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이 병상에서 문재인 정부에 남긴 말
“민중의 자존심을 갖고 소신대로 해보시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현대사를 90년 가까운 삶에 아로새긴 그의 시선은 늘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을 향했다.
병상에서 백기완 선생은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진 않겠지만 그저 병실에서 한마디 남깁니다”라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당부의 말을 남겼다. 백기완 선생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다가서는 그 태도, 방법. 다 환영하고 싶습니다. 생각대로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마디 보태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 리본을 단 백기완 선생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주체적인 줄기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운동의 그 맥락위에 서있다는 깨우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백기완 선생은 “지난 촛불혁명은 우리 한반도의 참된 평화요, 민주요, 자주통일.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었습니다. 그 맥락위에 서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민중적인 자부심과 민중적인 배짱을 갖고 소신대로 한번 해보시오!”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고문으로 몸이 반쪽이 될지라도
백기완 선생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사, 사회운동가인 동시에 새내기, 동아리, 달동네 등 수많은 한글어를 만들어낸 우리말 운동가, 소설 <버선발 이야기>,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등을 펴낸 문필가였다.
그는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백태주는 천석꾼의 부자로 장련면의 유지로 있으면서 3.1 운동 당시 수천장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민족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 백홍렬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재직했고, 청년운동에도 나섰다. 두 부자는 각각 1923년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 수해와 지진피해가 있었을 때와 1934년 삼남지방 수재 당시에 의연금을 기부하고 구휼에 힘쓰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지만 조부 백태주가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어주다가 발각돼 고문 끝에 옥사당한 이후 가계가 급격히 몰락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남북이 분단되며 가족도 나뉘어 살게 됐다. 백 선생은 이때 부산제5육군병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전쟁 통에 징용된 작은 형이 죽기도 했다. 이같은 가족사는 이후 백 선생이 통일운동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용산구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몽둥이로 두드려 맞고 무릎을 앞으로 꺾이고 손톱을 뽑히는 등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건장하던 몸은 반쪽이 됐다. 두 번째 옥고도 치렀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마지막 원고엔 “김진숙 힘내라”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가장 최근 행보는 지난해 12월 ‘연내 중대재해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는 사회원로 기자회견’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당일 백 소장은 몸이 불편한 탓에 하루 온종일을 들여 쓴 육필 원고를 보내왔다. 그의 원고에는 “김진숙 힘내라”는 여섯 글자가 담겨있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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