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산재 유족들에겐 야속하기만 한 '유니콘' 쿠팡
회사는 자료 미제출, '정시출근' 주장
55조원. 외신들이 추정한 쿠팡의 기업가치입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14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쿠팡 미국 증시 상장 추진,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9일 나온 소식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습니다. 쿠팡 대구 물류센터에서 심야근무를 하다 숨진 고 장덕준(27)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자 쿠팡은 사과와 함께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그동안 유가족 산재 신청에 의해 진행된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에 충실히 임해 왔고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장씨 산재 인정을 받아낸 김세종 노무사(노무법인 함께)의 말은 다릅니다. 김 노무사는 15일 <한겨레>에 “쿠팡은 유가족과 공단의 자료 제출 요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며 “쿠팡이 산재 관련 자료만 제대로 제출했어도 두 달은 빨리 산재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인 회사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잇따른 노동자 과로사가 발생한 가운데, 산재 심사 협조와 노동환경 개선 등에서도 쿠팡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과로사” vs 회사는 “정시출근”
지난해 10월12일,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 4시께 퇴근한 장씨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택 화장실 욕조에서 오전 7시30분께 숨진 채 발견됩니다. 1년4개월 동안 쿠팡 일용직 야간 노동을 했던 장씨는 주 60시간가량 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하다 무릎에 염증이 생겨 무릎보호대를 차기도 했던 장씨의 몸무게는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15kg가 빠졌습니다. 어머니 박미숙(53)씨는 “근육통 때문에 아들은 일주일에 두세번은 퇴근 뒤 욕조에 몸을 담갔다”고 말했습니다. 장씨가 숨진 뒤 쿠팡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고인의 죽음을 택배노동자 과로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며 과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장씨의 산재 관련 업무를 맡은 김세종 노무사는 지난해 10월30일 쿠팡에 ‘산재신청 관련 자료 협조 요청문’을 보냅니다. 김 노무사는 산재 신청을 위해 총 7가지 항목의 서류를 요청했지만 쿠팡은 ‘근무표’ ‘작업공정표’ 등 네 항목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재 인정에 꼭 필요한 ‘입사부터 출퇴근 카드 또는 지문 체크 실제 기록 데이터 원본’도 요청했지만 유족은 장씨가 일한 1년4개월 중 4개월치 자료만 받았습니다.
유족에 제공한 자료와 달리 쿠팡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겐 1년4개월치 출근 내역 전체를 제공했습니다. 제공한 출근 기록을 보면, 장씨는 2019년 6월26일부터 2020년 10월11일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19:00’에 정시출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1분이라도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출근한 날은 없습니다. 그러나 유족과 김 노무사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장씨의 ‘정시출근’은 현실과 다릅니다.
어머니 박씨는 말합니다. “오후 5시10분 셔틀버스를 타 오후 6시 정도 도착한다고 들었어요. 오후 7시 일이 시작인데 30분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전체 출고 지원 업무를 해야 해서 집품이나 포장하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고 말했어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업무상 재해 사망 경위 및 이유서’에도 “통근버스가 사업장에 도착한 뒤, 시업시간 19:00 이전인 18:30부터 휴대폰 반납, 배치 작업장 이동, 업무 개시 전 조례 등 업무준비 및 업무개시대기 시간으로 근무일별로 15분 내외 정도 추가로 소요돼 이 또한 업무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통상 ‘쿠펀치’라는 앱을 통해 현장 투입 전 출근 기록을 찍고 휴대전화를 반납한 뒤 현장에 투입됩니다. 장씨가 직접 출근 시간을 찍은 쿠펀치 내역을 갖고 있을 쿠팡이 ‘정시출근’이라고 국회에 자료를 제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노무사는 “장씨는 특별한 기저질환도 없었다. 사고사도 아니다. 산재 인정에 가장 중요한 건 업무시간이다. 쿠팡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시출근’ 자료만 보낸 건 산재로 인정받지 않기 위해 업무시간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추측한다. 회사가 보낸 자료에 따른 업무시간은 주 60시간에 못 미쳐 과로사 인정이 어려울 수 있었다. 유족이나 공단 모두 강제수사권이 없어 쿠팡이 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강제로 자료를 받을 수 없다. 쿠팡이 협조만 잘 해줘 시간만 안 끌었어도 더 빨리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자료 미제출’에 속 끓이는 유족들
