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보고서]⑦ 한수원, '엉터리' 국회 해명에 공익신고자 색출까지

백인성 2021. 2. 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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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국정과제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전체 발전량 중에서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25.9%에 이릅니다.

원전 비중을 당장 확 낮출 수는 없으니, 안전하게 써야겠죠. 그럼 원전 안전에 문제는 없을까요?

KBS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원전에서 중대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수소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핵심 안전설비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연속 보도합니다.

[연관기사]
[원전 보고서]① “수소 제거량, 예상의 30~60%”…재실험서도 미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08672
[원전 보고서]② “불붙은 촉매 가루 날려”…“사고 위험성 되려 증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08673
[원전 보고서]③ 한수원, 보고서 축소 의혹…원안위에도 안 알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08674
[원전 보고서]④ “화염가속 위험, 원전 전수조사 필요”…내부 우려 있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09693
[원전 보고서]⑤ “당연히 비밀이야, 자리 날아갈 수도”…한수원 간부 ‘은폐’ 지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09696
[원전 보고서]⑥ 원안위, 공식 조사 착수…한수원도 내부 조사 검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10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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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진상규명 시작한 국회에 '엉터리' 해명 자료 제출

원전 수소제거장치 결함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국회도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노후원전 안전조사 태스크포스가 어제(15일) 회의를 열고 KBS 보도와 관련한 의혹을 한수원이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한 겁니다.

이에 한수원은 국회에 A4지 12장 분량의 '피동형수소제거기(PAR) 의혹보도 관련 보고'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자료를 저희 취재진이 입수해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본 결과, "엉터리 자료"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한수원 주장의 오류와 말 바꾸기, 자료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 불티 날리는 촉매…한수원 해명은?

□ 수소연소 실험중 PAR 촉매체의 불티가 날리는 위험한 현상 발생
ㅇ 해당 실험은 다양한 실험조건 중 구매규격 이상의 특정 가혹조건(고온촉매체에 살수)에서 수행된 일부 실험의 결과이며, 이상 현상이 발견된 이후에도 PAR의 고유성능(수소제거)에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음 (한수원 국회 보고자료 中)

KBS가 입수한 2011년 수소제거장치 도입 당시 구매시방서는 수소제거장치가 '설계기준사고'와 '중대사고' 환경에서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수원은 설계기준사고 환경으로 '섭씨 182도, 압력 4.9 기압'을 제시했습니다. 중대사고 환경은 따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촉매 가루가 날리며 불이 붙은 독일 실험 환경은 각각 '1.5기압, 섭씨 60도' 그리고 '3기압, 섭씨 25도' 였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시방서에서 요구한 설계기준사고 환경에 비하면 가혹하지 않습니다.

또 시방서에서는 장치가 물이 뿌려지는 '살수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이상 없이 작동해야 한다는 대목도 나와 있습니다. 촉매에 물을 뿌리는 환경이 가혹하다는 한수원 주장에 어폐가 있는 셈입니다.

- 실험시 2단계에서 수소연소가 발생하였으며, 촉매 dust가 확인되었음
※ 촉매 dust 발생원인은 고온의 촉매체와 살수 액적이 접촉함에 따른 촉매 코팅 손상으로 추정됨
- PAR는 하우징 등 구조적 손상없이 건전성을 유지하였음 (한수원 국회 보고자료 中)

한수원은 불티가 인 뒤에도 수소제거장치가 건전성을 유지했다고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KBS가 입수한 한수원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불티 현상이 관찰된 촉매에는 균열과 손상이 관찰됐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KBS는 관련 사진도 입수했습니다. 척 봐도 곳곳에 손상된 부분이 보입니다.


<독일 실험 뒤 손상된 수소제거장치 촉매체>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는 "촉매가 손상됐으면 건전성이 유지 되지 않는 것이다. 장치가 설계된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건전성이 손상된 것"이라며 한수원 입장을 비판했습니다.

■ 낮은 수소 제거율…한수원 해명은?

□ 독일실험시 수소제거율의 구매규격 불만족 여부
ㅇ 수소 제거량이 30~60%로 보도된 실험은 ‘구매규격’ 환경과 전혀 다르며 혼합적, 유동적 조건에서 시행한 실험에서 도출된 결과임 (한수원 국회 보고자료 中)

한수원은 독일 실험에서 수소제거율이 낮게 측정된 것이 구매규격 환경과 전혀 다른 조건에서 한 실험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입수한 독일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이 같은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매 규격상 수소제거장치는 섭씨 60도, 1.5기압 환경에서 초당 0.2g의 수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섭씨 25도, 1.5기압 환경에서 진행된 독일 실험에서 수소제거장치는 초당 0.06~0.07g의 수소를 제거했습니다.

