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남자는 고독해서 죽는다

한겨레 2021. 2. 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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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칼럼]고시원 방에서 악취로 마지막 존재를 알리는 일은 존엄한 죽음이라 말할 수 없다. 이때 훼손된 것은 그의 존엄만이 아니다. 그의 소외와 고립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문을 닫아건 책임이 있다면, 그 문을 열지 않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2018년 1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고독사한 사람의 화장을 마친 뒤 무연고자 장례지원단체인 ‘나눔과 나눔’ 활동가들이 유골함과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영전ㅣ한양대 의대 교수

“최○○(남)님은 1960년생으로 서울시 ○○구에 사시다 지난 2020년 11월21일 거주하시던 곳에서 사망하신 채 발견되셨습니다. 사인은 불명입니다. 최○○님의 유골은 승화원 내 유택동산에 산골될 예정입니다.”

양력설과 음력설 사이 1월 한달 동안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무연고자 80분의 장례가 진행되었다. 2019년 한해 전국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2536명 있었고 매년 10%포인트씩 증가하고 있으니, 올해는 3000명을 넘길 듯하다. 사실 ‘무연고자’란 말은 옳지 않다. 국어사전에서 ‘연고자’란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관계를 맺은 이를 말하는데, 태어나 한 사람과도 정을 나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무연고자의 약 80%가 서류상 가족이 있으며, 60~70%는 연고자가 빈곤이나 가족해체 등을 이유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라고 한다.

지난 한달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장례를 치른 80분은 한분 한분 소중한 자기 역사를 가진 분들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수치로 환원하여 평균을 내고 범주화하여 설명하는 잘못을 범하고 싶지 않지만, 조심스레 몇가지만 이야기하려 한다. 80분의 평균 사망연령은 64.6세로 한국 평균수명보다 10년 가까이 적다. 사망원인은 불명(16)이 제일 많고 암(12), 뇌졸중(11) 순이다. 자살도 8건이나 되고, 사망한 채 발견된 경우가 26건이다. 거주지는 구로구(10), 영등포구(8), 종로구(8)가 많고, 강남구는 두분, 서초구는 한분도 없다. 사망 장소는 요양원·요양병원이 31건, 병원 21건, 쪽방·고시방 등 거주시설이 20건, 거리 등도 7건에 달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80분 중 71분이 남자라는 사실이다.

흔히 무연고 사망을 ‘고독사’라 부른다. 지난해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최소한의 행정 조치에만 초점을 맞출 뿐, 실효적인 정책은 요원해 보인다. 고독사의 중요 원인인 빈곤, 가족해체, 고령화 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원인들에 대한 인식은 널리 퍼져 있는 반면, 고독사의 70~90%가 남자라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별로 없다.

혹자는 남자는 늙어 죽지 않고 고독해서 죽는다고 한다. 남자 고독사가 왜 많을까? 빈번히 돌아오는 대답은 ‘인과응보’이다. 가정폭력, 술주정, 외도, 도박, 꼰대, 마초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자와 달리 생각의 유연성이 줄어들고, 사회적응 속도가 더 느려져 소외와 고립이 되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설령 그가 못난 남편과 아버지였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가 정언명령이라면, 모든 존재는 또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가진다. 고시원 방에서 악취로 마지막 존재를 알리는 일은 존엄한 죽음이라 말할 수 없다. 이때 훼손된 것은 그의 존엄만이 아니다. 그의 소외와 고립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문을 닫아건 책임이 있다면, 그 문을 열지 않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의 13.4%가 장애인이었고, 대부분 가난했다고 한다. 안전장치 없는 공사장에서 떨어져 장애를 가지게 되고, 산재보상금 없이 불법해고당해 가난해진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부자이고 가족과 친구가 있으니 고독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하지 말라. 그들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점차 인간관계는 휘발성 거미줄처럼 되어가고, 가족애, 우정은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하게 된 지 오래다.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인류적 재난 앞에서도 백신 가로채기와 승자독식이 만연하고 연민과 연대의 가치는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어린 딸이 콩콩콩 뛰어와 가슴에 포옥 안기는 그런 느낌을 갖기 어려워진 언택트 시대,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욱 고독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죽음은 고독하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맞이하는 죽음일 때도 혼자 떠나야 하는 마지막 순간은 늘 외롭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모든 죽음은 고독사다. 하지만 일본 존엄사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한 나가오 가즈히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을 때는 혼자지만 죽은 뒤에도 혼자라면 슬픈 일이다.” 이제 막 설 연휴를 끝내고 두번째 새해를 맞은 지금, 오늘도 승화원에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가 우리에게 묻는다. 파산하고 오랜 질병을 앓아도 당신의 주검 앞에서 하늘이 무너진 듯 울어줄 누군가를 가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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