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직장 회식, 복종의 의례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국 대학과 노르웨이 대학 사이에 차이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학 근처 동네의 풍경이다. 한국 대학 캠퍼스는 대개 유흥가에 둘러싸여 있다. 학생들이 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카페도 거기에는 많지만, 주점·노래방 등도 적지 않다. 북유럽 대학에서는 구내에 교직원·학생들이 할인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꼭 있지만 밖에 나가면 카페들은 몇군데 있어도 한국과 같은 ‘유흥가’는 찾아볼 수 없다. 대학뿐인가? 서울의 각종 오피스 빌딩 ‘숲’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흥가를, 기업 본부와 정부 청사 등이 있는 오슬로 시내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유흥 공간이야 당연히 있지만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터와 그다지 가깝지 않다. 그들은 ‘노동’의 연장선상에서 유흥가로 갈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라고 해서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노르웨이인의 연평균 주량(7.7리터)은 한국인 성인의 주량(12.3리터)보다야 적지만, 주류 판매를 국가 독점으로 하여 높은 술값을 매겨온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술 문화’를 근절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터’와 ‘술 파티’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균형이 잡힌 사회에서는 성립부터가 불가능하다.
일터란 무엇인가? 노동자가 품을 팔아 품삯을 받는 곳일 뿐이다. 평일 8시간 동안 근무하는 것 이외에는 노동시간의 판매자인 노동자에게는 고용주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지 않는다. 슈퍼에서 우리에게 식량을 파는 사장님이 고객과 술을 같이 마실 의무가 없듯이, 노동시간의 판매자가 직장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끌려가서 술 마시는 것은 법적으로는 어불성설이다. 사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근무시간 이외에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업무상 연락을 하는 것도 소송감이다. 한국은 어떤가.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재작년에 직장인 456명에게 설문한 ‘모바일 메신저 업무처리 현황’에선 10명 중 7명(68.2%)이 근무시간 외에 메신저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노무관리 ‘관행’이 ‘정상’에서 한참 멀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등과 함께 사실상의 회식 참여 준강요는 아직도 국내 직장 관리자들 다수가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인권 감수성이 성장함에 따라 회식 참여 강요의 강도는 상당히 완화되었다. 내가 국내 직장에 다니면서 한국 ‘직장 문화’를 체험했던 1990년대 말 같았으면 기업이나 대학가에서 회식 참여 회피는 결근보다 더 큰 ‘죄’로 인식되었던 직장들도 흔했다. 회식 참여를 대놓고 거부한다는 것은 중무장한 전경들이 진압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일보다 더 많은 용기를 요구했고, 단순한 회피도 거의 ‘상사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가 쉬웠다. 지금은 어떤가.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작년에 직장인 659명을 대상으로 회식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45%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무려 41%가 ‘눈치 보인다’고 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이 조사에선 13%가 ‘회식 참석은 무조건적’이라고 답했다. 즉, 개선은 되어가지만, ‘강요된 집단 유흥’은 여전히 다수의 한국 직장인이 직면하게 되는 ‘헬조선’의 한 측면이다.
코로나로 초비상이 걸리고 당국에서 모이지 말 것을 간곡히 권하는 상황인데도 무려 22%가 ‘회식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봐서는, 회식이란 단순히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자리’라기보다는 차라리 ‘회사’라는 유사 ‘왕국’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의례’에 더 가깝다. ‘의례’란 사회적 관계들을 재확인하고 공고화하는, 상징성이 높은 절차인데 회식이라는 의례는 과연 어떤 관계들을 재확인하는 것일까? 직장의 관리자들은 회식의 함의에 대해 ‘일체감·단결력 배양’이라고 하겠지만, 전형적인 회식을 인류학자의 눈으로 참여·관찰하다 보면 무엇보다 먼저 ‘서열 관계’가 재확인되는 자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회식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상사의 ‘보이지 않는’ 명령에 복종하는 의미가 짙은 거고, 회식자리에서 부하가 상사에게 술을 따라주는 일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지만 조금만 관찰해도 누가 상사이고 누가 부하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회식이라는 (비공식적) ‘행사’의 진행을 총괄하는 상사는 부하들의 고충 사항이나 부탁을 들어주고 부하에게는 (묵시적으로 지속적 복종을 대가로 요구하는) 각종의 약속 등을 해준다. (단, 부하 직원들을 상대로 온라인 리서치 업체인 엠브레인이 4년 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사의 술자리 약속’ 이행률은 19%에 그친다고 한다.) 직원들이 애써 싫은 표정을 감추고 상사가 애써 ‘온정’을 가장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회식 풍경’일 것이다.
‘술김’에 희롱이나 폭언, 폭행 같은 온갖 불법적인 행위들이 종종 일어나고 부하에게는 지옥처럼 괴롭고 심지어 상사에게도 얼마든지 부담이 될 수 있는 이 회식이라는 의례를,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강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는 한국 기업들의 이윤 수취 전략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예컨대 노르웨이의 4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비교적 낮은 효율을 ‘무제한 장시간 노동’ 강요로 상쇄한다. 정부가 52시간제를 실시한다 해도 특히 제조업과 건설 부문의 현장에서는 이 52시간제가 유명무실해 실질적 주당 노동시간이 여전히 60시간 정도 된다는 것은, 여러 노조의 조합원 조사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을 그야말로 기계처럼, ‘언제든지 편하게’ 부릴 수 있으려면 저녁이나 주말에는 ‘카톡 업무지시’ 등으로 그들의 개인시간까지 식민화해 노동시간과 개인시간의 구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편, 상사가 ‘온정적 가부장’의 역할을 연출하는 회식이라는 서열적 복종의 의례를 많은 직장에서 사실상 필수화하는 것이다. 그런 회식자리들이 만들어내는 가부장적 ‘유사 가정’의 분위기에서는 불법 초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하다.
노동자가 8시간 일하고 나서 저녁이나 주말, 휴가 때 직장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잊을 수 있는 나라야말로 노동자에게 좋은 나라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되자면 회식 강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한편 ‘회식 없는 회사야말로 우량 회사’라는 의식부터 빨리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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