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 월세보다 싸도 집 안산다..일본만 집값 잠잠한 이유
돈풀기 아베노믹스로 부동산 장기침체는 벗어났지만 과열은 없어
차학봉 기자의 ‘팬데믹 주택 버블’ 연구 - ⑥주택 시장 과열 없는 일본
‘코로나 버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글로벌 주택시장이 과열됐지만, 일본은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일본의 부동산 조사회사인 ‘부동산경제연구소’는 수도권에서 지난해 분양된 아파트의 한 채당 평균 가격이 6084만엔(6억4000만원)이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전년보다 평균 1·7% 오른 가격으로, 버블기인 1990년(6123만엔)에 이어 사상 2번째 고가라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높다며 ‘버블 우려’가 있다는 진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주택시장은 너무나도 차분하다. 올랐다는 아파트 분양가도 따지고 보면 30년 전 가격보다 더 낮아 일본 부동산 장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했는 지를 보여준다. 아사히 신문은 “분양가 상승의 배경은, 땅값이 비싼 도심의 역세권에 고가 분양된 아파트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분양가의 실질적 상승이 아니라 비싼 지역에서 분양된 아파트가 많아서 오른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이다.
수도권 기존 아파트 가격(70㎡ 기준)도 전년보다 0.7% 오르는데 그쳤다. 미국 등 상당수 국가의 주택가격이 코로나 극복을 위한 돈 풀기 정책으로 10%안팎 치솟은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은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장기침체를 보이다 2013년 이후 저금리와 돈 풀기 정책을 본격화한 아베노믹스로 부동산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고가 아파트는 72억원, 신규 기존아파트 소폭 상승에 그쳐
작년 분양된 수도권 아파트는 지역별 평균 가격이 도쿄도 23구가 7712만엔(8억원), 도쿄도 외곽지역 5460만엔, 사이타마현 4565만엔, 지바현 4377만엔, 가나가와현 4377만엔 등이다. 버블의 상징인 ‘억숀’(1억엔이 넘는 아파트, 10억4600만원) 분양 물량은 1823가구였다. 버블기인 1990년에 수도권에 분양된 ‘억숀’ 3079가구의 60% 수준이다. 1억엔(10억5700만원) 이상이 1518가구, 2억엔(21억1000만원) 이상이 230가구, 3억엔(31억7000만원) 이상이 75가구이다. 최고가는 6억9000만엔 (72억6000만원)에 시부야(渋谷)구에서 분양된 ‘프라우드 다이칸야마 프런트’. 면적은 183㎡.
수도권 아파트 공급 물량은 2만7228가구로, 전년 대비 12.8% 줄었다. 버블기이후 최저 수준이다. 코로나 불황을 우려해 건설업체들이 분양을 대거 연기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택시장은 단독주택 위주이다. 단독주택은 입지에 따라 가격 편차가 심하고 중고 단독주택은 거래 자체도 많지 않아 맨션이라고 부르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주택시장의 동향을 파악한다.
수도권 아파트 공급량은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면서 주택경기가 살아난 2013년에 5만6478가구로 전년(4만5602가구)보다 1만 가구 이상 공급됐다. 2014년 4만4913가구, 2015년 이후 3만 가구 수준에 공급되고 있다. 평균 분양가는 2013년 4929만엔에서 2020년 6084만엔으로, 23% 올랐다. 가격이 꾸준하게 올랐는데도 공급물량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실수요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기존 아파트도 소폭 오르는데 그쳤다. 부동산 조사회사인 도쿄간테이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기존 아파트(70㎡ 기준)는 3734만엔으로, 전년(3709만엔)보다 0.7% 오르는데 그쳤다. 지역별로 보면 도쿄도가 5167만엔으로 3.3% 올랐지만, 가나가와현(2872만엔)과 사이타마현(2282만엔)은 각각 -0.3%와 -0.1%였다. 수도권 기존 아파트(70㎡ 기준) 평균가격은 2013년~2020년에 34% 상승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교외주택 수요가 크게 늘어난 미국과 달리, 일본은 여전히 도심 주택이 인기이다. 일본도 재택근무가 도입됐지만,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는 사례가 많다.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다 보니 코로나에도 출퇴근 시간이 짧은 도심이 인기이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인구감소기를 맞은 일본에서 교외지역에 부정적인 수요자들이 많다.
