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뺏길 게 없는 도살장 앞 흰 소..'비질'은 계속된다

한겨레 2021. 2. 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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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1회
신축년을 맞이하자 재작년 가을 도살장 앞에서 만났던 한 흰 소가 떠올랐다. 젖소라 불리는 이 소들은 살아서는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을 때 이곳에 도착하게 된다.

흰 소의 해, 신축년을 맞이하자 2019년의 가을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주저앉아 바닥을 내려치며 울고 있었다.

“이렇게 다 죽이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찢어지는 곡소리와 죽음, 슬픔이 있는 곳. 장례식장이 아니었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도살장 앞 갓길이었다. 2019년 9월, 동물권단체 ‘서울애니멀세이브’의 비질(Vigil, 철야기도나 농성) 활동을 지속한 지 5개월이 되던 때였다.

죽기 직전 동물들을 마주하는 일

비질은 도살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이다. 도살장 앞에 찾아가 죽음 직전 12시간 넘게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들을 살피고 기록한다.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가 2010년 처음 시작한 이 활동은 현재 전세계적인 풀뿌리 동물 해방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9년 4월부터 한국에서도 매주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도살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주로 책, 영상 등을 통해 축산동물의 현실을 알게 된 후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책과 영상만으로는 동물에 대한 폭력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비질은 도살장 앞에 찾아가 죽음 직전 12시간 이상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들을 살피고 기록하는 동물권 활동이다.
수십 마리씩 실려오는 돼지와 달리 소들은 작은 트럭에 두어 마리가 묶여서 왔다.

도살장 앞에서 죽기 직전 동물들의 눈빛을 마주하는 일은 활자와 영상만으로 동물권을 접했던 것과는 달랐다.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악취와 동물들의 비명이 나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몸을 뒤덮은 분변이 내 손에 옮겨 묻자 불쾌함이 느껴졌다.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질수록 나의 기만이 들통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직접 마주한 적도 없으면서 이들의 고통을 너무 쉽게 말해 왔구나. 내가 쉽고 편하고 깔끔한 위치에서 말하니, 듣는 이들도 쉽고 편하고 깔끔하게 무시했던 거구나.’

죽음을 직감한 소의 눈물

깨달음은 나를 매주 도살장 앞으로 이끌었다. 눈빛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최악의 순간일지언정,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교감을 만들어냈다. 계속되는 만남은 나의 인간(중심)성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강력하게 흔든 이들 중에는 신축년의 주인공 ‘흰 소’가 있었다. 바로 ‘젖소’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흔히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마른 처참한 몰골로 도살장에 실려왔다. 수십 마리씩 실려오는 돼지와는 달리 이들은 1.5톤 작은 트럭에 한 두마리가 타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 묶여있는 그들은 제대로 설 힘조차 없어 주저앉아 있었다. 간혹 상처 입은 소를 태우고 온 트럭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치료에는 돈이 들지만, 죽이면 돈을 버는 현실. 죽음을 직감한 소의 두 눈에서는 실제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질의 진행을 맡아 늘 침착하던 은영 활동가는 이날 소의 눈물을 보고 오열했다.
죽음을 직감한 소의 두 눈에서는 실제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흰 소의 일생은 어땠을까. 말해보자면 그들은 가난했다. ‘가난하다’는 표현에 사람들은 발끈한다. “동물이 가난하다니, 그게 무슨 말장난이야?” 그러나 가진 것을 모두 인간에게 빼앗긴 후 목숨마저 내놔야 하는 그들의 짓밟힌 삶은 가난하다는 말 외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들의 가난은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양산된다. 합법적인 산업의 감금, 학대, 수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낙농업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강제 개변된 몸으로 태어난 그들은 매일같이 젖(우유)을 빼앗긴다. 사람처럼 소도 젖이 나오기 위해서는 임신을 해야 한다. 이들은 강제수정 과정에서 존엄을 빼앗기고(항문에 주먹을 넣어 자궁경부를 고정시킨 후 질에 정액주입관을 찔러넣는 과정이 폭력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아홉 달을 품어 낳은 자식을 빼앗긴다.

젖, 새끼, 목숨을 빼앗긴 ‘가난한’ 소들

납치당한 어린 소는 ‘육우’라는 이름으로 살찌워 살해당하거나 엄마와 같은 젖소의 삶을 반복한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업계의 표준, 즉 낙농업의 평범한 일상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빈곤이었다. 빼앗기는 삶만 살다 더이상 살아서는 빼앗길 게 없는 소들은 그렇게 주저앉은 채 우리를 쳐다봤다.

