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은 '박형준 보고 사찰 파일' 실체 공개할까?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했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현재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정원의 불법 사찰은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쟁점으로도 비화되고 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를 상대로 다른 경쟁 후보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형준 후보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 등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 불법 사찰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 않겠냐는 게 비판의 취지다. 후보마다 비판 수위는 다르지만, 여당 후보뿐 아니라 당내 경선에서 경쟁하고 있는 국민의힘 예비후보 중에서도 이런 맥락의 문제 제기를 꺼내는 이도 있다. 박 후보는 선거를 앞둔 정치공세일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 '4대강 불법 사찰' 피해 환경단체들 국정원에 정보공개 청구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불법 사찰 피해를 입은 환경단체들이 이달 초 국정원에 사찰 자료를 더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단체가 정보공개 청구의 근거로 삼은 문건은 지난 2018년 KBS가 단독 입수해 공개한 국정원 사찰 문건이다.
KBS는 2018년 9월 [시사기획 창 - 대통령의 표적이 된 사람들]에서 해당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 문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의 요청에 의해 국정원이 제공한 1장짜리 요약 문서다(이하 '요약문건'). [※참고 : 시사기획 창 - 대통령의 표적이 된 사람들(2018년 9월 11일) https://www.youtube.com/watch?v=PWw3PlxcSms ]
이 요약문건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한 환경단체와 교수 등 민간인들을 상대로 어떻게 불법 사찰을 했는지 9개 항목에 걸쳐 내용이 요약 서술돼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런 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당시 청와대 주요 책임자들의 직함이 특정돼 기술돼 있다는 점이다. 박형준 후보도 포함돼 있다. KBS가 공개한 1장짜리 요약문건을 그래픽으로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9개 항목 가운데 박형준 후보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그가 홍보기획관을 했던 시기인 4번과 5번 항목, 그리고 정무수석을 맡았던 7번 항목이다. 이 세 개의 항목만 다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빨간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박형준 후보를 뜻한다)
특히 4번과 5번 항목이 심각하다. 4대강 사업 반대단체들에 대한 견제 방안으로 '세무조사 압박'을 수단으로 거론하는가 하면, 대표적인 반대 인물 20명을 선정해 정부 내 친분 인사를 붙여 '내부 갈등을 유도'한다고도 돼 있다.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이다. 이런 내용들이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던 박형준 후보에게 보고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약문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맹형규, 정동기, 박재완 등)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박형준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2018년 KBS 보도 당시 요약문건의 실체를 인정한 바 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자료를 더 공개하는 등 협조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즉 KBS가 공개한 요약문건은 실체가 불분명한 문건이 아니라 '확인되고 공인된 문건'인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 캐비닛 안에 요약문건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 자료들이 더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형준 보고 파일' 실체 드러날까...3월 초 공개 가능성
이번 환경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에 국정원이 응한다면, 그래서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된다면 이른바 '박형준 보고 파일'의 실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 불법 사찰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운동을 수년째 해오고 있는 단체인 '내놔라 내파일'의 김남주 변호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환경운동연합을 포함해 모두 5개 단체의 위임을 받아 2월 초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고 전했다.
■박형준 후보, 4대강 사찰 관련성 전면 부인..."최근 논란은 불순한 선거공작"
박형준 후보는 그제(14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국정원 불법 사찰 문제에 대해 "선거공작이고 불순한 의도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KBS가 보도했던 4대강 불법 사찰과 관련해서는 "알지도 못 하고 그런 적도 없다"라며 여전히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요약문건에 본인이 등장하는 이상,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정보공개 청구 취지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라고만 답했다.
이제 공은 국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국정원은 공개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평일 기준 2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 청구인들에게 통보해줘야 한다. 자료가 공개된다면 그 시기는 3월 초가 유력해 보인다.
이재석 기자 (jaese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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