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모리, 아사다 마오 충고 들었더라면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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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사를 늘리는 조항에 반대하며 "여성이 많이 들어온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던 모리 요시로(83)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국내외 비판에 밀려 지난주 결국 사퇴했다.
2000~2001년 일본 총리였던 모리 회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모리 총리가 "우리 이사회 여성들은 사리분별을 하지만"이라고 한 발언을 뒤집어 항의한 것이다.
모리의 후임으로 여성 조직위원회 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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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여성 이사를 늘리는 조항에 반대하며 “여성이 많이 들어온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던 모리 요시로(83)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국내외 비판에 밀려 지난주 결국 사퇴했다.
2000~2001년 일본 총리였던 모리 회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총리 시절인 2000년 5월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고 말해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 원칙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비하 발언도 거듭했다. 자민당의 저출산 해결 위원회 위원장이던 2003년에는 토론회에서 “한 자녀도 낳아본 적이 없고 부담 없는 삶을 산 나이든 여성들을 돌보느라 세금을 쓰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라며,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 아사다 마오가 실수로 넘어져 16위를 한 뒤, 그는 강연에서 “정말 보기 좋게 넘어졌다. 그 아이는 꼭 중요한 순간마다 넘어지더라”라고 했다.
거듭된 문제 발언에도 모리의 출세가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민당의 밀실 파벌정치로 총리가 됐고, 지지율 9%로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스포츠협회장과 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 등으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세계경제포럼이 집계한 성평등 순위 121위(153개국중)인 일본에서 권력자 남성들은 망언과 성폭력에도 ‘안전’하기만 했다. 2015년 당시 아베 총리의 측근인 방송사 고위간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토 시오리 기자는 “그녀가 유혹했다” “유명인의 삶을 망치고 있다” 같은 2차 가해를 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겼었다. 일본의 미투운동은 거듭 벽에 부딪혔다.
일본 여성들은 이번에 큰 벽을 부쉈다. 모리의 발언 뒤 1주일 만에 그의 사임을 촉구하는 서명에 17만명 넘게 참여했다.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침묵하지 마라, 와키마에나이 온나(사리분별 못하는 여자)들’ 메시지가 널리 확산됐다. 모리 총리가 “우리 이사회 여성들은 사리분별을 하지만…”이라고 한 발언을 뒤집어 항의한 것이다. 일본의 보수적 정치문화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유력자들끼리 막후에서 조율해 결정을 내리고, ‘사리분별을 하는’ 이들은 회의에서 침묵을 지킨다고 한다. ‘와키마에나이 온나’라는 여성들의 항의는 더이상 회의의 장식품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는 외침이다.
모리의 사임이 일본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반성한 결과가 아니라, 해외 특히 서구의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외국의 압력이 없었다면, 모리는 소셜미디어 등을 비난하면서 아마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여성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모리의 사임은 없었을 것이다.
구세대 남성들이 좌우해온 일본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모리의 후임으로 여성 조직위원회 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변화를 읽지 못하고 성차별적 인식을 고집하며 권력으로 여성들의 침묵을 강요해온 이들이 마침내 도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모리에게 ‘그 아이’로 조롱당했던 아사다 선수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잘못된 말 아닌가 생각했다. 모리씨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모리는 그 충고를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까.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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