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300만 시대]① '조폭 상징' 옛말.."타투 인구 300만 달해"
과거와 달리 대중화됐지만, 법·제도는 아직 '미비'
"예술행위 인정·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vs "미풍양속 해치고 사회적 부작용 커"
[※편집자 주: 타투(문신)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타투를 시술받은 사람의 수가 300만 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조직폭력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타투는 이제 개성과 멋의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타투 대중화라는 현실과 달리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은 아직 '불법'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올바른 타투 문화의 정착을 위해 타투 문화의 확산과 이를 둘러싼 합법화 논쟁, 관련 산업의 양성화 방안 등을 다루는 5편의 기획기사를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20년 전 즈음만 해도 남자 손님은 조직폭력배이고, 여자 손님은 성매매 종사자였어요. 근데 요즘은 판사부터 의사, 대학생, 스님까지 다양하죠. 고객의 신분을 물어보기 전에는 몰라요."
서울 명동에서 타투(문신)숍을 운영하는 조명신(57) 빈센트의원 원장은 주로 어떤 손님이 방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타투가 이제 더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손님들이 원하는 타투 스타일도 이른바 '이레즈미'라 불리는 일본 야쿠자 문신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작고 예쁜 '미니 타투', 얇은 선으로 낙서하듯 그리는 '두들 타투' 등으로 다양해졌다. 방송이나 SNS를 통해 타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방송인, 가수, 스포츠 스타 등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흔해졌다.
조폭의 상징이던 문신은 이제 타투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Re-branding) 돼 우리 사회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달라진 타투의 위상과 현실을 법과 제도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년 전인 1992년 대법원에서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해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사실상 불법화한 이래 관련 법이나 규제의 정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급속히 성장한 타투 산업 규모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타투를 시술할 수 있는 타투이스트는 의사 면허가 있는 조 원장 등을 비롯해 손에 꼽는 실정이다.
눈썹문신 등 반영구화장까지 합치면 '4명 중 1명' 경험
타투는 피부에 색소를 주입해 일정한 문양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표피 아래 진피(眞皮)층에 색소를 입혀 영구적으로 문양이 남도록 하면 '타투'고, 표피나 진피층 상부에 색소를 넣어 6개월∼3년간 효과가 지속되도록 하면 '반영구 화장'으로 분류된다.
2018년 문신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눈썹 문신 등 반영구 화장은 1천만 명, 타투는 300만여 명이 시술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영구 화장과 타투를 합치면 국민 4명 중 1명꼴에 달한다는 얘기다.
시장 규모도 거대하다.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타투 시장 규모는 약 1조2천억원(반영구 화장 약 1조원·타투 약 2천억원)에 달했다.
젊은 층일수록 타투 시술 경험은 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성별·연령·지역별 인구비례를 따져 조사한 결과 20대와 30대에서 각각 26.9%, 25.5%가 타투 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타투 시술 유경험자의 시술 평균 횟수는 2.25회였고, 유경험자 중 최근 1년 이내에 시술을 받은 비율은 40%가 넘었다.
타투를 경험하지 않은 82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도 타투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22.9%, 여성은 27.4%가 향후 타투 시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10대는 47.2%가 타투 시술 의향이 있다고 답해 타투에 대한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권유지(23) 씨는 "타투를 통해서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나 기분이 타투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인 경험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커서 타투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도 타투를 새로 받으면 '예쁘다', '몇 번째 타투냐'며 좋아해 준다"며 젊은 층에선 타투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타투 시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시술 이유로 '개성 추구', '자존감 회복', '호기심' 등을 꼽았다. 타투를 자기표현과 개성 추구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김도윤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젊은이들은 타투를 외국 연예인, 가수, 스포츠 스타 등을 통해 처음 접하다 보니 선입견 없이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뉴스 등에서 조직폭력배 등을 보여줄 때 문신을 같이 보여주면서 이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며 "요즘 젊은 손님들은 아예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국방부와 경찰도 최근 타투 관련 규정을 완화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몸에 타투가 많은 사람을 4급으로 판정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이들이 현역(1∼3급)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타투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감소해 정상적 군 복무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경찰도 지난해 11월 내용상 문제가 없고 제복으로 가릴 수 있는 타투라면 경찰 채용에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기준' 개선안을 행정 예고했다.
타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그 수요가 크게 늘면서 타투를 시술하는 타투이스트들도 많아졌다.
추산하는 단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타투이스트의 수는 약 8천 명에서 2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김도윤 지회장은 "타투 수요가 늘고 있기도 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재능을 살리면서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라는 인식도 퍼지면서 타투이스트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문신사중앙회에 따르면 타투뿐 아니라 반영구 화장 업계에도 2만 명 이상이 전업자로 종사하고 있다. 피부관리실, 미용실 등에서 행해지는 시술까지 반영하면 최대 20만여 명이 반영구화장 업계에 종사한다는 추정도 있다.
"타투는 예술행위,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vs "공중위생·정서 고려해야"
타투의 대중화가 가속하고 있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타투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타투를 예술의 영역이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기성세대 중 상당수는 타투가 미풍양속을 해치고 청소년들의 정서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므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의 충돌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방송가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타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연예인도 방송에 출연할 때는 타투를 테이프 등으로 가린다. 미처 가리지 못한 타투는 화면에 노출될 수 없는 담배나 흉기와 같은 취급을 받아 모자이크 처리된다.
이는 방송에서의 타투 노출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와 제44조는 각각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해선 안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모방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다룰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도윤 지회장은 "과거에는 타투가 조폭 문화의 일부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더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타투에 대한 문화 인식의 충돌이 방송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방송에서 모자이크 처리한다면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가 아니겠느냐"며 "타투는 개인의 외모에 속하는 부분인데, 이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비판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타투를 하고 안하고는 성인들이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라며 "지금처럼 타투가 무면허 의료행위처럼 돼서 생기는 피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으므로 적절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발간한 '무자격자에 의한 문신(반영구화장)의 문제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가치관이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이 일시적 충동으로 문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서구 일부 국가에서 타투 시술을 허용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타투 시술을 받은 사람 중 55.2%가 타투 시술을 후회하고, 타투를 제거한다고 해도 흉터 등이 남는다"며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이 금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부가 타투 시술을 제대로 감독·단속하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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