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협상 줄줄이 깨진 애플.. 업계 "車 산업, 너무 쉽게 봤다"

연선옥 기자 2021. 2.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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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IT 공룡’ 애플이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에 이어 일본 닛산과도 협의에 실패했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소프트웨어 분야 경쟁력을 과신해 완성차 사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은 기술 공유 없이 위탁생산으로 스마트폰(아이폰)을 만들어 세계 1위 업체가 됐다. 자동차 업계는 차 산업이 아이폰과는 근본적으로 생태계가 다른 데다, 길게는 100년 넘게 차 산업을 이끌어온 기존 업체가 단순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애플카 생산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닛산과 자율주행 전기차 생산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애플' 브랜드 사용과 관련해 이견이 커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됐다. 앞서 애플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애플카 생산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대차(005380)는 지난 8일 "애플과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애플 로고./AP

이후 미 IT전문매체 애플인사이더는 8일(현지시간) 애플과 파트너십을 맺을 가능성이 가장 큰 업체로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을 꼽았지만,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14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인 애플과의 경쟁이 "두렵지 않다"고 밝혀 양사가 협력보다는 경쟁하는 관계가 될 것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는 "자동차 산업은 한 번에 인수할 수 있는 일반적인 기술 분야가 아니다"라며 "애플이 하루아침에 (애플카 생산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애플과 완성차 업체가 손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애플이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려면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애플이 만들 완성차는 내연기관 엔진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전기차로, 전장(電裝·자동차 전자장치) 부품과 소프트웨어, 배터리 기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완성차를 만들기 위한 전문 기술과 생산 능력을 확보해야 하고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래픽=박길우

문제는 극한 수준의 비밀주의를 고집하는 애플이 기술 분야에서는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술 공유가 전제되지 않는 협력 관계에서 완성차 업체는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과 같이 단순 위탁생산 업체가 될 수밖에 없다. 애플의 잠재적 협력 업체로 거론되는 글로벌 차 업체 중 이를 받아들일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앞서 테슬라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협력을 타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폭스바겐과 협력 논의를 위해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CEO를 만났지만 무산됐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위원은 "단순히 자동차를 위탁 생산할 협력 업체를 찾는다면 경영난에 빠진 쌍용차(003620)를 인수해 애플카를 생산하면 되지만, 애플은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만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며 "차를 생산할 기술이 없는 애플이 이렇다 할 카드를 내밀지 않고 협력에 나서니 협상이 줄줄이 결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는 완성차 업체가 만들고 애플은 내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정도만 담당해 애플카를 생산할 가능성이 큰데 이를 반길 차 업체가 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탑승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애플이 아이폰 생산 방식을 애플카 생산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조차 전통 완성차 업체와 비교하면 안정성이나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은데, 인포테인먼트나 자율주행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애플이 상당한 품질의 완성차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멕시코 아과스칼리엔테스에 있는 닛산 생산 공장./닛산 제공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화재 사고가 발생한 테슬라의 모델X의 경우, 문을 여는 손잡이가 숨겨져 있는 일명 ‘히든 도어 시스템’이 도입됐고 시동이 꺼지면서 수동으로 문을 열지 못해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기존 완성차의 경우 충돌이 발생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인 안전 사항"이라며 "수십년간 자동차를 생산한 완성차 업체에는 당연한 안전 규정이 신규 업체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 역시 "완성차 산업은 유럽에서 130년, 미국에서 30년, 아시아로 넘어올 때 30년이 걸린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이다. 다임러와 같은 전통적인 업체도 전기차를 만들 때 주행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애플이 자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과 완성차 업체 간 협상이 줄줄이 깨지면서 애플이 5~6년 전 BMW, 다임러와 협력을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애플은 고도로 네트워킹된 부분 자율주행 전기차를 공동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 BMW, 다임러와 협상을 벌였지만, 프로젝트 지휘권이나 이미 확보한 고객 데이터 이용, 애플 아이클라우드 역할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좌초됐다. 2015년 BMW가 먼저 발을 뺐고 이듬해 초 다임러도 협상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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