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공짜는 없다' 망각 땐 나라 파탄 난다

기자 2021. 2. 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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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부채는 용처에 따른 양날의 칼

투자 효과 클 때만 차입 순기능

폭증한 정부·가계 빚은 정반대

일본 채무 비율과 비교 부적절

3700兆 순채권, 마이너스 금리

비효율 복지 재정비 시급하다

경제 3주체인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모두 1000조 원에 바짝 다가섰다. 부채는 수술에도 살인에도 사용될 수 있는 칼과 같아서 용처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부채자금을 생산성이 높은 시설, 연구·개발(R&D), 교육 등에 투자하면 부채 상환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약정한 이자와 원금만 갚으면 되니 차입할수록 투자 효과가 크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도 대규모 차입경영으로 투자 효과를 극대화했기에 가능했다. 기업부채가 부실기업을 정상화하고, 성장 기업의 투자에 사용된다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이유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0%를 넘어서며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러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소비하거나 고위험 부동산·금융자산에 투자되는 가계부채는 소득 감소, 금리 상승, 자산가격 하락에 취약하다. 국내외 경제 충격으로 소비를 줄여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장기 저성장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연착륙을 위해 무리한 신용 회수보다 신용 공급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부채 규모는 복지 부문의 지출이 꾸준히 늘어 왔는데도 재정 건전성에 중점을 둔 당국의 노력으로 아직은 낮은 편이다. 문제는 빠른 증가 속도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저항 없는 확장재정을 편 결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순채무(D1) 기준 GDP와 비교한 국가채무비율이 10%포인트 이상 큰 폭으로 늘었다. IMF에 따르면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2015년 40%포인트대에서 올해는 50%포인트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에만 무려 4차례에 걸쳐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예산이 운영됐다. 올해도 10조 원 가까운 3차 긴급재난지원금에 이어 20조 원 안팎의 4차 긴급재난지원금이 대기 중이며, 끝난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가부채가 한국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나라는 많다. 그러나 한국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저출산과 고령화의 급격한 진전 등으로 국가채무비율을 줄이기 쉽지 않다. D1은 2014년 533조 원에서 내년에는 1000조 원을 넘고, 2030년에는 20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표심을 노린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도 재정 안정성을 위협한다. 소모성 복지 확대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으로 수익성이 낮은 투자를 부채로 지출하면 갚기가 어렵다. 재정 지출 수혜자의 저항으로 재정 규모를 줄이지도 못해 부채는 늘어난다.

항간에는 국가채무비율 250%인 일본을 들먹이지만, 이는 일본의 엔화 발행 권한, 마이너스 기준금리, 무려 3700조 원에 이르는 대외순채권을 간과한 것이다. 한국의 대외순채권은 600조 원으로 GDP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일본의 절반도 안 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국채를 한국은행이 직접 매입하는 계획도 세우는 것 같은데, 원화는 달러화나 엔화 같은 국제 거래의 결제통화나 안전자산이 아니어서 돈을 찍어서 국채를 발행하면 유동성 공급을 넘어 인플레이션과 원화 가치 및 국가신용도 하락과 해외자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가 사라지면 언제든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정부부채의 급속한 증가에는 시장이 먼저 반응한다. 최근 상승하는 국고채 수익률은 그만큼 국고채의 투자 매력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했다는 의미다.

국가채무 규모가 국제 기준으로 높지 않다는 통계만으로 소모성 확장적 재정을 고수하다간 회한의 나날을 보낼 수 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재정 규율을 세우고 지출 관리를 엄격하게 해서 정부부채의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세수를 늘리도록 민간부문의 투자 의욕을 높여 민간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비효율적인 복지 지출을 재정비해야 한다. 국민은 빚으로 지탱하는 복지를 탐닉하다가 국가부도 사태를 겪은 국민의 선택, 1인당 매월 300만 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국민투표안에 국민 77%가 반대한 스위스의 선택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결국 자신의 부담이며 근로 의욕 상실로 더 가난해지는 역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이해하는 깨어 있는 국민이 다수가 돼야만 국가의 채무 위기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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