지난해 5월27일 오전 2시께 쿠팡 인천물류4센터 화장실에서 ‘죽상경화성 심장병’으로 숨진 채 발견된 계약직 노동자 송아무개(49)씨 유족들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지난해 10월 유족 쪽의 ‘출퇴근 기록’ 요청에 쿠팡은 ‘근태내역’ 자료를 보냅니다. 자료를 보면, 송씨는 첫 출근한 3월18일부터 5월26일까지 계속 ‘18:00’에 정시출근합니다. 그러나 송씨가 숨질 당시 같은 물류센터에서 같은 시간, 같은 업무를 했던 동료의 말은 다릅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물류센터에 도착하면 오후 5시35분 정도 돼요. 버스 내린 뒤 40분 정도에 쿠펀치 출근 기록을 찍습니다. 현장에는 보통 10~15분 전에는 들어갑니다. 늦게 들어가면 힘든 업무에 배정될 때가 많아요. 들어가면 8시간은 서 있죠. 하루종일 몸통만 한 ‘토트박스’를 나르니까 손목과 허리가 아파요. 다리가 너무 부어서 종아리를 만지면 터질 거 같이 단단합니다. 매일 족욕을 했요.”(동료 강아무개(50)씨)
송씨도 매일 같이 다리가 부어 족욕을 했습니다. 송씨와 함께 살았던 어머니 김아무개(79)씨는 “퇴근하면 발바닥이 그렇게 아프다고 했다. 항상 대야에 물을 떠서 한시간씩 담갔다. 파스도 많이 뿌려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퇴근 뒤 새벽 5시께 도착하는 아들 송씨를 배웅하기 위해 매일 새벽 정류장에 나갔던 김씨는 아직 아들의 모습이 선합니다. “매일 새벽 4시 50분쯤 정류장에 나갔어요. 아들을 뒤따라 걷곤 했는데 축 처진 아들은 집으로 향하는 계단 오르기도 힘들어했어요.”
‘힘들었다’는 유족 증언과 별개로 쿠팡이 ‘정시출근’ 자료를 제출한 이상 산재 인정은 쉽지 않습니다. 송씨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박영일 노무사(노무법인 소명)는 “주 52시간은 넘어야 과로사 인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쿠팡 자료대로라면, 하루 20분씩 업무시간이 빠져 주 52시간이 아슬아슬해진다. 산재 인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입증은 유족 몫이다. 회사가 정확한 출근 내역을 주지 않는 이상, 확실한 업무시간 주장이 어려워진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쿠팡이 산재가 인정되는 걸 원치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습니다. 산재보험보상법에 따라, 회사는 유족 쪽이 원하는 자료를 성실히 제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처벌조항은 없습니다. ‘성실히’ 제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쿠팡의 ‘의무’가 아니라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지만 송씨 유족 쪽이 아쉬워하는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머니 김씨는 아직까지 아들 송씨가 숨진 장소를 못 본 게 한입니다. 김씨는 “현장에 가서 전부 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지만 회사는 안 된다고 했다. ‘자식 죽은 곳에 부모 안 들여보내는 게 말이 되냐’고 했지만 여전히 아들이 숨진 장소를 못 봤다”고 말했습니다.
■ 진정한 기업가치 상승은…
쿠팡의 산재 ‘비협조’에 장씨와 송씨 외에도 여러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6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열흘 내내 쉬지 못하고 일하다 허벅지 뒤쪽 근육이 파열된 계약직 노동자 고건(45)씨의 산재 신청에 대해 쿠팡은 근로복지공단에 이의제기를 하며 ‘악의적 산재 신청’이라는 표현을 쓰며 산재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가 시작되자 쿠팡은 해당 표현을 삭제한 의견서를 근로복지공단에 보냈고 고건씨는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일하다 숨진 채 발견된 쿠친 ㄱ(46)씨의 산재 신청 때는 통상 열흘 걸리는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의 문의 요청에 두 달 넘게 문답서를 보내지 않아 산재 진행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10월23일 <한겨레>가 쿠팡 쪽 설명을 요구하자, 당일 저녁 쿠팡은 관련 서류를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에 보냈습니다.
최근 산업계에서 ‘ESG 경영’이 많이 언급됩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데, ESG경영은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요 국가와 투자 기관들이 ESG를 기업 평가의 척도로 삼으면서 ESG 경영은 ‘필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쿠팡은 15일 현장 직원들에 대한 주식 무상 부여 계획을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산재 신청과정에서 쿠팡의 태도에 실망해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고건 대표는 말합니다. “일할 때 빨리하라고 다그치지만 말고 노동자가 다치고 숨져 산재를 신청했을 때 서류 제출 등 절차상이라도 적극 협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덕준씨 뿐만 아니라 쿠팡에서 일하다 병들고 다치고 숨진 노동자들에게도 쿠팡은 사과해야 합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바로가기: 걸핏하면 밤샘 근무…쿠팡 물류센터 고 장덕준씨 죽음은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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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협조하겠다더니”…총알배송 쿠팡, 산재 처리는 7개월째 ‘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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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연속 근무하다 다리 ‘퍽’…쿠팡 “악의적 산재신청”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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