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새치기도 단체로? LA 유명 사립학교 '백신 새치기' 파문

이영현 2021. 2. 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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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노스 할리우드 더 웨슬리 스쿨 (출처: 더 웨슬리 스쿨 홈페이지)

■ "우리 학교 교사와 교직원들은 백신 접종을 했어요."

캘리포니아주 노스할리우드의 더 웨슬리 스쿨( The Wesley School)은 LA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립학교입니다. 초중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학년에 따라 연간 2만 8천 달러에서 3만 2천 달러, 한국 돈 3천만 원에서 3천 5백만 원의 학비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지난주 학교 관련 커뮤니티에 교사와 교직원들이 모두 백신을 맞았다고 공개했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이제 학교는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LA 카운티는 현재 의료인, 경찰, 소방관 등 필수 요원들과 65세이상 노인들에게만 백신 접종을 하고 있는데 접종 대상이 아닌 교사와 교직원들이 백신을 맞았다고 밝힌 겁니다.

캘리포니아 노스리지 병원 (Northridge Hospital Medical Center) (출처:노스리지 병원 홈페이지)

■ "병원에서 먼저 백신 접종 제의가 왔어요 "

백신 접종 사실을 알게 된 LA 카운티 보건국은 어떻게 해서 백신을 맞게 됐는지 학교 측을 추궁했습니다. 학교측은 '노스리지 병원'에서 접종을 제의해 와 접종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결과 병원 측은 이달 초 지역 내 여러 학교의 교사와 교직원들을 초청해 백신을 접종해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 웨슬리 스쿨을 포함해 모두 14개 학교가 백신 접종에 응했고 교사와 교직원 등 모두 164명이 백신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새치기 접종 논란이 커지자 병원 측은 즉시 접종 규정 위반 사실을 시인하고 필수 노동자와 교육자를 돕기 위한 선의의 노력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누가 결정해 어떤 기준으로 학교들을 선정했고 어떤 학교 누가 몇 명이 백신을 맞았는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의 최고 재무 책임자의 자녀가 웨슬리 스쿨에 다니고 있는 사실이 현지 언론의 보도로 확인되면서 선의의 노력이 아니라 연줄을 이용한 '새치기 접종' 명백하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병원 측은 문제의 재무 책임자가 백신 접종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 '새치기 접종' 처벌은 없다?
LA 카운티 보건국은 이 사실을 주 정부에 보고했고 백신 공급 업체에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병원 측에 엄중 경고를 전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고 관련자는 수사를 받는지 여부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같은 행위가 또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한 대책도 없었습니다.

'백신 새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LA 카운티 보건국은 이달 초 접종 순서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새치기 접종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접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보건 국장이 직접 나와 하루에 수백 명씩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며 그 심각성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도 '백신 새치기'에 대한 대책이나 처벌은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노스리지 병원이 백신 접종 규정을 몰랐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알고도 규정을 무시하고 접종했다는 건데 이는 카운티 정부의 백신 접종 관리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신 추적자' '백신 사냥꾼'... 접종 순서를 둘러싼 계속되는 논란

LA를 비롯해 미국에선 이미 '백신 추적자'나 '백신 사냥꾼'들이 논란이 됐습니다.

예약한 접종 대상자들이 오지 않는 이른바 노쇼(No- Show) 사례를 기다려 백신을 맞는 사람들을 백신 추적자(vaccine chaser)로, 주마다 다른 접종 나이 차이를 파악해 주를 넘어가 백신을 접종하고 오는 사람들을 백신 사냥꾼 (vaccine hunter)로 부르며 백신 순서를 둘러싼 공분이 커지고 있는데 특히 LA 카운티 보건국은 이런 사례에 대해서도 묵인하고 있어 더욱 논란을 키우는 상황입니다. (폐기될 백신을 기다렸다 맞는 경우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습니다. )

실제로 LA 한인들 사이에선 어디로 가면 접종 자격이 되지 않더라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정보가 돌아다닐 정돕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대목은 접종 순서를 어기고 1차 접종을 하면 과연 2차 접종은 가능하냐는 겁니다. (현재 나온 화이자- 바이오엔테크 백신이나 모더나 백신은 2차례 접종을 해야 면역력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여기선 규정을 어기고 먼저 접종을 받더라도 2차 접종을 하는데 큰 불이익이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이런 '새치기 접종'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지난 9일 코로나 19 백신 접종 받는 사가스티 페루 임시대통령 (리마 AFP=연합뉴스)

■ 페루 고위층 '백신 새치기' 스캔들로 장관 사퇴 잇따라

현지시각 15일 페루에서는 전직 대통령과 장관 등 고위층들의 백신 새치기 접종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11월 비리 의혹으로 의회에서 탄핵당한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이 퇴임 전인 지난해 10월 부인과 함께 중국 시노팜의 코로나 19 백신을 접종했다고 한 일간지가 폭로했는데 접종 시점이 페루에서 백신 사용을 승인하기 4개월 전이었던 겁니다.

이에 대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은 "임상 시험 참여자의 한사람이었을 뿐 비밀 유지 규정 때문에 공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는데 이게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임상 시험 대상이 아예 아니었던 겁니다.

논란이 커지면서 현직 보건장관이 전 대통령의 백신 접종 사실을 은폐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12일 사임했습니다. 이틀 뒤에는 현직 외교장관이 지난달 일찌감치 백신을 접종한 사실이 알려져 물러났습니다. 오는 4월 대선까지 임시로 대통령직을 맡는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대통령은 현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매우 부당하고 부적절한 이러한 행위에 가담한 사람은 내 정부 내에 있을 수 없다"며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습니다.

LA 카운티 노스리지 드라이브 스루 접종소 (노스리지 AP=연합뉴스)

■ 백신 부족 미국 ... 새치기 접종은 눈감기?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집계결과 미국에서는 14일까지 7천5만7천여 회분의 코로나 19 백신이 배포됐고 이 가운데 5천288만여 회분이 접종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주일간 하루 평균 160만 회가 접종된 것으로 취임 후 100일간 1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치를 웃도는 속도입니다.

그런데 백신 접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는 이번 주 1주일간 대규모 백신 접종소를 폐쇄한다며 백신 공급이 충분해지면 다시 문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도 이번 주 일부 백신 접종소를 폐쇄하고 당분간 2차 접종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연방정부에서 공급되는 백신이 들쭉날쭉해 도저히 접종 계획을 짤 수 없다는 게 폐쇄 이유입니다.

미국내에서 백신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백신 접종 공정성 문제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네바다주에선 지방법원 판사와 직원들의 새치기 접종이 드러났고 로드아일랜드주에선 병원 2곳이 임원들과 행정직원에게도 백신을 접종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누가 처벌받거나 책임을 졌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웨슬리 스쿨의 새치기 백신 접종 파문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이영현 기자 (lee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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