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보안법 7개월] 화가 퐁소 "내 붓을 움직인 건 '분노'"

조일준 2021. 2. 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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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언론인 출신 화가 퐁소가 두 번째 작품집 <저항하는 도시>(원제 A Defiant City) © Fong So
홍콩의 역사는 기구하다. 1842년 중국의 마지막 왕조국가인 청나라가 영국이 벌인 아편전쟁에 패배하면서, ‘동방의 진주’로 불리던 홍콩은 영국령 식민지로 전락(난징조약)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돼 홍콩특별행정구로 재편입되기까지 155년 동안 홍콩은 자본주의 대국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중국 본토의 사회주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긴 세월이었다.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중국은 본디 자국의 영토를 되찾은 것일 뿐이지만, 홍콩 시민의 정체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보다는 독립된 도시국가 성격의 홍콩인, 또는 세계시민에 더 가깝다.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정치적 장악력을 높이려 고삐를 죌수록, 홍콩의 많은 시민은 불안감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2020년 7월부터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발효하고 홍콩 시민사회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과 대립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지 7개월. <한겨레21>은 현지 상황을 3개의 시선-전문가, 홍콩 시민, 한국의 연대 활동가-으로 짚어본다.

홍콩 시민의 간절한 염원을 화폭에 담아온 화가가 있다. 언론인에서 거리의 예술가로 변신한 퐁소(70·方蘇). 올해 고희를 맞은 나이에도 붓과 펜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그림엔 진정한 의미의 자치와 존중,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의 외침이 생생히 묻어난다.

교육 전문지 기자를 시작으로 홍콩의 시사월간지 편집장까지 22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았고, 나이 쉰을 넘긴 2000년대부터는 스케치·수묵화·목판화 등으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기록해왔으며, 두 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그의 그림 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작품 대다수”는 공안 당국의 압수나 훼손을 우려해 영국박물관(146점)과 한국의 광주시립미술관(2점)을 비롯해 해외에 보관되고 있다. 2001년엔 광주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전시회 출품 작가로 “특별한 역사를 지닌 특별한 도시 광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두 번째 작품집 <저항하는 도시>를 홍콩이 아닌 대만에서 출간했다. <한겨레21>은 퐁소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언론인 출신 화가 퐁소가 두 번째 작품집 <저항하는 도시>(원제 A Defiant City)에 실은 자화상 스케치. 퐁소 제공 © Fong So

저널리스트의 사고방식, 제2의 천성

현재 홍콩 분위기는 어떠한가.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의 정치적 상황은 점점 더 우려스럽고 기만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중국 정권은 홍콩 통제를 강화하고, 홍콩특별행정구(이하 자치정부)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공안 당국은 더 많은 시민을 체포하고 더 많은 활동가와 저항 인사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다. ‘일국양제’(하나의 중국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 한시적 공존)라는 중국 중앙정부의 약속은 거짓말보다 더 나쁘다.

언제 어떤 계기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나.

저널리즘에서 예술로 활동을 바꾼 건 약 20년 전이다. 처음엔 홍콩의 도시 생활에서 영감을 얻었다. 2003년 7월1일 (영국으로부터) 홍콩 주권 반환 기념 집회에 시민 50만 명이 거리로 나온 모습을 대형 그림으로 그려 전시한 게 사회참여적 그림의 시작이다. 본격적으로 기록화를 그린 건 2014년 ‘우산혁명’(중국 중앙당의 홍콩 행정장관 선거 개입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 때였다. 당시 그림들을 묶어 2014년 12월 책 <우산 스케치>를 펴냈다.

이어 2019~2020년 ‘반송중(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홍콩의 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해 재판하는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 시위’도 그림으로 기록해 출판을 시도했다. 두 번째 출간 작업은 첫 책보다 더 만만치 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어떤 의무감 같은 걸 느꼈다. 과거 20년 넘게 언론인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저널리스트의 사고방식과 습관을 지녔다. 제2의 천성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그림 작업은 홍콩 현대사 기록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본디 그림에 재능이 있었는가.

어릴 때 자폐 성향이 컸다. 밖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혼자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연필로 그리곤 했다. 글을 배우기 전에 그림을 먼저 배웠다. 대다수 아이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10살 무렵 링난대학의 저명한 교수한테 붓과 먹을 이용한 중국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대학 입시에 전념하기 전까지 6년간 그의 견습생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 뒤로 거의 붓을 들지 않다가 1998년 잡지사 편집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면서 다시 붓을 들었다. 지금은 그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림 작업은 힘들다. ‘그라운드제로’(아무것도 없는 공백)에서 시작해야 한다. 운 좋게도, 저널리즘에서 예술로 전업한 지 오래지 않아 홍콩의 도시 생활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찾았고, 홍콩대학에서 내 전시회 제안을 받아들였다.

