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D-1년' 베이징동계올림픽 향해 뛰는 한인들
베이징동계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내년 2월 4일부터 17일간 베이징 시내와 베이징 외곽 옌칭구, 허베이성 장자커우 등 3곳에서 열립니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이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모두 치르는 세계 첫 번째 도시라며 연일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달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해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자신한 데 이어, 왕이 외교부장은 2월 13~14일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기간에 한국을 포함한 30여 개국 중국 주재 외교사절과 함께 올림픽 준비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열린다'는 메시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입장에선 어떻게든 올림픽을 개최해 코로나 극복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을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처음 대규모로 확산한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제대로 된 올림픽을 열어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지구촌 겨울 잔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당장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이 올해 7월로 1년 연기됐지만, 이마저도 개최가 불투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향해 뛰는 한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선수단보다 먼저 베이징 현지에서 세계인들과 경쟁하거나 스포츠 교류의 터를 닦고 있는 이들입니다.
● 겨울스포츠 불모지에서 동계 스포츠용품 사업 일군 정명일 대표
베이징에서 동계스포츠용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명일 베이징 오릭스포츠 대표는 국내 수영선수 출신입니다. 선수 시절 지역 수영연맹 간부의 추천으로 1995년 베이징체육대학에 입학해 중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군대를 다녀온 뒤 2003년부터 베이징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겨울스포츠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얼빈과 같은 동북 지역 추운 지방에서 극소수 '상류층'이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수준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스키장도 거의 없었습니다. 정 대표는 이때부터 중국 동계스포츠용품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의 겨울스포츠 저변이 너무 협소한 데다,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인들 사이에서 '믿음'이 약했다고 합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국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입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할 때에는 중국의 스키장이 모두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곧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해외로 나가던 중국 스키족이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중국 내 스키장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3억 인구를 겨울스포츠에 유입시키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둔 중국 당국의 정책적인 지원도 정 대표에게는 도움이 됐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에 스키와 스노보드를 배우는 클럽이 만들어지고, 스키장 유입 인구도 3년 새 10배 정도 늘었습니다. 1년 내내 눈을 구경할 수 없는 광저우, 선전과 같은 중국 남부지방에 실내스키장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3년 전부터 정 대표 회사 매출은 30~40% 성장했고, 중국 동계스포츠용품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해 공급하다 이제는 자체 브랜드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의류는 중국 시장에서 30% 정도를, 일부 품목은 마니아 사이에서 50% 이상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 회사 매장이 CCTV 방송 등 중국 관영매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정 대표는 회사 성장의 비결로 직원들의 팀워크를 꼽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제주도의 조그마한 땅을 사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겨울스포츠 붐을 틈 타 중국의 대기업들도 동계스포츠용품 사업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 대표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회사 브랜드 홍보에 더 큰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통역이나 숙소 예약·주선, 트레이닝 장소 섭외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한국인인 까닭입니다.
● 올림픽 이후 한국인·기업 진출 모색 중인 정재광 이사
정재광 PBIH그룹 이사는 주중 대한스키협회 부회장을 함께 역임하고 있습니다. 중국계 투자회사에서 투자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중 간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경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19년 말 중국 당국이 전문가들을 초빙해 올림픽 시설의 리모델링·재활용 방안을 묻는 자리에 한국 측, 투자자 측 입장에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강조하는 테마 중 하나는 '친환경·재활용'입니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주경기장을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장소로 활용하는 등 동계올림픽이 치러지는 12개 경기장 가운데 8개 경기장이 하계올림픽 때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정 이사는 동계올림픽 이후 경기장 시설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나 한국 기업들의 참여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한국의 예술 교육, 어린이 교육, 한국 연습생 훈련 시스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한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는 특히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 겨울스포츠 인구를 겨냥해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많지만 아직 스키나 스노보드에 대한 교육,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중국에 선수나 코치 출신 한국인들을 대거 연계, 진출시킨다는 구상입니다. 한국 선수나 코치들이 은퇴 후 한국에서 자리를 못 잡을 경우 중국에서 인생 2막을 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는 정치·문화적인 이유로 한·중 간 교류가 소원할 수는 있지만, 스포츠 교류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평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면 정치적 색깔 없이 얼마든지 교류가 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 김진곤 주중 문화원장 "한국 연계 관광·문화 홍보관 추진"
민간 영역뿐 아니라 '관(官)' 영역에서도 올림픽을 향한 장정(長程)이 시작됐습니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베이징 현지에서 대한체육회 등의 활동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선수단 지원 준비와 한국 홍보 등의 역할은 현재 주중 한국문화원의 몫입니다.
김진곤 주중 한국문화원장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직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베이징동계올림픽은 한국 연계 관광의 장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보러 온 세계인들이 한국까지 방문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록 코로나 사태로 추진이 어렵게 된 부분이 있지만, 당초 한·일·중 3국 간 연계 관광도 논의가 됐었다고 합니다. 2018년 평창-2020년 도쿄-2022년 베이징, 4년 사이 동북아시아에서만 세 번의 올림픽이 잇따라 열리는 만큼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고 베이징올림픽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백신 공급 등으로 전염 우려가 불식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김 원장은 말합니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 원장은 베이징동계올림픽 선수촌에 한국 홍보관을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이 아닌 각국 선수단과 사절단 등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관입니다. 기본 콘셉트는 '한국 문화의 독창성'과 '중국 문화와의 차별성'이라고 합니다. 세계인들은 같은 동양, 동북아 문화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비슷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게 김 원장의 포부입니다.
김 원장은 "올림픽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의식 수준을 글로벌화하고, 필연적으로 대개방을 촉진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중국인들의 의식 수준이 한층 글로벌화해서, 우리 제품이나 한류의 중국 진출이 올림픽 이후 더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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