단독주택의 지난해 수도권 평균 거래가격이 3110만엔(3억2870만원)으로, 5년 전에 비해 약 100만엔 오르는데 그쳤다.
◇외국인 관광객 유입 중단으로 지방 상업용지는 20% 폭락
지방 토지 시장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기준지가(7월 1일 시점)는 전국 평균가격이 3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오사카 등 지방도시의 상업지역은 20% 가까이 폭락했다. 중국 등 외국 관광객의 급증으로, 호텔·쇼핑몰 개발 붐이 불던 지방 도시들의 땅값이 급락한 탓이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 835만명에서 2015년 1973만명, 2019년 3188만명으로 급증했다. 외국 관광객이 고령화로 인구 감소기에 접어든 지방 도시의 구세주 역할을 했다. 오사카, 교토 등 지방도시에서는 쇼핑몰, 호텔 신축붐이 불고 땅값이 뜀박질했다. 홋카이도의 니세코 등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산골 관광지의 땅값도 급등했다. 동남아 각국에 비자 발급요건을 완화하고 양적 완화를 통해 엔저를 유도한 결과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국가 간 이동이 봉쇄되면서 지난해 일본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411만명으로 급감했다. 작년 4월 이후 국가 간 이동이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 만큼, 2~3년 내에 관광이 다시 회복된다면 지방 부동산 시장도 급반등할 전망이다.
◇버블붕괴의 강렬한 추억, 모기지 대출이 월세보다 이익인데도 주택 안사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 ‘팬데믹 특수’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우선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초저금리였기 때문에 상대적인 금리 변동폭이 크지 않았다. 30년 장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3%대, 10년 고정금리가 0.5%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30년 고정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67%로, 2년 전(5%대)의 절반 정도로 떨어진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2013년부터 시행된 ‘아베노믹스’는 저금리, 돈풀기 정책으로,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도입한 코로나 경기부양책과도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일본 경제체력의 저하가 근본원인이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1990년 일본의 GDP는 3.1조 달러로 미국(6조 달러)의 절반 수준이었다. 작년 기준으로 미국의 GDP는 21.9조 달러로 늘어났지만, 일본은 5.1조 달러에 그쳤다. 지난 30년간 미국 경제가 뜀박질을 했다면 일본 경제는 거의 정체 상태였다. 이 때문에 주가도 30년전 최고점을 아직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15일 3만 포인트를 돌파했는데 3만 포인트 돌파도 30년6개월만이다. 1989년 3만8915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버블 붕괴’로 장기 침체기에 들어갔고, 2009년 3월에는 7054까지 떨어졌다. ‘아베노믹스’를 통한 엔저 정책, 돈 풀기 등으로 주가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장기침체를 경험한 일본 국민은 여전히 주택 소유 등 부동산 투자에 소극적이다. 주택담보 대출 잔액의 1%를 소득세에서 10년간 공제해준다. 초저금리에다 세제혜택까지 있어 주택담보 대출로 집을 사면 원리금 상환액이 임대료보다 오히려 적게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도쿄 교외의 3000만~4000만엔 주택을 30년 상환 변동금리로 대출받고 소득공제혜택을 받으면 실질 월상환액이 5만~6만엔 정도로, 월세보다 저렴하다. 대출을 받으면 월세보다 상환액이 적고, 30년후에는 집이 남는다. 다른 나라라면 주택 수요가 급증, 집값이 급등했을 것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13%만 향후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
일본인들이 주택구매에 얼마나 소극적인가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월 노무라 부동산 계열 인터넷 사이트인 놈콤이 1297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5%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내릴 것이라고 응답했다. ‘횡보할 것’이라는 응답은 29.9%였으며 ‘오를 것’이라는 응답은 13.1%에 불과했다. 이 설문에서 ‘지금이 주택을 사야 할 때’라는 응답은 8.6%에 불과했다. ‘어느 쪽인지 말하라고 하면 살 때’라는 응답은 24.1%였다. 사야 하는 이유(복수응답)에 대해서는 72.2%가 대출 금리가 낮은 것을 이유로 들었고, 세제가 유리하다가 33.9%였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집을 사겠다는 응답은 15.1%에 불과했다. 장기 침체를 경험하면서 부동산(不動産)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애물단지라는 의미의 부동산(負動産)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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