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뉴스] 홈스쿨링? 아이와의 신뢰 관계가 중요합니다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퇴소시키고 홈스쿨링을 시작했어요."
코로나 확진자가 천 명을 오르내리던 지난해 말,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이를 퇴소시켰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당시 '긴급보육'이라 썼지만 대부분이 등원해 실제로는 '정상수업'과 다를 바 없는 어린이집·유치원은 감염 우려가 여전히 높았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질 낮은 온라인 수업에 아이들을 맡겨버린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을 절망케 만들었다. 지난달 교육부는 아이들의 학습 격차와 정서적 결손 문제를 인정하며 등교수업 확대를 추진하는 내용이 담긴 업무계획을 발표했지만, 코로나 유행이 심각해질 때마다 학교 정문은 또 다시 굳게 닫힐 것이기에 아이를 둔 부모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자의든 타이든 아이를 퇴소시킨 일부 학부모들은 무너진 공교육의 대안으로 홈스쿨링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홈스쿨링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쩌다 시작한 홈스쿨링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면, 11년 차 홈스쿨링 가족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 홈스쿨링의 목적... 아이들이 자기 삶을 살길 원해요
아이가 넷이나 있는 가족의 아침은 왁자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시작된 아이들의 질문 공세와 인사말 속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은은한 조명이 따스함을 더해준 이 집에 정희성(39), 전나오미(38) 부부와 사이좋은 4남매가 살고 있다. 첫째는 올해 열 살이 된 정이안. 그 아래로 두 살씩 차이가 나는 둘째 이수와 셋째 이래가 있고 이제 세 살이 된 막내 이로도 있다. 분주한 아침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이 한편에서 쭈뼜대는 동안 설거지 임무를 후다닥 끝낸 아이들 아빠가 막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출근하는 아빠 뒤로 나머지 아이들과 엄마가 졸졸졸 따랐다.
"사실 이 집은 저희 친정집이에요. 얼마 전에 이사한 집이 화재로 전소됐거든요. 임시로 들어왔는데 저희 집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이 홈스쿨링 하는데 집중하기 어려워해서 막내는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어요."
아이들 엄마 전나오미 씨는 보금자리가 불탔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꺼냈다. 그 집도 아이들의 홈스쿨링을 위해 야심 차게 마련했었단다. 가족들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전 씨의 홈스쿨링이 더 궁금했다.
오전 9시. 간단한 아침 예배를 마친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왕할머니가 내어주신 차 한 잔과 초콜릿에 달콤한 수다가 이어진다. 그러다 엄마가 주사위를 꺼내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첫 수업인 글쓰기는 이렇게 대본에 없던 식탁에서 시작됐다.
"글감 주사위에요. 각자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주제가 오늘 글쓰기의 글감이 되는 거죠."
주사위에는 '로또 1등 분실하기', '10년간 고시 공부하기'처럼 재미있는 주제부터 '막강한 권력', '열정적이었던'처럼 철학적인 글감도 있었다. 과연 아이들이 고른 글감은 무엇일까? 주사위가 멈추고 아이들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첫째 이안은 '성격'이 나왔고, 둘째 이수는 '인생 고민'이었다. 어려울 것 같은 주제를 받은 이수가 '씨익' 하고 웃는다. 자신 있는 표정이다.
햇살 좋은 공부방에 모여앉은 아이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글을 써 내려갔다. 엄마는 아이들이 맞춤법을 물어볼 때만 관여할 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원에 다닐 때였어요. 분명 우리 애들은 점 찍고 선을 긋는 수준밖에 안 됐는데 항상 그럴듯한 작품을 가지고 하원을 했어요. 한 번은 집에서 아이들이 정리를 안 해서 어질러 있는 장난감을 다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쿨하게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작품도 있었거든요. 사실, 온전한 자기 작품이 아니니 아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거죠."
