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결과 못 믿겠다" VS "코로나를 정치화"..미·중 2차전?
미국 CNN방송이 현지시간 2월 14일, WHO 조사팀을 이끈 페터 벤 엠바렉 박사를 인터뷰 했습니다. 엠바렉 박사는 WHO의 식품안전·동물질병 전문가로, 최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관련 조사를 마치고 WHO 본부로 돌아왔습니다.
엠바렉 박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줍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 이미 코로나19 감염증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정황을 찾았다는 겁니다.
또 13종의 유전자 서열이 서로 다른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도 했습니다.
우한 조사를 마치고 지난 9일 중국에서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할 때도 "코로나19 감염증이 우한에서 12월에 처음 발병한 것은 아니었다"고 언급했지만 이처럼 구체적으로 정황들을 말한 건 처음입니다.
■"코로나 19 이미 2019년 12월 이전부터 확산"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CNN은 엠바렉 박사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이 2019년 12월 말 코로나19 확진 보고를 하기 이전부터 우한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확산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호주 시드니대학의 감염병 전문가 에드워드 홈스 교수를 인용해 "기존의 2019년 12월 이전에 인간 감염이 발생했다는 분석과도 들어맞고, 우한의 화난 수산시장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전에 수수께끼 전파 기간이 있었다는 분석과도 일치한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중국에 의심의 눈초리… "우리가 찾을 것" 시사
앞서 지난 9일 WHO 조사팀은, 중국 우한이 바이러스의 기원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 전 미 행정부가 주장해왔던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감염증 유행 직후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에 '감염병 대확산의 책임'을 지우려 했었고요. 당시 국무장관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역시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실제로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처음 보고됐던 만큼, 중국에서 '단서'가 나올 것이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WHO 조사팀의 결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과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바이든 새 행정부에도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시간 9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이번 조사의 계획과 실행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조사 결과와 근거 데이터를 독립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한다”고 말했 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WHO 전문가들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협조를 받은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며 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중국이 관여한 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나서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13일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나서서 "초기 코로나19 조사와 관련한 의견 교환 방식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다"고 성명에 밝혔습니다. "중국은 (대유행) 발생과 관련해 초기 자료들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도 주장 했습니다.
■서방 언론들, WHO 조사 결과 잇단 비난
서방 언론들 역시 중국을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앞서 WHO 조사팀 발표에 대해서 “(이번 결과가) 중국에 홍보전 승리를 안겨줬다” 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반응을 전했습니다. “증거가 공개되면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이 제공한 정보만 검토했다면 판단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미 스탠퍼드대학 미생물학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WHO 조사팀의 결과에 의심을 드러냈습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도 WHO 조사팀이 중국에 입국한 뒤 공무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귀빈처럼 안내를 받고 다녔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공정한 조사와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지적했고요.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정부가 우한이 아닌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2019년 12월 이전에 이미 코로나19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원시 자료를 제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 했습니다.
여기에 CNN의 '2019년 12월 이전 우한 확산' 보도까지 나오면서 지금껏 제기됐던 '중국 기원설' 과 '증거 은폐설' 등에 또다시 힘이 실리는 상황입니다.
CNN의 보도대로 2019년 12월 이전에 우한에 광범위하게 코로나 19 감염증이 퍼져 있었고 이미 유전자 서열이 다른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13종이나 출현한 상태였다면, 우한 이외에 다른 중국 지역에서 2019년 12월 이전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가설 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 "코로나19를 정치화" 발끈…미·중 '2차전' 돌입
미국 정부의 주장과 서방 언론들의 보도에 대해, 중국은 당국의 반박에 이어 최근에는 관영 매체 들까지 반격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계속 미국 대중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습니다.
두 매체는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해 "여론 조작으로 WHO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인들에게 코로나19를 정치적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대해서는 글로벌타임스가 별도의 기사까지 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WHO의 조사 결과가 자신들의 생각과 달라지자, 뉴욕타임스 등 일부 서방 언론이 중국에 대한 음모론을 과장하기 위해 거짓 보도를 했다며 WHO 조사팀조차 뉴욕타임스 의 관련 보도를 비난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두 매체는 특히 바이든 행정부까지 트럼프 행정부와 비슷한 의구심을 보이자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입니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이전과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중국과 코로나19와 관련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과거 정책과 거리를 두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자기 모순적인 행동은 분명하고 단호한 정책을 만들어야 할 현 행정부의 능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과학과 합리성의 권위는 미국에서 점점 사라지고, 욕구가 종종 진실을 앞서고 있다"면서 "이것이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가장 큰 신호"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WHO의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다음주 중에 우한 조사팀의 현장 조사 보고서 요약본이 나오고 몇 주 안으로 보고서 전문이 완성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인간에게 전염이 시작됐는지 등이 미궁인 상황에서 곧 나올 WHO 조사 결과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의 '코로나19 2차 라운드'를 막을 수 있을까요?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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