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40대 여성 신었던 금동신발 보물 된다

전지현 2021. 2. 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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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나주 정촌고분·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보물 지정 예고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사진 제공 = 문화재청]
1500여년전 백제 시대 40대 여성이 신은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신발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6일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이 금동신발과 더불어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나온 금동신발 2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상당수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금동신발은 삼국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로 5세기 백제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며,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우리나라 고대인들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사진 제공 = 문화재청]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2014년 대형 분구묘인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굴됐다. 5∼6세기 영산강 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됐는데, 이 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으로 평가된다. 특히 금동신발은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이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여서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신발의 주인이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문화재청은 "이 금동신발은 5세기 후반께 제작돼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2009년 4기의 대형 분구묘(墳丘墓,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무덤 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 제4호 석실에서 무덤 주인의 양쪽 발에 신겨진 상태로 발굴됐다. 전체적인 형태는 배 모양으로, 발목 깃을 갖췄고,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으며, 중간 바닥이 편평하고, 뒤쪽은 약간 좁아지면서 둥근 편이다. 투각(透刻, 재료 면을 도려내거나 깎아서 무늬를 만드는 방식)한 육각형 안에 용,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雙鳥文, 두 마리 새 문양), 괴수(怪獸), 연꽃 등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신발 바닥에는 높이 1.7㎝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문화재청은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과 비교할 때 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며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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