이를 계기로 엄마는 아이들을 퇴소시키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단다. 그리고 특히 미술 공부를 할 때는 준비과정부터 마무리 정리까지 아이들에게 모두 맡겼다.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망치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도와주지 않아요.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항상 우리 집 냉장고에 걸려요. 점을 찍다 뚫린 구멍에 아이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색이 번진 곳에도 아이들 각자의 모습이 남겨지게 되었죠."
20분 남짓 지났을까? 둘째 이수가 "다 썼어요!"라고 외치며 활짝 웃었다. 8살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삐뚤빼뚤 써 내려간 인생 고민이 참 대견했다. 첫째까지 글쓰기를 끝내자 아이들은 완성한 글을 직접 발표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동생은 형과 누나에게 글쓰기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엄마는 "냉장고에 붙은 미술 작품처럼 아이들이 남 보기에 멋지든 그렇지 않든 자기 삶을 살길 원해요"라며 홈스쿨링의 목적을 아이들이 쓴 글처럼 명료하게 밝혔다.
◇ 홈스쿨링으로 자란 아이도 '사회성' 문제 없어요
글쓰기 수업이 끝나자 엄마는 첫째에겐 영어회화를 둘째, 셋째에겐 수학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 아이들은 익숙하게 책장에서 책을 꺼내왔다. 이때부터 엄마의 멀티 능력이 발휘됐다. 첫째 옆에 붙어서 아이의 영어공부를 도와주다가도 둘째, 셋째의 산발적인 질문에 일일이 대답했다.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력이 있는 엄마지만, 세 아이의 질문이 정신없이 이어지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홈스쿨링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 무렵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됐다. 둘째가 셋째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수는 "아니, 이건 너무 쉬운데...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다니"라고 동생을 타박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알려줬다. 덕분에(?) 엄마는 첫째의 영어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낙수효과예요. 첫째를 가르칠 때는 좀 힘들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형, 누나를 보고 따라 하면서 제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글이나 영어를 익혔어요."
어쩌면 다자녀라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자녀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사회성이 길러질 터. 그렇다면 다자녀 홈스쿨링 가정이 교우관계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공교육처럼 사회성을 배우는데 유리한 것일까? 전 씨는 조금 다른 의견을 말했다.
"교우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배운다는 주장은 일부분 맞고 일부분은 틀려요. 학교에서는 또래 친구들과의 사회성은 기를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어른이나 동생들과 함께 지내는 데에 들이는 노력은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 존중, 배려 인내심 등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오히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어우러져 일해야 하는데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아요. 물론 홈스쿨링을 하면서 말 그대로 홈에만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스포츠팀이든 어떤 모임이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홈스쿨링 11년 차...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선택
사실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전 씨는 홈스쿨링이 자연스럽다. 주변에 홈스쿨링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부모님 또한 전적으로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홈스쿨링을 시작할 당시 공교육을 받고 자란 남편을 설득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저는 학교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홈스쿨링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이 자존감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를 닮았으면 학교를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고, 또 굳이 홈스쿨링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어서 태도가 미지근했어요. 시부모님도 탐탁지 않아 하셨고요."
하지만 전 씨는 한국 공립학교, 한국 대안학교, 유대인 학교, 미국 공립학교 등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경험하며 자랐기에 홈스쿨링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홈스쿨링으로 자녀를 키운 선배들을 찾아 이야기도 듣고 무엇보다 남편과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누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첫째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지났다.
◇ 놀이 같은 홈스쿨링... 장점은 사색, 단점은 방종
시계가 오전 10시를 넘자 첫째 이안이가 거실로 나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화상영어회화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다고 한다. 아무리 엄마가 영어 선생님이라고 해도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일일이 살피다 보면 소홀해지는 부분이 생겨나는 법이다. 아이들은 엄마표 수업 말고도 학습지 등 다른 종류의 공부도 한다.
"교과 공부는 교육 태블릿의 도움을 받고 화상으로 영어회화 수업을 받아요. 피아노 학원도 다녀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데 예전에는 토요일마다 교회에서 하는 토요학교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1박 2일 놀다 왔어요."
