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국내 공기업과 보조금 규정, 서둘러 점검해야
미국에 새 행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간다. 그동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다수의 행정명령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시절을 지우고 바이든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통상 정책과 관련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임을 확정 짓는 등 다자 통상질서를 세워가는 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차원에서 또는 양자, 지역 자유무역협정(FTA) 차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국영기업 및 산업보조금과 관련한 규정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이며, 그동안 진행돼온 과정을 통해 향후 진행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의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유럽연합(EU) 및 일본과 함께 지난 2017년 제11차 WTO각료회의(MC-11)에서 산업보조금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래 3년여 동안 무려 7차례에 걸쳐 공동성명을 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1월에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금지보조금 유형을 확대한다던가, 조사 당국의 입증 책임을 경감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불법적인 산업보조금에 대한 실효적인 제재를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WTO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WTO 규정 개정안은 본질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직·간접적으로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불법 산업보조금의 유형도 더 다양화하려고 한다. 예컨대 미국은 환율 저평가국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베트남산 타이어에 ‘환율 상계관세’ 조사를 진행 중이고,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WTO 회원국은 자국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간주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기후변화보조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 WTO에 제출한 바 있다.
EU도 불법 보조금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조금은 주로 국내에서 정부나 공공기관이 행하는 금전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혜택을 의미했는데, EU는 그 범위를 확장해 역외 불법 보조금의 유형을 적시하고 있다. 예컨대 어느 국영기업이 투자한 다른 나라 국적의 현지 기업이 투자국으로부터 불법 산업보조금을 받고 상품을 교역하는 경우, 이 기업이 다른 현지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거나 공공 조달에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응하는 경우 등 초국경적 보조금을 공정경쟁 위반으로 제재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한다.
한편 FTA에서는 국영기업 보조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전략산업의 경쟁력 제고 목적으로 ‘국영기업을 통해’ 대규모 산업보조금을 공여하는 간접 보조금 문제가 불거져 왔는데, WTO 협정은 이 문제를 실효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받아 왔다. 예컨대 미국은 WTO 상소기구가 국영기업의 정부 지분율뿐만 아니라 ‘정부 권한을 소유, 행사하거나 위임’받았는지를 증명하도록 한 것은 제소국에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고 반발해 왔다.
그래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국영기업 챕터는 지분율 중심으로 국영기업이 정의되고 있다. 또한 USMCA에는 전통적인 WTO 보조금협정 상 금지보조금인 수출보조금과 수입대체보조금 이외에도 신용불량 또는 지급불량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을 금지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미국, EU, 일본의 공동성명에도 유사한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국 주도의 WTO 보조금협정 개정 가능성, 우리나라의 CPTPP 가입 가능성, CPTPP 국영기업 챕터의 업그레이드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전제로 우리나라 공기업, 특히 금융 부문 공공기관의 운영 현황과 산업지원제도를 포괄적으로 재검토하고 문제가 될 만한 산업지원제도에는 선제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구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해 놓아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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