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당 29표' 쿠팡이 다시 불지핀 '차등의결권' 논란

김영배 2021. 2.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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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2%로 58% 영향력 행사 가능
'복수 의결권' 국내법에선 인정 안 해
벤처 한정 '10배 의결권' 법안 국회 제출
시민단체 "지배구조 개선 포기" 반발
미·중·싱가포르 등은 제한적 허용
"대립 벗어나 사회적 논의를" 주장도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왼쪽)과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 쿠팡 제공

한국 쿠팡(주식회사) 모기업인 미국 쿠팡(유한책임회사·LLC)의 미 증시 상장 추진이 ‘차등의결권’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쿠팡이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S-1)에서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것으로 나타난 게 계기다.

김 의장 보유 주식(클래스B)의 1주당 의결권은 일반 주식(클래스A)의 29배에 이른다. 지분을 2%만 가져도 58%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1주 1개 의결권 원칙을 따르는 국내 법체계에선 불가능한 일이어서 유력한 전자상거래 업체를 미국 증시에 뺏겼다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

차등의결권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1주당 1개 미만 의결권을 부여하는 ‘부분 의결권’과, 2개 이상 의결권을 주는 ‘복수 의결권’이다. 넓은 의미의 부분 의결권에 해당하는 무의결권은 지난 2011년 국내 상법에 도입·허용돼 있다. 몇몇 회사는 이를 정관에 도입까지 했지만, 실제 발행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돼 있다.

논란의 대상은 복수 의결권이다. 현행 국내법에선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1주 10의결권의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작년 12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정부 입법안인 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줄곧 추진하던 방향이라 국회 통과가 유력해 보인다.

설 연휴 마지막날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건물 앞에 쿠팡 배송 차량이 세워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경제개혁연대는 법안 제출 당시 논평에서 “상법 개정에서 후퇴한 데다 복수 의결권 도입까지 강행하는 것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고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정부 입법안의 철회를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15일 다시 논평을 내어 “복수의결권 주식은 우리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인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는 제도”라며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수의결권 때문에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쿠팡은 애초 미국에 설립된 회사이며 오래 전부터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해왔다”고 반박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벤처에 한해 허용한다는 약속이 지켜진다면 그나마 문제가 크지 않을지 몰라도 결국 허용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상장할 경우 3년 후엔 복수 의결권을 풀게 돼 있다. 그렇게 되면 창업자의 의결권이 확 줄게 될 테고, 언론에선 ‘외국 기업에 다 먹힌다’는 식으로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법안에서 복수 의결권 주식의 보통주 전환을 상장 이후 3년까지 미룰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자본시장연구원의 남길남 연구위원도 “애매한 상황으로 이어져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의 상장을 모두 인정할 것인지, 공시 수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갖가지 이슈가 불거질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 입법 추진과 별도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거래소 상장 규정을 통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논란을 가열시킬 요인이다. 2004년 구글 상장 때 복수 의결권을 인정받은 뒤 기술(테크) 기업 위주로 사례가 늘고 있다. 남길남 위원이 지난해 11월 낸 보고서를 보면, 미국 전체 기업공개(IPO) 사례 중 차등의결권 기업 비중은 1980~2019년 8.6%였는데, 최근 5년(2015~2019년)간 비중은 20.4%에 이른다.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도 차등의결권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고 있다.

김우찬 소장은 “미국에서도 학계 인사들은 차등의결권에 대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하향 평준화’이고 ‘바닥을 향한 질주’(racing to the bottom)라며 굉장히 나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홍콩에선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 상장 이후 도입했지만, 아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실은 글에서 “국내에선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며 “여기에 복수 의결권까지 허용한다면 소유-지배의 괴리 문제가 더 커지고 재벌 3세, 4세로 세습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길남 위원은 전면 허용 또는 전면 금지 식의 대립에서 벗어난 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흐름도 봐야 하고, 재벌의 세습 문제라는 사회적 맥락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남 위원은 “홍콩도 차등의결권의 부분적 허용까지 3~4년에 걸친 사회적 논의를 거쳤다”며 “무조건 된다, 안 된다는 식의 대립보다는 어떤 게 가능한지, 허용할 수 있는 형태는 뭔지, 허용 안 한다면 어떤 부담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차등의결권은?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 의결권, 1개 미만을 부여하는 부분 의결권,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이 증가하는 테뉴어보팅(tenure voting), 무의결권 등 1주 1의결권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내에선 2011년 상법에 무의결권을 도입·허용했으나 실제 발행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그외 차등의결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정부 입법안(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개정안)에선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1주 10의결권의 주식 발행을 허용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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