실험에 쓰인 수소제거장치는 원래의 절반 크기였습니다. 따라서 구매규격을 만족하려면 초당 0.1g의 수소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규격의 60~70%의 성능만 나오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한수원의 말 바꾸기…"협소한 시설물"이 "국제적 명성 시설"로 둔갑

KBS는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한수원 측과 접촉해 해명 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수원이 당초 KBS에 내놓았던 해명과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해명이 다른 대목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실험을 진행했던 독일 시설과 실험용 장치에 대한 한수원의 평가입니다.

한달도 채 안돼 '협소한 인공구조물'은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실험시설'이 됐습니다.

KBS 취재에 대한 한수원 해명 자료 中 (2021.1.26.)
-실험에 적용한 PAR의 크기는 구매규격에서 확인한 소형 PAR에 비해 1/2축소 형태이며 실험공간도 매우 협소한 인공구조물
-축소된 공간에서 축소된 장비를 통한 모사실험에서 발생된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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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국회 보고자료 中 (2021.2.15)
-독일에서 수행된 실험은 인허가기준 검증과정이 완료된 PAR 설비를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THAI 실험시설을 통해 다양한 변수에서 격납건물 안전성 여부를 확인 실험…
-한수원 독일실험은 자국의 인허가를 획득한 상용품을 대상으로…추가연구를 위한 것

■"당연히 비밀" 간부의 은폐 지시…입 꾹 닫은 한수원 '앵무새 해명'만
한수원 간부
: 그룹장, 이거 그러면 당연히 비밀이야. 당연히 비밀이야. 지금 뭐 이게 수소폭발로 갈 것인지 아니면 점화해가지고서 화재로 인한 사고로 갈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보고서에 쓸 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가지고 실무자가 쓸 것을 전략적으로 검토하는 측면에서 다시 보란 얘기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지금. (2021.2.3 KBS 보도 中)

이번 KBS 연속 보도의 핵심 중 하나는 한수원 간부의 실험 결과 은폐 지시였습니다.

2019년 5월 소집된 한수원 내부 회의에서 한수원 간부는 실무진들에게 실험 결과를 '비밀'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해당 간부는 그런 적 없다는 입장이지만, 회의 뒤 만들어진 실험 최종보고서에는 '촉매 불티' 문제와 '수소제거율 미달' 문제가 실제로 빠지거나 축소돼 실렸습니다. 의도적 은폐가 의심되는 정황입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 같은 간부의 은폐 지시에 대해서는 취재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껏 "의도적인 은폐나 누락은 아니다", "최종보고서에 종합적으로 요약했다"는 핵심에서 벗어난 입장만 반복해온 한수원. 어제 국회 보고에서도 한수원의 '앵무새 해명'은 되풀이됐습니다.

ㅇ 한수원은 실험 전반에 대해 보고서에 결과를 기술했으며, 의도적인 은폐나 누락은 없었음. 최종보고서는 과제 수행내역 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내용에만 집중해서 작성한 것이 아님 (한수원 국회 보고자료 中)

■한수원 사장 "보안 규정 위반 아닌지 조사" 지시

한수원의 납득할 수 없는 대응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수원은 수소제거장치 실험 결과를 누가, 왜 은폐했는지 조사하기는커녕, 공익신고자에게 압박이 될 수 있는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KBS 보도가 나간 뒤 지난 8일, 한수원에선 정재훈 사장이 주재한 경영간부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 뒤 내부망에 게시된 '사장 지시사항'에는 "수소제거장치 관련 자료 외부 유출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위반한 건 아닌지 보고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유관 부서가 2주일 내에 추진 계획을 작성해 회신하라는 당부도 들어갔습니다. 내부 직원이 공익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징계의 근거를 수집하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되고,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이익 조치에는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 역시 포함됩니다.

한수원은 정 사장의 지시가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하라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수원 홍보실 관계자는 "누굴 찾아내 불이익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정보보안 차원에서 내부 절차를 한번 점검하라는 차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익신고 관련 단체들은 한수원의 이같은 '보안규정 위배 조사'는 공익신고자를 색출하고, 불이익을 주기 위한 대표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합니다. 내부 정보가 유출된 경위를 전반적으로 파악한다면서 징계의 근거를 모으고, 대대적 조사를 통해 추가적인 공익신고를 막으려는 방편이라는 겁니다.

공익신고자 지원단체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영기 변호사는 "보안지침을 위반했다라는 이유로 (공익신고자에게) 징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공익신고와 인과관계가 있다면 직무에 대한 부당감사로서 불이익 조치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한수원은 보안 규정 위반 여부는 조사하면서도, KBS가 보도한 수소제거장치의 문제점이나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정작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KBS 질의에 대해, 한수원은 현재 진행 중인 감사는 없으며 원안위 조사 결과에 따라 감사 진행 유무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공익신고자는 한수원의 부당한 감사나 신고자 색출을 막아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최근 보호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관기사]
‘원전 수소제거장치 결함’ 국회에 엉터리 해명한 한수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18320
한수원, ‘은폐 의혹’ 조사 않고 공익신고자만 압박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18329

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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