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① 우리동네 생활 방사선, 시민들이 알아서 감시하라구요?
지난해 11월 27일 서울행정법원. 40대 남성이 법원 건물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습니다. 춘천 시민 강종윤씨입니다. 춘천 이웃 30여명과 함께 '춘천 방사능 시민대책위' 구성원으로 일해온 지 6년. 방사능측정기를 들고 몇년 간 춘천시내 건물 곳곳을 돌며 방사선 수치를 쟀습니다. 그 결과를 근거로 시민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소송을 냈습니다. 춘천 시내에서 높게 측정되는 방사능 관련 수치를 전문적으로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날 법원은 시민들 손을 들어줬습니다.
시민들은 이런 요청을 왜 소송까지 내가며 해야 했을까요?
●"우리 동네 방사능 안전한지 조사 좀 해주세요" : 춘천 시민들, 6년의 투쟁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지난해 11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춘천 시민들의 방사능 조사 신청을 거부한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춘천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원안위가 춘천시내 골재장 두 곳에서 나오는 골재의 방사선 수치 실태를 조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춘천 시민들은 2014년부터 지역 방사능 문제 대책위를 꾸려 활동했습니다. 춘천지역 미군 기지 반환 과정에서 핵미사일 관리가 부실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불안한 마음에 직접 방사선을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생업을 마친 뒤 저녁 시간을 쪼개어 만나 함께 공부를 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측정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시내 곳곳을 돌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청소년들이 오가는 한 시설에서도 600nSv/h대 방사선이 측정됐다고 합니다. 이 건물 안에서 측정하면 600nSv/h를 웃돌던 수치가 건물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 측정하면 반의 반으로 뚝 떨어지는 걸 취재진도 현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시민들은 건물 건축 자재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이밖에도 시민들은 아파트 실내, 초등학교, 지하철역 등 225곳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평균 323nSv/h(시간당 나노시버트)의 방사선이 나오고 있단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원안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받는 연평균 생활방사선량은 3mSv(30만nSv) 정도입니다. 춘천의 청소년 시설에서 1주일에 3번 5시간을 보낸다고 친다면 연간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48만nSv 정도가 되는 겁니다.
이 정도 수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높은 수치"라고 평가합니다. 특히 그 건물이 집이나 학교처럼 노출 시간이 길수록 위험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조사를 통해 정확히 어떤 건축 자재가 문제인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시민들이 지목하는 원인은 골재입니다. 춘천 지역 아스팔트나 건물 건축 자재에 쓰이는 골재는 춘천 지역 골재장 두 곳에서 대부분 다 조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곳 골재들이 유독 높은 방사선 수치를 보이더라는 겁니다.
수년 간의 측정치들을 기록한 춘천 시내 '방사능 지도'가 탄생했습니다. 이걸 근거로 시민들은 2019년부터 춘천시, 강원도교육청, 원안위 등을 상대로 조사를 하거나 안전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발로 뛰며 측정해보니 수치가 높게 나오는데, 이게 정확한 것인지, 건강상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했습니다.
실제 화강암으로 된 기반암 지대의 경계 부분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선이 뿜어져나올 수 있다는 논문도 여럿입니다. 시민들은 혹시 두곳 골재장이 이런 기반암 위에 지어져서 그런 건 아닌지, 골재 생산 과정 상 특정 요소 때문에 높은 방사선 수치가 측정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골재장의 위치를 옮기는 등 공급처에 변화를 줘서 해결할 수 있으니 일단 실태 파악부터 해달라는 겁니다.
● "법에 적혀 있는데 왜 안 돼요?" : '원료물질' 여부 둘러싼 싸움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 또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춘천 시민 강종윤 씨는 "(조사를 해달라고 하니)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국토교통부로 가라고 하고, 국토부는 원안위로 가라고 했다. 다시 원안위에 물어보니 이번엔 환경부로 가라고 했는데, 환경부는 원안위에 다시 물으라 했다"며 "탁구공이 된 기분이었다"고 그때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다 알겠는데, 원안위는 왜 조사를 못 한다는 거지?'
시민들은 법령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안위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지점은 골재가 '원료물질'인지 여부였습니다. 원안위는 골재의 경우 '원료물질'이 아니어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 말하는 '원료물질'이란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서 정의됩니다.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
제2조(원료물질의 방사능 농도 및 수량)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2호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하는 원료물질의 방사능 농도와 수량은 다음 각 호와 같다.
△ 포타슘 40의 농도는 그램(g)당 1 베크렐(Bq)
△ 그 밖에 모든 천연방사성핵종은 그램당 0.1 베크렐
앞서 대책위 관계자들은 2019년 춘천 강원대 야외주차장에서 골재를 채취해서 원자력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연구원의 측정 결과에 따르면 우라늄은 0.238±17Bq(베크렐)/g, 토륨은 0.214±15Bq/g이 검출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춘천시민들이 문제삼고 있는 골재는 원료물질에 해당합니다.
법상 '원료물질'로 부르기 위해 필요한 방사능 기준의 두 배를 넘긴 수준입니다.
그럼 조사 권한이 있는데 왜 조사를 못 하겠다는 걸까요?
● "조사 못한다"는 그들의 속사정
소송이 진행되면서 원안위의 입장은 조금씩 뉘앙스가 달라졌습니다.
골재는 원료물질이 아니라던 원안위는, 나아가 설령 원료물질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조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민단체가 의뢰한 골재 시료는 생활방사선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원료물질 농도기준'을 초과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골재의 경우 사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기 어렵고, 시공된 이후 개별 건축물마다 사용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피폭방사선량을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조사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원안위가 기관 편의를 위해 법에도 없는 기준을 들이밀며 독단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원안위 측은 또 시민단체의 조사 방식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골재의 방사선량을 측정하려면, 자연상에 존재하는 배경 방사선 값을 빼야 정확한데 측정기에 뜨는 수치 그 자체를 문제삼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로처럼 야외에 존재하는 골재의 경우, 시민들이 피폭될 만큼 가까이 있거나 접촉하는 시간이 길지 않은데, 측정되는 방사선 수치에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노출되는 것처럼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선 기반암 때문에 우리나라의 2배 정도가 되는 자연방사선이 뿜어져나오고 있다는 해외 사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안위의 항변은 조사의 필요성을 되레 강조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전문성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한 불안을 수치화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시내 곳곳을 측정했습니다. 자료의 객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안위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맡겨 분석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해당 골재가 원료물질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원료물질의 유통 및 제조 현황을 감시할 의무가 있는 전문 기관인 원안위가 이어받아 그 주장을 검증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들 단체를 법률 대리해온 진재용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건 안전한지 조사를 해달라는 것인데, 원안위는 우리가 조사를 하려면 당신들이 모든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해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원안위는 꿈쩍도 안 했습니다.
결국 시민들은 지난해 3월 조사 권한 요청을 거부한 원안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장을 냈습니다.
결과는 시민들의 압승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자세한 법원의 판단 내용은 다음 취재설명서에서 계속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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