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야생 벼가 식량 위기 구원투수 될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1. 2. 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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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재배 벼가 탄생하기 까지는 수천 년에 걸친 야생 벼 작물화 과정이 있었다. 앞으로는 게놈편집기술이 야생 벼를 짧은 시간안에 작물로 변신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초의 농경사회 이후 등장한 새로운 농기구는 모두 목적이 똑같았다. 사람의 힘을 덜 들이고 땅에서 식량을 더 얻어내는 것이다.” 이 말의 맥락은 우리가 앞으로 더 뜨거워지고 인구가 더 많은 세상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고민할 때 유용하다. - 아만다 리틀,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에서

최근 식당 공깃밥 가격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를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쌀 20㎏ 소매가격이 6만 원을 넘어 예년보다 무려 30%나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작황은 나쁜데 코로나19로 집에서 먹는 쌀의 수요가 늘어 상황이 더 나빠졌다. 다른 농산물 대다수도 정도만 다를 뿐 경향은 같다. 

그런데 왠지 이게 올해만의 현상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거의 해마다 기상이변이 일어나다 보니 이제 흉년이 안 들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지구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실제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밀과 콩(대두)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2050년 식량 가격 두 배 될 수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수년 사이 학술지에는 ‘다가오는 식량 위기’를 걱정하는 논문이 종종 눈에 띈다. 한 세대 뒤인 2050년 90억 명이 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지금보다 한참 증산해야 하는데, 기후변화에 대해 손 놓고 있다가는 지금보다도 오히려 줄어들게 생겼다는 것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예측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앞으로 10년마다 농작물 수확량이 2~6% 줄어든다. 그 결과 2050년 농산물 가격은 지금의 거의 두 배가 될 수도 있다. 1960년대 녹색혁명으로 농작물 수확량이 급증하며 굶주린 사람의 비율을 세계 인구의 10% 수준까지 낮췄지만(그럼에도 무려 8억 명에 이른다!) 앞으로는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번역출간된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에서 환경 저널리스트 아만다 리틀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인류가 늘 그래왔듯이 ‘기술’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며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일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번역출간된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에서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 아만다 리틀은 전통적인 농업과 급진적인 신기술을 융합해 환경을 건강하게 복원하면서도 음식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교보문고 제공

물과 비료, 농약 사용을 최적화하는 컴퓨터 제어 농장에서 넓은 땅이 필요하지 않은 수직농장,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프로그램, 가뭄 해결을 위한 인공강우까지 다양한 기술이 소개돼 있지만, 아무래도 책의 3장에서 다룬 새로운 작물 개량 기술과 12장에서 소개한 새로운 농작물을 만드는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경우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학술지 ‘셀’에 책의 3장과 12장 내용을 아우르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발표됐다. 중국 스테이트키식물유전체학연구소가 주축이 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유전자편집기술로 야생 벼를 짧은 시간에 작물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밀과 함께 주식 작물의 양 축을 이루는 벼는 이미 수천 년 전 작물화됐고 오늘날 수많은 품종이 개발돼 있다. 그럼에도 굳이 야생벼를 가져다 작물화하려는 이유가 뭘까.

잠재력 풍부한 4배체 벼

2배체 재배 벼(O. sativa)와 4배체 야생 벼(O. alta)는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야생 벼는 훨씬 크고 이삭도 긴 반면 정작 낟알은 작고 까끄라기가 길다. 앞으로 게놈편집기술이 야생 벼를 작물로 변신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셀' 제공

물론 기존 벼를 개선해 수확량을 늘리고 급격한 기후변화나 신종 병해충 같은 환경 스트레스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짜낼 만큼 짜낸 상태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획기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몇몇 과학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자생하고 있는 야생벼로 눈을 돌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찾고 있다. 

소위 벼로 불리는 벼속(Oryza) 식물 27종 가운데 두 종만이 작물화됐고(엄밀히 말하면 작물화 과정에서 새로운 종이 됐다) 나머지는 모두 야생 벼다. 벼속 식물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11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으로 드러났다. 2배체가 6가지(AA, BB, CC, EE, FF, GG)이고 4배체가 5가지(BBCC, CCDD, KKLL, HHKK, HHJJ)다. 

2배체나 4배체는 벼의 배수성(polyploidy)을 나타내는 용어다. 2배체는 염색체 한 쌍을 지닌 상태로 사람도 여기에 해당한다. 2배체 벼속 식물이 6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건 염색체의 기원이 같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꽤 달라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작물화된 벼 2종은 AA형이다.

벼속(Oryza) 식물 27종의 계통수로, 대략 1500만 년 전 종분화가 시작돼 오늘날 2배체 6가지, 4배체 5가지로 나뉜다. 아프리카에서 작물화된 벼(O. glaberrima)와 아시아에서 작물화된 벼(O. sativa)는 AA형이다(맨 위). 최근 게놈편집기술을 써서 4배체 CCDD형인 O. alta를 작물화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네이처 리뷰스 유전학’ 제공

진핵생물은 수벌이나 수개미 같은 반수체를 제외하면 다들 2배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연계에는 다배체인 생물도 많고 특히 식물에는 더 흔하다. 서로 다른 유형의 2배체 사이에서 나온 잡종(예를 들어 BB형과 CC형 사이에서 나온 BC형)이 생식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유형의 짝이 되는 염색체를 상동염색체로 인식하지 못하면 감수분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 결과 2배체 자체가 생식세포가 돼 수분이 일어나면 4배체 식물이 나온다(예를 들어 BC형 사이에서 BBCC형).

