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인천 등 곳곳서 백기완 선생 추모 시민분향소 세워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15일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추모하는 시민분향소가 부산·인천 등 전국에 세워졌다.
부산지역 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16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부산운동본부는 "백기완 선생은 이 땅의 민주화, 노동자·민중을 위해 앞장섰던 분이다. 그 정신을 계승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기완 선생 별세]
지난 15일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추모하는 시민분향소가 부산·인천 등 전국에 세워졌다.
부산지역 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16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부산운동본부는 “백기완 선생은 이 땅의 민주화, 노동자·민중을 위해 앞장섰던 분이다. 그 정신을 계승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시민분향소는 18일까지 운영된다.
부산민주공원은 지난 15일 중구 영주동의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1층에 분향소를 설치해 추모객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도 동구 범일동에 있는 노동복지회관에서 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는 인천시청 인천애뜰에 백기완 선생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김종기 부산민주공원 관장은 “선생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영원한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의 안식을 마음속 깊이 기원한다”고 말했다.
193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선생은 1946년 서울로 내려왔다. 1952년부터 10여년 동안 야학을 운영했고 도시 빈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농민운동에 몸담았다. 1960년 4·19혁명 운동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반독재 민주화 투쟁, 통일운동에 나섰다. 1964년 한-일 협정을 반대하며 반일 투쟁을 펼치다 투옥됐고, 1966년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반독재 운동을 펼쳤다. 1974년엔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이끌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79년엔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를 주도하다 보안사에 끌려가 감금·고문당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열린 13대 대통령 선거에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선생은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용산참사 투쟁,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와 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 백남기 농민 사망 투쟁,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 민주운동 현장 앞에 나섰다. 문인으로도 유명한 선생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선생은 지난 15일 새벽 4시께 영면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아침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김영동 이정하 기자 ydki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결혼 7년차 생긴 아이, 엄마 성 쓰려면 이혼밖에 없나요?
- 다시 두꺼운 패딩을…모레까지 강추위, 오늘 낮에는 짧고 강한 눈
- 권영길 “백기완 이름 자체가 탄압받는 이들에게 길잡이”
- 얇고 길쭉한 ‘연필타워’, 도시 미학인가 무모함인가
- 코카콜라, 페트병과 이별 준비 중…이젠 종이병에 담는다
- 수조원 추정 ‘이건희 컬렉션’…국가 공공유산화 대안 나올까
- 더는 뺏길 게 없는 도살장 앞 흰 소…‘비질’은 계속된다
- 문 대통령 “학교부터 국가대표 전반까지 폭력 근절해야”
- MB국정원 사찰파일, 왜 뒤늦게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나
- 박훈정 감독 신작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