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지
대한민국 역사상 대통령 1인에게 최강의 권력이 부여됐던 유신정권 시기, 대통령 경호실장이 뜻밖의 세도를 부린 적이 있었어. “각하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라면 못할 일이 없었지. 한 도지사가 대통령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다 라이터 불이 확 피어올라 대통령을 놀래키자 경호실장이 도지사를 불러내 두들겨 패버렸다는(〈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일화를 보면 짐작이 가지.
이렇듯 절대 권력자가 있으면 반드시 절대 권력자를 둘러싸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이들이 생기고 그들로 인한 범죄가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절대 권력을 지닌 황제가 존재했던 중국에서는 더욱 그랬지. 그 가운데 환관의 발호는 여러 왕조를 무너뜨렸던 주요 화근 중 하나였어. 이른바 중화의 원류라 할 한나라도, 저 강성했던 당나라도, 그리고 명나라까지 환관의 ‘권력형 비리’에 시달리지 않은 제국이 없었지. 오늘은 그 가운데 명나라 시대 위충현(1568~1627)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위충현은 원래 장가들어 자식까지 두었는데 도박판에서 가산을 탕진한 뒤 살길이 막막해지자 스스로 생식기를 제거하고 환관이 됐어. 그가 환관이 될 무렵 명나라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단다. 당시 황제였던 신종 만력제(萬曆帝)는 명의 황제가 아니라 ‘조선 황제’라고 불릴 지경이었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왔는데 그게 황제로서 한 일의 전부였기 때문이야. 만력제는 초반 10여 년을 제외하면 48년의 재위 기간에 ‘만력태정(萬曆怠政)’이라 하며 아예 정치에 손을 떼는 전무후무한 ‘황제 파업’을 벌였어. 그런 황제가 희한하게도 조선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으니 중국인들에게 ‘조선 황제’ 또는 ‘고려 천자’라고 불릴밖에.
만력제는 후계자를 세우는 방식도 한심했다. 장남이 천한 궁녀의 소생이어서 태자 책봉을 차일피일 미루며 다른 아들을 세우려다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장남을 태자로 삼았지. 황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그나마 제위에 오르고 나서도 얼마 안 되어 죽어버린다. 그 뒤를 이은 이가 만력제의 손자 희종 천계제였지.
16세의 어린 황제 역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어. 외려 그는 목공(木工) 천재였다고 해. 정교한 미니어처로 궁궐을 재현하는 실력파였지. 하지만 망치와 톱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의 ㅈ자도 모르는 절대 권력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위충현이었어. 위충현이 서류를 들고 들어갈 때마다 천계제는 외쳤지. “알아서 하라. 믿겠다.” 위충현은 그저 황은이 망극할 뿐이었고 “알아서” 나라를 좀먹어 갔다. 그는 환관 중 수장이라 할 병필태감(秉筆太監), 즉 황제의 비답(批答)에 낙점을 찍는 자리에 올랐고, 신하들을 감시하는 정보기관인 동창(東廠)의 우두머리 자리까지 거머쥐었어. 요즘으로 따지면 비서실장, 경호실장, 국정원장을 겸했다고나 할까
1624년 6월, 위충현의 전횡을 보다 못한 좌부도어사 양련이 위충현의 24가지 대죄를 적시하며 탄핵 상소를 올린다. 그러나 천계제는 상소를 뭉개버렸고 곧 위충현은 잔인한 복수에 나섰어. 그들은 양련과 그의 당파인 동림당을 잡을 도구로 왕문언이라는 사람을 고른다. 왕문언은 양련과 가까웠으나 강직하다기보다는 적당히 때 묻은 인물이었고, 끌고 와서 겁을 좀 주면 양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것으로 보였지. 그러나 왕문언은 “양련이 돈 먹고 관직을 팔았다고 자백하라”는 겁박을 끝끝내 거부한다.
