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 폭력·코로나 위험 막을 '격벽'.. 버스는 의무, 택시는 하세월
머리 때리고 추행하고.. 기사 안전 무방비
비용·낮은 호응 탓 시범사업 단발성 그쳐
"2024년까지 전면 설치" 공언한 서울시
2020년까지 설치율 0.49%그쳐 공염불 우려
美·加선 격벽 설치 뒤 범죄 80~90% 줄어
"코로나 감염 예방 위해서도 지원 필요"
택시 기사들 설치 재개 요구 목소리 커
2년 경력의 여성 택시기사 이자순(62)씨에게 취객이 많은 저녁은 공포의 시간대였다. 만취한 이들이 길가에 나와 택시를 잡기 시작할 무렵이면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성인 데다 고령인 이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추행을 일삼는 취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씨가 마음 놓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광주시로부터 ’택시 보호 격벽 지원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차량 내부에 보호 격벽을 부착한 것이다. 보호 격벽은 운전석 뒤 혹은 측면을 둘러싸 보호하는 투명 가림막으로, 얇은 아크릴판이지만 효과는 크다. 격벽 설치 후 3개월 동안 이씨의 신체를 건드리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이씨는 “물리적 가림막이 생기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다. 실제 효과도 있다”며 “주변 기사들도 설치하고 싶어하지만 지자체 지원이 아직 많지 않아 아쉽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최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변호사 시절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논란이 되면서 유사한 사건들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택시 내 격벽 설치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취객들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경찰서에서는 ‘흔한 일’로 치부될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만, 택시기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설비인 보호 격벽 설치 지원은 미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택시기사 폭행 막는 안전격벽… 설치는 요원
많은 지자체에서 한때 보호 격벽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서울과 경기, 강원 등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했지만, 대부분 단발성에 그쳤다. 시범사업이 중단된 요인은 비용 부담과 낮은 호응도다. 서울시는 2019년 “2024년까지 시내 모든 택시에 보호 격벽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2019년 250대 △2020년 2500대 △2021년 2만대 △2022년 2만7540대 등 세부적인 설치 계획까지 세웠으나 2019년 236대를 끝으로 멈췄다. 지난해에는 120대에 격벽을 설치했지만, 이는 ‘코로나19 입국자 전용 택시’를 위한 것으로 서울시가 당초 세웠던 계획과는 무관하다. 지난해 서울시 전체 택시가 7만1747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설치율은 0.49% 수준에 그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 한계와 택시기사들의 낮은 호응도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며 “지난해 사업 수립에 앞서 격벽 수요를 파악했었지만 생각보다 수요가 많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운행 중 폭행은 음주운전과 다를 바 없는 중범죄로 봐야 합니다.”
택시 내 안전격벽 설치 지원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은 15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주행 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피해는 비단 기사 한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2차·3차 교통사고로 이어져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택시기사 폭행을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제대로 적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가법에 따라 운행 중인 택시기사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아직 적용 기준이 모호하고 판결 결과 역시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택시기사 폭행 처벌에 관한 법은 이미 마련됐지만 결정적으로 이를 집행할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등이 공정하게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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