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려는 미국, '인플레' 부를까? 학자들 논쟁 붙었다

권다희 기자 2021. 2.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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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낮은 물가상승률에 익숙해진 시장에 ‘인플레이션’ 논쟁이 재점화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 통과를 추진 중인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부양책이 ‘예상보다 빠른’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을 낳을 수 있다는 세계적 석학들의 ‘걱정’이 논쟁의 불쏘시개가 됐다.

전년동기 대비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물가, 올해 오르긴 오른다…"적당히" vs "너무"
올해 어느 시점부터 미국 소비자 물가가 상승할 것이란 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팬데믹이 선포되고 미 경제가 직격탄을 맞기 시작한 게 지난해 3월 이후부터라 올해 봄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전년동기 대비로 산출하면 상승하는 게 자연스러워서다.

게다가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팬데믹 이전 수년간 오르지 않는 물가를 걱정했던 걸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은 반길 만한 소식일 수도 있다. 미 물가상승률은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2%)를 여전히 밑돈다. 일각의 인플레이션 걱정이 기우로 여겨지는 이유다.

문제는 폭과 기간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칼럼 등에서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너무 큰’ 부양책이 “한 세대 내에서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머스는 지난 12일 미 프린스턴대 주최 웨비나에서 ‘바이든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의견을 나누면서도 “젊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잘못 가정하고 있다”며 “이건 실수가 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연준은 물가가 관리 가능한 수준에 있다는 전망을 강조하고 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물가지표를) 코로나19에 민감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며 “코로나19에 민감하지 않은 부분의 물가는 코로나 이전과 같은 수준”이라 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사진 왼쪽)와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사진출처=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벤드하임 금융 센터 유튜브 캡쳐
백신 보급 후 美 소비자 지갑은 열릴까?
인플레이션 강도에 대한 엇갈린 전망은 올해 백신 보급과 맞물릴 소비 회복 속도를 어떻게 보느냐와도 연관돼 있다. 빌 더들리 전 뉴욕 연은 총재는 10일 블룸버그 기고에서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과 인플레이션 상승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번 경기 회복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했다.

더들리 전 총재는 10여년 전 금융위기 직후와 비교해 현재 가계의 지출 여력이 크다고 봤다. 미국 가계를 짓눌렀던 모기지 연체 문제가 없는 데다 미 행정부의 지원금 지급, 미 주택가격·주가 상승이 동반돼서다. 기업들도 증시 고공행진과 풍부한 저금리 자금으로 투자에 나설 기회가 풍부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세계적 거시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도 이달 초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해 중 이례적으로 늘어난 가계 저축이 지출로 전환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 가계 저축률은 2019년 말 7.3%에서 지난해 2분기 말 26%까지 높아졌다. 최근 다시 10%대로 하락했지만 팬데믹 이전보다는 높다. 막혔던 여행·여가·외식이 재개될 때 저축이 소비로 전환하는 속도가 전망보다 빨라진다면 물가상승 압력도 그만큼 더 더 높아질 수 있다.

소비 회복 속도는 서머스와 크루그먼의 논쟁에서 가장 이견이 큰 부분이기도 했다. 서머스는 팬데믹이 끝나면 소비가 급증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크루그먼은 미국 국민들이 바이든 부양안에 담긴 개인 지원금 1400달러 등을 소비하기보다 저축할 것이라 내다봤다. 바이든 정부의 부양책이 경제를 과열시키거나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란 크루그먼 주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의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연준은 '할 수 있다' vs '별 수 없다'
실제로 물가지표가 확연한 상승세를 나타낼 경우 연준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연준은 지난해 2%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공식화해 물가상승률 지표가 당장 2%를 넘는다 해도 통화부양책을 오랜 기간 유지할 '근거'를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주호에서 "연준은 과거 인플레이션 미달분을 만회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이 2%의 목표를 오버슈팅(적정 수준이상으로 상승)하기 원한다"며 "그러나 평균 물가목표제도 큰 폭의 오버슈팅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물가상승이 현실화 했을 때)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원하게 될 것"이라 했다.

이어 만약 연준이 시장 기대보다 일찍 금리를 올린다면 '장기간 저금리'를 전제로한 현재 금융시장이 받을 충격이 커질 거라 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신흥국 자산이 급락했던 테이퍼 텐트럼(긴축발작) 상황도 상기시켰다. 현재 2023년까지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없을 거라는 게 컨센서스다.

이는 서머스가 최근 우려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만약 바이든 정부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킨다면 연준은 금리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하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경기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연준은 통화완화 정책이 지속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0일 "미국 노동시장 회복은 아직 멀었다"며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장기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지난 1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른 시일 내 2%를 훌쩍 넘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게 되겠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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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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