‘구천세’ 소리까지 들었던 막강한 권력자
위충현 일파는 해결책을 찾아냈어. “자백을 하지 않으면 만들어내면 되지.” 초주검이 된 왕문언을 앞에 두고 그들은 제멋대로의 ‘자백서’를 완성해간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자백을 엮는 위충현 무리들 앞에서 왕문언은 ‘귀신이 돼서라도 너희들을 볼 것’이라고 절규하지. 물론 위충현 일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겠지. ‘만들어진 자백’을 근거로 잡혀온 양련 역시 시신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고문을 받고 죽는다. 위충현에게는 기이한 취미가 있었다고 해.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울대뼈(목젖)를 모아 수집하는 기벽이었어. 그는 그 뼈들 앞에서 깔깔대면서 말했다. “잘 지내시오? 또 상소 올리시려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만세(萬歲)’는 원래 중국 황제만이 받던 축원이야. 조선의 왕은 “국왕 전하 천세”가 고작이었지. 하지만 위충현은 구천세(九千歲) 소리를 들었어. 이런 막강한 권력자 위충현에게 달라붙는 아부꾼들은 설탕에 달라붙는 개미 같았다. “위충현을 위해 생사당(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사당)을 건립합시다(절강순무 반여정)”라는 어이없는 청이 받아들여지자 전국에 위창현 생사 건립 열풍이 불었다. 나이 일흔을 넘겨 위충현보다도 훨씬 연상이었던 예부상서 고병겸은 이렇게 말하며 땅바닥을 핥는다. “어르신의 양아들이 되고 싶었으나, 어르신께서 허옇게 수염 난 아들을 싫어하실까 봐 제 아들을 손자로 삼으셨으면 합니다(김영수, 〈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 병부상서 최정수는 위충현이 “글을 좀 아는 환관들이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운을 떼자 즉각 국자감(우리로 치면 성균관)으로 출동해 거기서 공부하고 있던 생원들을 잡아채 거세해버렸다. “글 아는 환관 대령이옵니다.”
‘망탁조의(莽卓操懿)’라는 말이 있다. 권력을 틀어쥔 채 황제를 겁박하고 제후들을 호령하는 가운데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나라를 차지하고자 시도했던 중국 역사상 네 명의 인물인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일컫는 말이지. 이들은 역적 소리를 들을망정 새로운 왕조를 펼쳐보겠다는 비전(그게 사리사욕일지언정)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위충현은 그 정도의 야망도 없고, 수준도 안 되는 인물이었어. 그는 황제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환관에 불과했다. 천계제가 세상을 뜨고 동생 숭정제가 즉위한 뒤 위충현의 권력은 봄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시신이 수천 갈래로 찢기는 처참한 최후를 맞았으니까.
위충현을 비롯해 나라를 망친 중국 역대 환관들을 보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단다. 권력형 비리란 대개 권력의 크기와 비례하고, 권력자가 무능할 때 치명적으로 발생하며, 그들이 바치는 권력자에 대한 충성은 결국 권력자와 그의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사실이야. 나아가 사냥개로서 자신의 위치를 넘어 주인을 물어뜯는 오만한 개로 진화하기도 하는 것이지. ‘망탁조의’로의 변신이라고나 할까.
역사는 똑같은 연극으로 오늘날 재연되지 않지만, 배역과 캐릭터는 달라질망정 우리 시대에도 위충현은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어. 위에 언급한 유신 시대의 경호실장 차지철이 그랬고, 가까이는 국정농단을 불러온 최순실(최서원)도 있었지. 위충현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엄당(奄黨·환관들의 당)이 한 사람을 대신으로 올리고 재목으로 만드는 데는 몇 년도 부족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파멸시키는 데는 하루면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바꿔 들으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데는 수십 년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이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건 순식간이라는 뜻도 되겠지.
황제가 국정에 무관심할 때 위충현 같은 이가 나타났듯,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를 외면할 때 어떤 괴물이 나타나 순식간에 우리 삶을 망치고 용감한 이들의 울대뼈를 모아놓고 “또 한번 떠들어보지?”라고 웃을지 모른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고 ‘쿨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결코 현명할 수 없는 이유일 거야.
김형민 (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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