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싸우는 서울시장 예비후보들
우상호·박영선도 시험대..野 후보도 무상급식·日발언 재소환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여야 예비후보 간 샅바싸움도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당 안팎의 경쟁자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준비를 하는 예비후보들은 나란히 '과거의 자신'부터 먼저 이겨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단일화 논의에서부터 각종 정책과 이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질수록 자신의 과거 언행에 발 묶여 지지부진한 흐름을 떨쳐내지 못하는 '경고등'이 잇달아 켜지고 있어서다.
'꼬리표' 또 붙을라…토론회 두고 신경전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와 금태섭 무소속 예비후보의 1차 TV토론 일정이 진통 끝에 오는 18일로 최종 확정됐다. 양측이 토론 방식과 절차에 이견을 보이며 기싸움을 벌인 탓에 토론회는 예정된 일정보다 결국 사흘 늦게 열리게 됐다.
선거에 나선 주자들의 토론은 여론에 강력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된다. 반대로 토론에서 경쟁자에 밀리거나 헛발질을 하게 되면 후유증도 그만큼 오래 이어진다. '제 3지대'에서 함께 뛰고 있는 안 예비후보와 금 예비후보가 1차 TV토론을 두고 설전을 벌인 것도 이같은 맥락이 반영됐다.
특히 안 예비후보로서는 이번 토론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안 예비후보는 지난 2017년 19대 대선 토론에서 뼈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향해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가 스스로 그 단어에 갇히게 됐다. 토론에서 나온 정책 검증 등은 모두 휘발돼 버렸고 안 후보 입에서 나온 'MB 아바타'와 '갑철수(갑질+안철수)' 이미지만 남아 희화화됐다.
결국 안 후보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자신을 향한 상대 진영의 도 넘은 공격을 지적하려던 것이었지만, 그 두 단어만 여론의 뇌리에 깊이 남아버렸다. 이번 선거처럼 안 후보의 정치 행보 중요 국면마다 이 발언은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고, 아직도 스스로 놓은 덫을 완전히 풀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안 예비후보 측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토론 연습을 충분히 했다며 "이번에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지율 격차가 큰 금 예비후보와 토론 방식을 두고 연일 삐걱대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오히려 중량감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與 주자도 과거 소환…'광주 술판' '당과의 괴리' 시험대
과거와 싸워야 하는건 여당 예비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박원순 계승', '박원순 롤모델' 발언을 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이 발언은 21년 전 우 예비후보는 물론 민주화세력의 문제적 행실을 재환기하는 '악수'가 됐다. 우 예비후보와 당시 민주화운동에 몸 담은 전현직 정치인들은 과거 5·18 추념일 전야제가 있던 날 광주의 한 술집에서 술판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뭇매를 맞은 전력이 있다. 야당은 당시 술자리에 여성 접대원들이 동석했다는 점, 또 이 자리에서 우 예비후보가 임수경 전 의원을 향해 폭언을 했다는 점을 최근의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발언과 연결시켜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은 우 예비후보를 향해 '여성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가졌다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직격했다. 논란이 커지자 우 예비후보는 과거 광주 술자리와 박 전 시장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 또는 해명을 했지만, 지지부진한 지지율 돌파에 또 다른 변수를 추가한 모양새가 됐다.
우 예비후보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도 난관은 있다. 박 예비후보는 친문(親文) 지지자들은 물론 당 지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검증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박 예비후보는 2014년 민주당 원내대표 재임 시절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친노 세력 등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박 예비후보가 당시 여당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등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어느 당 원내대표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도 나왔다. 각종 경제법안 등을 처리할 때도 이같은 지적은 반복됐다.
이번 당내 경선 과정에서 우 예비후보가 박 예비후보의 부동산 공약을 비판하며 "민주당스럽지 않다"는 평가를 낸 것은 박 예비후보로서는 쓰라린 지적이다. 우 예비후보는 15일 열린 첫 TV토론에서도 박 예비후보의 '21분 도시' 추진과 '강남 재개발·재건축' 공약이 민주당 및 서민 삶과 괴리가 있다는 점을 설파하며 이를 집중공략했다.
10년 전 장면 소환한 '조건부 출마'와 '일본 발언'
첫 번째 토론 대결을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의 속내도 복잡하다.
오세훈 예비후보는 보궐선거 출사표를 던지는 출발점에 서자마자 과거의 치욕적인 장면을 마주해야 했다. 오 예비후보는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 "안철수 후보가 입당하지 않는다면 출마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건부 출마' 선언은 곧바로 오 예비후보의 최대 약점인 무상급식 투표 장면을 소환하고 말았다.
오 예비후보는 10년 전인 2011년 서울시장 재직 시절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무상급식 찬반 투표 승부수를 띄웠다가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 이후 보수정당은 단 한번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오 예비후보 역시 재기 발판을 만들지 못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번이 서울시장을 가져올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지만, 오 예비후보가 출발선에서부터 잊으려했던 과거를 불러들이는 선언을 하면서 스텝이 꼬였다. 특히 오 예비후보가 복지공약을 말할 때마다 '무상급식' 과거도 함께 소환되면서 최종 후보 선출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나경원 예비후보는 최근 위안부 왜곡 발언을 한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했다가 여당의 비판을 받았다. 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나 예비후보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 말을 한 사람이 나경원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럽다"고 일갈했다.
신 최고위원은 "나경원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 기만적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잘된 합의라고 평가했고, 친일 청산을 위해 해방 후 설치됐던 '반민특위가 국민분열을 일으켰다'라는 말을 했다"며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나 예비후보의 과거 발언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나 예비후보의 이런 행위가 표를 얻기 위한 '임기응변식 변신'이며 '혹세무민'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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