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차 생긴 아이, 엄마 성 쓰려면 이혼밖에 없나요?
재혼가정 자녀 성 변경 '자의 성·본 변경제'로 가능할까
올해 결혼한 지 7년 된 ㄱ씨 부부는 진지하게 서류상 이혼을 고민 중이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현재 임신 5개월째인 ㄱ씨는 페이스북 페이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참여했다.
ㄱ씨 부부는 연애 때부터 자녀가 생기면 양성을 쓰되, 엄마 성을 앞에 넣자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당장 출산 계획이 없었기에 7년 전 혼인신고 때 별도로 엄마 성을 따르겠다는 협의서를 쓰지 않았다. 현 제도에서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려면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은 엄마성으로 하겠다고 별도 표기해야 하며 협의서도 따로 제출해야 한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부성우선주의)는 민법이 개정되길 바라던 차에 ㄱ씨 부부는 출산을 앞두게 됐다.
혼인신고 후 7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이를 갖게 된 ㄱ씨 부부는 현재 협의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ㄱ씨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당장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었던지라 혼인신고 때 자녀의 성에 대한 합의 부분을 놓치게 됐다. 혼인신고 후 상당 기간이 흐른 뒤 아이를 갖게 되어 이제 와 제 성을 물려주려고 하니 이혼밖에는 답이 없다고 한다.”
정말 이혼밖에 답이 없을까?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민법 제781조1항)
ㄱ씨처럼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지만 혼인신고 때 별도로 협의하지 않은 경우, 태어날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혼 후 재혼인신고를 하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현행 제도에서 혼인신고할 때 별도 협의하지 않은 부부가 태어날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ㄱ씨 부부가 고려 중인 협의이혼 후 재혼인신고.
협의이혼제도는 부부가 협의한 경우 별다른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고 서류 제출과 이혼숙려기간 3개월을 거치면 이혼이 가능하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이혼숙려기간 단축이나 면제 요청도 할 수 있다. 다시 혼인신고를 할 때는 특별한 제한이 없이 당사자 의사만으로 가능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ㄱ씨 부부는 자녀 출생 전 5개월간 이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둘째, ‘자의 성과 본의 변경’ 제도 활용.
이 제도는 가족관계 변동이나 새로운 가족관계 형성에 있어 자녀 성 변경을 허용해야 하는 경우, ‘자의 복리’를 위해 가정법원에서 자녀 성 변경을 허가해주는 절차다. 가까운 가정법원에 신청하면 빠르면 1~2개월, 법원에 따라 수개월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아이 대리인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청구할 수 있고, 어머니가 청구할 경우 친생부 동의가 필요하다.
이 제도는 2005년 민법 개정 때 재혼가정 자녀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고통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재는 재혼가정 외에도 이용할 수 있다고 법원은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법원 누리집은 이 제도에 대해 “‘자의 복리를 위하여’라는 요건은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므로 자의 성과 본의 변경 제도는 재혼가정 이외에도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자의 성·본 변경 제도’ 신청을 받아 지난해 546건을 처리했는데 이 중 473건이 인용됐다. 기각은 41건, 취하 등 기타는 32건이다. 인용률은 2020년 86.6%, 2019년 82.1%, 2018년 82.2%다.
엄마 성 물려주기를 원하는 부부 중 혼인신고 때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 이 제도를 통해 자녀의 성을 변경할 수 있을까.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처리 대비 인용 비율은 85% 안팎으로 높은 편이지만, 현재는 주로 친부와 친모 사이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친모가 재혼할 때 계부의 성을 따르기 위한 경우로 활용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엄마 성 물려주기를 위한 목적으로 신청해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 엄마 성 물려주기를 위해 신청한 사례를 보지 못했지만, 친부 동의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가 ‘자의 복리'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자의 성·본 변경 제도’ 활용 가능할까
비록 서류상이라도 출산을 앞두고 이혼 절차를 밟는 것이 부부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의 성본 변경 제도’를 활용할 만하다고 말한다.
현지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출산이 임박해 법원에 방문해야 하는 첫번째 방법보다 자녀 출생 뒤 성본 변경 허가를 청구하는 두번째 방법을 추천한다. 부부가 엄마 성 물려주기를 원하고 있고 ‘자의 복리’를 넓게 해석하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다만, 자의 성본 변경 제도는 인용된 이후 자녀의 기본증명서에 성 변경 사실이 남는다. 현 변호사는 “이를 원치 않으면 이혼 후 재혼인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의 성본 변경 허가신청’을 활용할 경우, 일단 자녀를 출산하고 부의 성에 따라 출생신고를 한 뒤 부모가 가까운 가정법원에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현 변호사는 “이 제도의 기각 건수는 처리 건수의 10% 정도로 높지 않은 편이다. 기각의 경우는 주로 종전의 성·본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위해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거나 친권 포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아이 성·본 변경에 반대한 경우”라고 말했다.
ㄱ씨 부부는 전례 없는 ‘자의 성과 본 변경 허가신청’에 첫 도전을 해야 할지, 울며 겨자 먹기로 서류상 이혼 절차를 밟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ㄱ씨는 “‘자의 성과 본 변경 제도는 재판부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의문이 들고, 서류상 이혼이 더 확실해 보인다. 아직 최종 결정은 못 했지만 신중히 고민한 뒤 엄마 성을 물려주기 위한 더 확실한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민법상 부성우선주의 원칙을 폐기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여성가족부도 지난달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2021~2025년)을 발표하며 자녀의 성 결정방식을 부성 우선에서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에선 지난해 8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법 제781조의 부성우선주의 원칙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해 10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차별 없이 성·본 쓰기 2법'을 발의했다. 자녀의 성과 본을 출생신고 때 정하도록 민법, 가족관계등록법을 고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관련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16일 “법무부와 협의하며 의견 청취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을 뿐 부성 우선의 성 결정방식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았다. 법이 언제 개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도 엄마 성 물려주기를 원하는 부부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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