첫째가 화상으로 영어수업을 받는 사이 둘째와 셋째는 엄마와 함께 영어 노래를 듣고 영어책을 읽었다. 글쓰기로 시작된 수업이 수학과 영어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아이들은 여태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공부할 과목을 정하고 먼저 질문했다.
"공부 자체가 노동이라고 생각되면 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공부를 놀이처럼 생각해서 딱히 쉬는 시간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아는 요즘 학교에서는 참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전 씨는 아이들이 수업을 '놀이'로 받아들여서 그렇다고 답했다. 공부가 놀이가 되다니 참 이상적인 교육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학교에서는 아이가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서 배움이 어렵고 힘들지만, 홈스쿨링은 이미 아는 것에서(관심 있는 것부터) 공부가 확장되어 가니까 관심사도 넓어지고 재미있는 것이죠. 특히, 공교육은 온갓 체험을 제공해 줘요. 하지만 홈스쿨링은 체험이 아닌 깊은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떤 기술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어요. 음식으로 치자면 간만 보는 게 아니라 음식을 배불리 먹는 거예요."
차려진 음식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맛볼 수 있으니 어찌 놀이처럼 즐겁지 않겠냐는 말이다. 전 씨는 홈스쿨링의 장점을 더 자세히 풀어 놓았다.
"많은 홈스쿨러의 삶은 학교보다 심심한 시간이 많아요. 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수업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데 사실 홈스쿨링은 50분 수업도 집중하면 30분 안에 끝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남아 사색이 가능해요. 저는 삶의 원동력이 사색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간이 없으면 삶의 겉면만 핥고 살게 되지만 사색을 하면 삶을 누릴 수 있거든요."
전 씨는 홈스쿨링의 가장 좋은 점으로 '사색'을 꼽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제가 수업을 하는 그 시간보다 아이들이 심심함에 몸부림치다 사색하고 언젠가 배운 내용이 떠올라 생각의 범위가 확장되는 그 순간이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는 시간이라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자기 시간이 많아야지만 일어날 수 있는 프로세스지요. 홈스쿨링을 하면 배운 것을 익힐 시간이 충분히 보장돼요."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홈스쿨링에도 단점은 있었다. "단점은 시스템이 잘 잡혀있지 않으면 방종의 삶을 살게 된다는 거죠. 분명한 목표와 그것을 이룰 현실적인 액션플랜이 꼭 필요해요. 또 홈스쿨링을 지지하는 공동체가 없으면 엄마도 아이도 너무나도 외로운 생활을 할 수 있어요. 홈스쿨링을 하다가 버거울 때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꼭 필요한 이유죠."
◇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전나오미표 홈스쿨링'
30분쯤 지나 첫째가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온몸으로 기뻐하는 얼굴이 발그레하다. 둘째 이수가 오빠의 바통을 이어받아 영어수업을 들으러 나갔다. 다시 시작된 첫째와 셋째의 영어책 읽기 시간. 하지만 첫째 이안이는 역사 책을 들었다. 오늘 할 과목은 정해져 있지만, 순서는 아이들의 마음에 따라 바뀌는 편이란다. 최근 역사에 꽂힌 이안이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들더니 푹 빠져버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본인이 의지로 공부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단순히 '놀이여서'라고 설명하기엔 좀 부족했다. 더 큰 아이들도 하기 힘든 공부법이 어떻게 자리 잡은 것인지 궁금했다.
"일주일마다 가족회의를 열어요. 회의 항목 중에서 그 주의 목표를 정하는 항목이 있어요. 뭔가를 결심했을 때 다른 사람과 그 결심을 나누면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잖아요. 온 가족이 자기 목표를 나누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요. 그리고 다음 주에 스스로 평가를 해요. 또 매일 필수로 해야 하는 공부 목록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날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스스로 정해서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역시 이 집의 홈스쿨링은 달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전나오미표 홈스쿨링'을 물었다.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 100가정이라면 100가지 홈스쿨링 방법이 있어요. 각 가정마다 라이프스타일과 교육철학, 방식이 다르니까요. 저희는 4대가 함께 살면서 조부모님과 왕할머니까지 홈스쿨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신체 활동을 아주 많이 한다는 점 그리고 학습 측면에서 과목을 굳이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네요."
