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금감원[광화문]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금융회사들은 ‘괴물’이라 부른다. 애초엔 ‘반인반수’처럼 ‘반관반민’이라는 조직적 특성에서 연유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칼을 휘두르는 모양새를 보고 그리 말한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가 바라보는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제범위 밖이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이야기다.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판 은행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를 최근 사전 통지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전 우리은행장)에겐 ‘직무정지(상당)’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겐 ‘문책경고’를 통보했다. 영업행위를 하지 않는 지주회사의 수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에게도 경징계(주의적 경고)를 하겠다고 했다.
중징계는 예정된 수순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라임 사모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들을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중징계했다. 자본시장법의 불완전판매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죄목’이었다. 이런 전례가 있는 데다 주요국 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보다 라임 사태의 파장이 더 컸다.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선 금감원은 중징계 외엔 퇴로가 없었다.
주목할 점은 금감원이 일부 CEO의 제재를 위해 지난해 법적 근거로 삼은 지배구조법뿐만 아니라 자본시장법을 끌어왔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손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에게 DLF 사태 관련 문책경고를 때리면서 자본시장법 대신 지배구조법을 들이대 “법적 근거가 미미하다”고 비판받았다. 중징계하기로 정해놓고 법을 꿰맞췄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감원장은 ‘주의적 경고, 주의’ 등 징계밖에 할 수 없다. 중징계는 금융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반면 지배구조법은 금감원장 전결로 중징계가 가능하다. 금감원이 지배구조법을 적용하면서 ‘금융위 패싱’ 논란까지 일었다. 이젠 그 법에다 자본시장법을 보태면서 최종적인 징계수위는 금융위가 정한다. 원안대로 가든 경감하든 뒷감당은 금융위의 몫이다.
금감원이 이렇게 한 데는 여러 요인이 반영됐을 것이다. 손 회장 재판부가 ‘지배구조법에 따라 은행 임원을 징계할 권한이 원칙적으로 금융위에 있다’고 지적한 점, 판매시기가 겹치는 상품을 내부통제 미흡으로 중복 제재하는 것에 대한 법적 시비가 불가피한 점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금감원장 전결로 문책경고를 시도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옳고 그름과 별개로 중징계는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징계수위(직무정지 4년, 문책경고 3년)에 따라 금융권에 취업을 못한다. 재판결과를 일단 배제한다면 손 회장은 연임이 어렵다. 조 회장의 뒤를 이을 유력후보 중 한 명이었던 진 행장도 경쟁에서 탈락할 처지다. 지난해 중징계 여파로 함 부회장도 회장직 승계가 불투명해졌다.
금감원은 CEO를 중징계한 효과가 적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금감원 의도대로 키코 손실을 배상했고 DLF와 라임 사태에서 금감원의 분쟁조정 권고를 따랐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의 행동을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직접 개입한 게 됐다. 금융권은 금감원발 ‘금융회사 지배구조 재편’의 저의를 의심한다.
어느 금융회사든, 어떤 기업이든 CEO 자원은 많지 않고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인적 자원을 쳐버리면 ‘어쩌다 CEO’들이 양산될 것이다. 경영권 불안정과 조직의 분열이란 부작용도 따를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수장이 갈릴 때마다 ‘어쩌다 금감원장’이 된 이들로 인해 주류와 비주류가 뒤집어지고 조직이 망가지는 경험을 이미 해보지 않았는가.
모든 권력은 규율을 필요로 한다. 절제 없는 권한의 사용은 역풍을 맞는다. 기획재정부가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던 움직임이 단적인 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인적 처벌보다 불완전판매를 한 금융회사가 시장에서 존재할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전감독을 강화해 재발을 막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금감원이 할 일은 독립과 자율이 아니라 쇄신과 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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