소는 낙농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학대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PETA 제공
‘과학적’으로 강제 개변된 몸으로 태어난 그들은 매일같이 젖(우유)을 빼앗긴다. 위애니멀 제공

재작년 9월 우리가 만난 소들 중엔 이마에 구름처럼 흰 털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난 흰 소가 있었다. 그 소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이마를 한 활동가의 손에 부벼댔다. 비질의 진행을 맡았던 은영 활동가였다.

비질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는 그 순간 땅에 주저앉아 바닥을 치며 오열했다. 후에 말하길, 자신의 손이 포개어진 소의 이마에 곧이어 생길 총알 자국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연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의 비질은 도살장뿐 아니라 바로 옆 건물로 이어진 정육 도소매업장까지 이어졌다. 그곳에는 우리가 불과 몇 시간 전 체온을 나눴던 소와 돼지들이 토막나 팔리고 있었다. 마트와 식당, 거리에서… 어쩌면 지금껏 보아온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비질에서는 달랐다.

간혹 상처 입은 소를 태우고 온 트럭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핏기 빠진 창백한 흰 ‘소머리’들,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눈,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빨이 부서진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죽어있는 얼굴, 한 발에 죽지 않아 총알 자국이 두 개나 새겨진 이마. 방금 전까지 만났던 존재들의 머리와 내장, 살점은 우리에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것이었다. 은영 활동가의 오열은 소에게 닥칠 비극의 예고였던 것이다.

‘젖소’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도 있다

그러나 도살장 앞의 오열 또한 우리 사회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것이었다. 도살장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폭소를 터뜨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그들이 당황스러웠다. 그날의 통곡 뒤, 은영 활동가는 수일을 식음을 전폐한 채 울었다. 마치 송아지를 빼앗겨 창자가 끊어지듯 몇날 며칠을 우는 어미 소처럼.

놀랍게도 그 시간을 목격한 뒤, 나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새롭게 열린 세계는 아예 다른 문법이 작동하고 있었다. 농장과 도살장이 없는 세상, 철창을 부수고 해방된 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서로 온기를 나누는 세상이었다. 은영 활동가의 통곡은 그 세계를 먼저 마주한 이의 슬픔이었다.

통곡에 당황하던 나도 어느 순간 지극히 단순하고 강력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죽이지 말라.’ 이 조직적인 살해를 용납하는 사회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확신이었다.

농장과 도살장이 없는 세상, 철창을 부수고 해방된 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서로 온기를 나누는 세상. 나에게도 그런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PETA 제공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난 신축년 새해, 곳곳에서 흰 소들이 웃고 있다. 서울시 청사에는 ‘다 함께 코로나를 이겨내겠 소’와 같은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를 먹은 미담을 나눈다.

공장식 축산이라는 맥락이 가려진 세상에서 동물을 향한 폭력은 손쉽게 정당화된다. 일상 속 동물들은 식탁, 편의점, 식당, 카페 등 어디에서나 달콤하게 포장되어 있다. 젖 짜는 기계로 생긴 유방염의 피고름은 체세포수 A등급 우유라는 이름으로 깨끗하게 표백되고, 뼈만 남아 값이 없어진 그들의 몸은 분쇄되어 햄버거 패티가 된다. 그 앞에서 캐릭터로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죽음까지 빼앗겨 철저히 모욕당하고 있다.

흰 소의 해, 소들을 만나러 가자

흰 소의 해, 올해 무엇보다 먼저 이들을 만나자고 제안하고 싶다. 흐르는 눈물과 이마 위의 총알 자국,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만 세상의 맥락을 짚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숲 파괴,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야생동물 학살, 기후위기 등 모든 재난은 내가 만났던 가난한 흰 소의 비극과 연결되어 있다. 고통스러운 모습을 피하고 싶다는 처음의 욕망을 넘어 진실의 ‘증인’으로 나설 때, 우리는 동물해방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애니멀피플 섬나리

※ 동물권 활동가 섬나리씨의 ‘동물해방선언’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섬나리씨는 동물권 풀뿌리 네트워크 ‘직접행동 디엑스이’(DxE)와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로서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펼쳤던 공개구조, 방해시위 등의 동물권 활동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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