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는 학교폭력 트라우마.. "가해자는 왜 잘 살까요?" [뉴스+]

이희경 2021. 2. 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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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학교폭력과 관련한 논문들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우울, 불안, 대인 관계시 예민성과 같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실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34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논문의 저자들은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거부민감성을 높이고, 이는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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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불안으로도 이어지는 학교폭력의 그림자
# A씨는 학창시절에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기억을 안고 있다. 같은 반 학생 대부분이 A씨를 이름 대신 비하하는 의미의 별명으로 불렀고, 무시했다. A씨는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자’라는 마음으로 학창시절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씨의 고통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부터 가해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아픈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가해자들이 대기업 직장인, 공무원 등으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분노도 생겨났다. A씨는 “수년이 지났지만 트라우마와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게 너무 억울하다”며 “꽃다운 학창시절이 지옥으로 변했던 내 과거와 같은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B씨는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학창시절 동급생에게 당했던 폭력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당시 B씨는 반에서 싸움을 잘하는 그룹에 속한 C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지속적인 폭력도 아니었고 지나가다 부딪힌 이유로 맞은 것이 전부였지만 B씨 마음속에 이 사건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친구들이 이 광경을 봤고, 당시 아무런 저항도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B씨는 “내가 왜 이런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C에게 묻고 싶다”며 “나는 일회적인 폭력의 피해자였는데도 이런 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친구들의 마음은 어떤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 이다영 자매에 대한 ‘학교폭력 미투’(폭투)를 계기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의 심각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년 전에 발생한 폭력이었지만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피해자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당시 상황을 기억, 소환하며 학교폭력 피해를 대중에 고백했다. 가해자의 처벌과 사과가 없다면 학교 폭력 피해의 후유증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학창시절의 정신적 피해는 물론 졸업 이후 대인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해악이 크다는 지적이다.

16일 학교폭력과 관련한 논문들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우울, 불안, 대인 관계시 예민성과 같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특히 장기간 학교 피해를 경함한 학생들은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학교생활에 있어서 부적응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학교폭력 피해가 학창시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타인에 대한 경계, 더 나아가 신뢰 결핍으로 이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사회불안에 미치는 영향:거부민감성의 매개효과’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타인과 상호 작용 중에 생길 수 있는 거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부민감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서는 각종 사회적 상황에서 거부를 당할 것이란 걱정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대인관계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성향으로 진행된다. 실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34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논문의 저자들은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거부민감성을 높이고, 이는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학교폭력 피해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온라인 댓글 등에서도 꾸준히 확인할 수 있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웹툰들에서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드러내고 서로 위로를 받는 댓글이 이어진다. 한 네티즌은 “학폭은 가해자는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가면 잊어버리고 까먹게 된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살아가면서 계속 생각이 나고 평생 기억에 남아 있다. 학폭 당한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랑 싸워야 한다”고 고통을 호소했고, 다른 네티즌도 “가해자들 소식 볼 때 보면 좀 비참하다. 잘 살지 못하길 바랬는데 선생님 된 애도 있더라고요. 왜 다 잘살까요”라고 적기도 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건 여전히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학교폭력 응답건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고, 2020년에는 사이버폭력 및 집단따돌림 비율이 증가하는 등 학교폭력이 점점 음성화하는 경향도 포착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폭력 응답률은 2017년 0.9%(약 3만7000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 2019년 1.6%(약 6만여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다만 2020년의 경우 피해자 응답률이 0.9%로 다시 낮아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에도 여전히 2만6000여명이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했다. 또 지난해의 경우 사이버폭력과 집단 따돌림 비중이 2019년 대비 각각 3.4%포인트, 2.8%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는 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향후 피해자들의 추가적인 폭로가 더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폭로도 성인이 되어서까지 남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면서 “학교폭력에 대해 참고 넘어가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있지만, 아직도 학생들 사이엔 학교폭력이 존재하고, 여전히 피해당한 아이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선 “‘미투 운동’처럼 ‘이제는 참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이 겪은 억울함과 트라우마, 상처 등을 지금이라도 치유 받고 싶은 생각에 이를 외부로 표출하는 일이 나왔고, 사회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이희경·이강진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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