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에이치엘비, FDA 임상 결과 허위공시 혐의..지트리비앤티 檢 수사
2019년 FDA의 3상 결과 판정 자의적 해석
지난해 11월 금융위 자조심 심의…증선위 결정 남아
금융당국이 국내 바이오·제약 회사의 미국 임상시험 진행 공시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에이치엘비(028300)가 지난 2019년 자사 항암 치료제의 미국 내 3상 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허위공시한 혐의에 대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 심의를 마치고,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조치를 앞두고 있다. 지트리비앤티(115450)의 경우 이미 지난해 상반기 증선위에서 검찰 고발키로 의결하고 현재 서울 남부지검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금융위는 에이치엘비가 항암 치료제의 미국 내 3상 시험 결과를 허위공시한 혐의에 대해 심의를 마쳤다. 심의 결과 금융위 자조심은 에이치엘비는 임상 시험 결과가 실패에 가까운 것이었음에도, 성공한 것처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봤다.
한 관계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회신에서 꽤 분명한 어조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며 "하지만 에이치엘비는 임상 시험이 성공했다고 발표하고, 이를 사업보고서에 공시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문제 삼은 내용은 2019년 6월 통보된 항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의 임상 시험 결과다. 에이치엘비 진양곤 회장은 지난해 6월 "이번 임상이 당초 기획한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이로써 FDA 허가신청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내부판단"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9월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을 통과했다"며 사전허가 신청(NDA) 등 신약허가 절차를 빠르게 밟기 위해 법무법인(로펌)과 계약했고, 원료 생산준비도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같은 해 11월 3분기 사업보고서에는 "글로벌 3상 임상 시험을 완료하였다"며 "미국 FDA와 예비 NDA(Pre-NDA) 미팅을 하였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허가 전략을 수립한 후 신약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앞서 지난해 9월 21일 에이치엘비 주가는 리보세라닙의 유의미한 임상3상 결과가 유럽 종양학회 2020온라인회의(ESMO)에서 발표되면서 장 중 13만3800원까지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FDA가 3상 시험 결과를 평가한 문서를 기반으로 해서 에이치엘비가 자의적으로 결과를 해석했다는 입장이다. FDA의 문서에는 ‘실패’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분명하게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미국 내 3상 시험 과정에서 FDA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며, 여기서 많은 문서가 오간다"고 설명했다.
허위공시 등에 대한 제재는 금융감독원 조사를 거쳐 금융위 자조심에서 심의를 하고, 최종적으로 증선위에서 조치를 의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아니면 검찰에 고발하게 된다.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 관계가 확정되는 방식이다.
통상 자조심 심의를 하면 그 다음 주에 증선위 의결이 이뤄지는 데, 이번 사건의 경우 3개월가량 최종 결정이 미뤄져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전직 증선위 비상임위원은 "자조심 심의 결과가 증선위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에이치엘비는 이에 대해 "관련해서 내용이 확정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에이치엘비는 "증선위 소명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혐의 내용에 대해 사실을 다투겠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또 다른 바이오 업체 지트리비앤티에 대해서는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허위공시 혐의로 지난해 6월 검찰 고발 조치했다. 미국 FDA 3상 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실패한 임상시험을 성공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내용이다.
지트리비앤티는 지난 2015년 미국 리제넥스사가 개발하고 있던 안구건조증 치료제를 매입한 뒤,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해당 사건은 서울 남부지검에서 수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국내 제약회사들의 해외 임상 결과 발표에 대해 칼을 빼든 것은, 제약회사들이 내놓았던 전망과 달리 임상시험 결과가 나빠 주가가 급락한 경우가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주가 부양 등을 위해 실제 결과와 동떨어진 발표를 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숨겼던 게 투자자들의 피해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한올바이오파마(009420)의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3상이 ‘1차 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올바이오파마 주가가 당시 25.59% 급락했다. 지난해 1월 21일 한올바이오파마는 "안구건조증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 ‘HL036’의 임상 3상에서 1차 지표 충족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1차 지표 미달은 사실상 임상 실패로 여겨진다. 1차 지표는 FDA에 제출하는 임상 디자인에서 성공을 판단하는 실험지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앞서 한올바이오파마는 구체적인 데이터 없이 임상 3상에 성공했다고 자체 평가 결과를 발표한 이후 말을 바꾼 셈이 됐다. 1차 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했다고 발표 닷새 전 한올바이오파마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각막 개선을 측정하는 객관적 지표와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지표에서 모두 우수한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 4월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은 미국 임상 3상을 추진하던 중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가 원래 알려진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인 ‘GP2-293’ 세포를 형질전환세포로 사용해 제조됐다고 밝혔다. 이에 FDA는 같은 해 5월 인보사 임상 3상 중단을 통보했고 식약처도 같은 해 7월 인보사 허가를 최종 취소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성분 변경 사실 등을 숨겼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이 상장심사 당시 중요사항을 허위 기재하거나 누락했다고 판단해 회사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코오롱티슈진 상폐 여부를 논의하고 개선기간 1년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현재도 코오롱티슈진은 거래정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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