2019년 7월13일 홍콩 시민들이 중국 본토와 맞닿은 북부 신계 지역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퐁소 제공 © Fong So

공인이 아니라면 시위 참가자 얼굴은 흐리게

스케치는 시위 현장에서 하는가. 위험하진 않나.

스케치는 현장에서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주변이 안전하고 대상이 천천히 움직일 때라야 가능하다. 긴박한 시위 현장은 적절하지 않다. 2014년 우산혁명 초기엔 시위 현장에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간략하게 밑그림만 그린 뒤 작업실에 돌아와, 언론 보도 사진들을 보며 세밀한 작업을 완성했다. 그 뒤엔 시위 현장에 나갈 때마다 카메라를 휴대했다. 그러나 2019~2020년 반송중 시위 때는 (사태가 험악해져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 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집회 현장의 클로즈업 사진은 찍지 않았다. 스케치 그림에서도 공인이거나 언론에 나온 사람들만 자세히 묘사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어떤 감정이 드는가.

분노.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이 퇴보하고 우리 자유가 침식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를 움직이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은 분노였음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홍콩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홍콩 시민들의 감정과 정서를 공유한다. 그들은 분노하고 저항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홍콩 시민들은 당신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중의 반응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초기 작업에 대한 호의적 반응은 (작품집 출간이라는) 새 프로젝트에 동기를 부여했다. <우산 스케치>는 출간된 지 한 달이 안 돼 2쇄를 주문할 만큼 빠르게 팔렸다. 현지 언론 보도가 거의 없었고 책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이번에 낸 두 번째 책 <저항하는 도시>는 (2020년 7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의 서슬 탓에) 홍콩에서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대만에서 인쇄했다. 불행히도 지금 홍콩은 해외, 특히 대만에서 책을 받는 일도 위험해졌다. 대만에서 홍콩으로 오는 인쇄·출판물이 검열받을 가능성이 크고,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책은 금수 품목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인쇄물 수령자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더 심각한 결과를 감수할 수도 있다.

당신의 스케치 작업과 작품집 출간 때문에 압력이나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는가.

아직까진 명백한 위협은 없었다. 나는 활동가 또는 공인이 아니다. 가난한 예술가일 뿐이며 저항예술가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다.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중국과 홍콩의) 공안 당국이 내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 시위에서 홍콩 자치정부의 경찰은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 퐁소는 몇몇 장면을 모아 그린 이 그림에 ‘우리가 왜 이런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Do We Pay Them for All This?!)라는 제목을 붙였다. 퐁소 제공 © Fong So

홍콩판 국가보안법, 가혹한 법보다 나쁘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보는가.

어떤 가혹한 법보다 더 나쁘다. 보안법은 ‘일국양제’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이 법은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국제앰네스티가 지적한 것처럼, “이 법의 조항에 따라 사실상 그 무엇이든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지구상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중국이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시행함으로써 홍콩은 공포의 지배 아래 놓였다. 그들은 홍콩을 더욱 엄격하게 통치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홍콩 시민을 침묵시키려 한다.

홍콩 시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주의, 홍콩 자치를 원한다. 중국 중앙정부가 (1997년 영국에서) 홍콩을 반환받을 때 약속한 ‘원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홍콩의 핵심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대중적 구호로 요약됐다. “우리는 보편적 참정권을 원한다!” 2019~2020년 반송중 시위 때는 이런 구호도 터져나왔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홍콩을 해방하라!”

“홍콩과 함께해달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활용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이 질문에 짧게 답변할 수는 없다. (그만큼 복잡하고 민감하다는 뜻이다. -편집자) 중국 정권은 홍콩이 ‘체제 전복의 기지’가 될 가능성이 너무 커서 그들의 절대 권력을 위협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 사실 인권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탄압은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오랜 기간, 중국 정권은 인권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비난해왔다.

퐁소는 이제 막 출간된 작품집 홍보에 당분간 전념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을 “단순히 예술가의 표현이 아니라 홍콩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기록물”로 여긴다고도 했다. 홍콩 시민으로서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2019~2020년 반송중 민주화운동 때 홍콩 시민이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며 써온 간명한 구호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홍콩과 함께해달라(Stand with Hong Kong).”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 Fong So
홍콩 경찰이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면서 지도급 인사를 체포하고 있다. © Fong So
홍콩 시민들이 \'자유 홍콩, 지금 민주주의\'라고 쓴 펼침막을 펼쳐보이고 있다. © Fong So
홍콩 민주화 시위는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탄 발포에 우산을 들고 맞서면서 \'우산 혁명\'이란 별칭을 얻었다. © Fong So
홍콩 도심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에 다양한 요구와 희망을 적은 펼침막들이 내걸렸다. © Fong So
홍콩 민주화 시위에는 특히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앞장섰다. © Fong So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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