4배체가 되면 유전자 수가 2배가 돼 다양성이 커지므로 유용한 작물이 될 잠재력이 크다. 실제 많은 농작물이 4배체, 심지어 6배체 식물이다. 예를 들어 밀은 파스타용 엠머밀이 4배체이고 빵과 면을 만드는 빵밀은 6배체다. 요즘 한참 인기가 많은 딸기도 6배체다. 

그럼에도 작물화된 벼는 2배체(AA)이고 여기에 다른 유형을 교배해 4배체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미 4배체인 야생벼를 작물화하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연구자들이 고른 종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야생벼(학명 Oryza alta. 이하 알타)로 CCDD형이다. 

수천 년 걸린 작물화 10년 만에 완성

1960년대 녹색혁명에서 벼의 키가 작고 낟알이 많이 열리게 만드는 sd1 유전자 변이의 발견이 큰 역할을 했다. 게놈편집기술로 이 변이형을 알타 야생형(PPR1)에 도입하자 역시 키가 작아졌다(sd1CR-1). 이는 줄기 마디 사이의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이다. 셀 제공

야생 벼 작물화의 역사는 약 1만 년 전 누군가가 야생 벼에서 우연히 탈립성이 크게 약해진 변이체를 발견한 것에서 시작됐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낟알이 익으면 이삭에서 떨어져 사방으로 흩어지기 마련인데 변이체는 그대로 달려있으니 수확하기 쉽고 이를 심어 자란 벼에서도 그 특성이 유지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 뒤 수천 년에 걸쳐 낟알의 크기 등 여러 특성이 바람직한 변이체를 선별해 오늘날 재배 벼가 탄생했다.

지난 2006년 재배 벼의 탈립성 상실에 관여하는 유전자 Sh4와 qSH1가 밝혀졌다. 이들의 변이로 낟알과 꽃자루 사이의 탈리층이 생기지 않으면서 낟알이 익은 뒤에도 붙어있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알타의 게놈에서 재배 벼의 qSH1에 해당하는 유전자 두 개(CC형과 DD형)를 확인했다. 게놈편집기술로 두 유전자를 고장내자 기존 재배 벼처럼 탈리층이 형성되지 않으면서 낟알이 익은 뒤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1960년대 현대 벼 품종을 탄생시켜 수확량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녹색혁명 유전자’로 불리는 sd1의 변이형으로 바꿔치기했다. sd1 변이형을 지닌 벼(사티바)는 줄기가 짧아 잘 쓰러지지 않고 낟알도 많이 열린다. sd1 변이형인 알타 역시 야생형에 비해 키가 훨씬 작아졌다. 줄기 마디 사이의 간격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한편 씨앗의 모양에 관여하는 GS3 유전자를 사티바 유형을 바꾸자 낟알의 길이가 10% 정도 길어졌다.

식물의 생태도 쉽게 바꿀 수 있다. 알타는 남미의 저위도 열대지역이 원산지라 중위도인 북위 40도의 베이징에서는 이삭이 패지 못해 낟알이 열리지 않는다. 사티바에서 이삭이 패는 데 관련한 유전자는 Ghd7과 DTH7이다. 연구자들은 알타의 해당 유전자 네 개(4배체이므로)를 게놈편집기술로 바꿔 8가지 변이체를 얻었다. 베이징에서 테스트한 결과 변이체에 따라 이르면 82일에서 늦어도 130일 만에 이삭이 팼다. 반면 대조군인 야생형은 150일이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았다. 끝으로 연구자들은 알타 유전자 8쌍(16개)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멀티플렉스(multiplex) 게놈편집기술이 작동함을 보였다.

야생종 알타의 작물화 관련 유전자들을 재배종 사티바와 똑같은 유형으로 바꾼다고 해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종에 따라 유전자를 바꾸면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실험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이뤄낸 작물화 과정을 불과 10년 만에 해낼 수도 있음을 보였다. 

오늘날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고 있다. 이들 다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4배체 야생 벼의 작물화를 비롯해 작물 개량 연구를 혁신시키고 있는 게놈편집기술이야말로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현대의 ‘새로운 농기구’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약 1만 년 전 누군가가 야생 벼에서 낟알이 흩어지지 않는 변이체를 발견해 선별한 게 작물화의 시작으로 보인다. 알타의 야생형(PPR1)은 낟알과 꽃자루(PE) 사이에 탈리층(AL)이 형성돼(현미경 사진 위) 낟알이 익으면 쉽게 떨어진다. 게놈편집기술로 야생 벼의 탈립성 관련 유전자(qSH1) 두 개(CC형과 DD형)를 고장내면 탈리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현미경 사진 아래) 재배 벼처럼 낟알이 익은 뒤에도 붙어있다. 셀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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