전세계가 기후변화에 쓰는 돈 중 5%만이 적응에 쓰여지고 나머지 95%가 완화로 간다. 이걸 50대50으로 맞춰보자는 게 이날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 한국은 기후변화 적응에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나. 국제사회에 비교해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 기후변화 '적응'의 개념은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해 대응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가 처한 코로나19 위기도 이 기후변화'적응'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만일 기후적응에 충분히 투자했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분야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일본·영국 등 주변국들엔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법률까지 마련돼있지만 우린 관련 법조차 없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도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의 해결뿐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사회·재정 및 환경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기업들의 대응 방식으로 최근 한국 기업들의 RE100 가입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는데, RE100에 대한 중장기적 전망은 어떤가
▶ 현재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 284개는 공급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RE100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아 기업들이 RE100 가입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정부가 지난해 재생에너지 전력에 높은 비용(녹색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경우 인증서를 발급하거나 제3자 전력구매계약을 도입하는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지원방안을 발표했으니 우리도 앞으로 가입이 늘어날 것이라 본다. 향후 신기후체제가 출범하고 탄소국경세 도입 얘기가 각국에서 나오고 있는만큼 국내외적으로 기업들의 RE100 참여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예경 기자 / 사진 = 이승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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