통합적으로 가르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전 씨는 앞서 말한 화재로 집이 전소된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불이 났을 때 떠올랐던 성경 구절을 가죽 가방에 새겨서 늘 가지고 다니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직접 가방을 디자인하고 공장을 찾아 제작하고 판매했어요.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마케팅, 경제, 미술, 국어, 수학 등 실제적인 공부를 배울 수 있었어요."
'불난 집 다시 짓기'라는 홈스쿨링 프로젝트의 탄생 비화다. 이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통합 수업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날 오전 수업의 마지막도 통합 수업이다.
◇ 지도를 활용한 통합 미술수업을 소개합니다
엄마가 미술수업을 위해 거실로 자리를 옮기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권하고 지도를 챙겨줘." 며칠 전 다녀온 미술관에서 받은 미술사 소책자가 바로 여권이다. 아이들은 소책자에서 바로크 시대를 펼쳤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는 렘브란트에요. 렘브란트가 태어난 나라를 지도에서 찾아볼까요?"
지도 위에서 춤추던 아이들 손가락이 네덜란드를 짚었다. 엄마는 크게 호응하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부족한 내용은 미술책과 유튜브 영상으로 가르쳤다. 렘브란트의 생애와 그림의 특성이 영상으로 설명되는 동안 아이들은 끊임없이 감탄하고 질문했다. 유튜브 영상이 두 번째 선생님인 셈이다.
이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자리를 옮겨 직접 그려보기로 했다. 렘브란트처럼 천연물감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계란 노른자와 숯 가루가 섞이자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엄마는 실제 렘브란트처럼 사실적으로 그릴 순 없으니 선사시대 동굴 벽화처럼 손가락으로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무조건' 렘브란트처럼 붓으로 그리겠다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국 호기심을 못 이긴 아이들 손바닥이 물감 범벅이 됐다. 아이들이 선사시대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는 동안 엄마는 고대 미술에 대한 역사책을 읽어줬다.
우연히 얻은 미술관 소책자가 바로크 시대와 렘브란트를 거쳐 선사시대 동굴 벽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이 수업의 중심에 '지도'가 있었다.
"지도는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구인 것 같아요. 역사는 물론 지리, 미술에 대해 배울 때도 항상 지도를 사용하고 산책을 갈 때도 지도를 들고 상상하며 걸어요. 예를 들어, 눈이 많이 온 날엔 미리 히말라야에 대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본 후 지도를 들고 뒷산을 오르면서 '이곳은 히말라야야'라고 상상하며 모험하는 방식이죠."
배가 고파질 무렵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담뿍 담긴 작품을 남겼다. 첫째는 우주, 둘째는 인디언을 그렸단다. 셋째는 추상화를 그린 것이리라.. 이 그림들 또한 한동안 냉장고에 붙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아이들 엄마가 말한 이상적인 홈스쿨링이다.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완전히 몰입해서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 정말 보람 있어요. 솔직히 시험을 치면 다 맞지 않을 거 알거든요.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요. 멀리 오래갈 걸 아니까요."
◇ 홈스쿨링 시작하세요? 아이와의 신뢰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쯤 되면 무너진 공교육 때문에 불안한 부모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교육 방법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자의든 타의든 엄마 아빠표 수업을 시작한, 혹은 시작할 마음이 있는 가족들에게 성공적인 홈스쿨링을 위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을 물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와의 신뢰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해요. 며칠 동안은 내 아이가 돌봐주고 가르쳐야 할 자식이 아닌 그저 키가 작은 사람, 혹은 룸메이트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상태로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 볼 것을 추천해요. 막상 홈스쿨링을 시작하면 '뭐라도 해야지'하는 불안감이 생기거든요. 그때 오히려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동안 해야 할 일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던 아이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날 거예요. 바로 그때 아이를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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