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위안부 판결, 아쉬운 강행규범 적용 논리 / 박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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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국제법 용어나 법리조차 이제 국민의 상식과 교양이 되고 있다.
지난 1월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 함께 '주권면제'니 국가의 '주권적 행위'니 '강행규범'이니 하는 생소한 말들이 국민 곁으로 다가왔다.
이탈리아는 자국민을 강제노역에 처한 독일군의 행위를 주권적 행위로 인정하면서도 강행규범 성격의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기 때문에 독일의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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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실
전 주모로코 대사·미국 변호사
낯선 국제법 용어나 법리조차 이제 국민의 상식과 교양이 되고 있다. 지난 1월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 함께 ‘주권면제’니 국가의 ‘주권적 행위’니 ‘강행규범’이니 하는 생소한 말들이 국민 곁으로 다가왔다.
주권면제 원칙상 국가는 주권적 행위로 인해 강제로 타국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 ‘주권적 행위’란 국가의 주권적 권한을 행사하는 행위다. 국가만 행할 수 있는 국유화 조치, 범죄자 처벌 등과 같은 행위다. 하지만 1월 판결에서 재판부는 “일본의 행위가 주권적 행위라 할지라도,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권을 면제하게 되면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게 한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제재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해 권리를 구제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판결은 일본의 행위를 일단 주권적 행위로 인정하고, 다만 강행규범 위반이기 때문에 꼭 제재가 확보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강행규범의 성질상 더 나아가 강행규범을 위반한 행위가 주권적 행위가 될 수 있는지 분석해보아야 한다.
‘강행규범’은 전체 국가로 구성되는 국제공동체에 의해 승인된 보편국제법으로서 이탈이 허용되지 않는 상위의 절대규범을 말한다. ‘이탈이 허용되지 않는’의 의미는 국가들이 그 보편국제법에 위반되게 합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합의는 처음부터 무효다. 즉 모든 국가가 자신의 주권적 권한을 포기해 어떤 보편국제법이 형성됐고, 또한 이탈이 허용되지 않는 강행규범으로 성립했으므로 국가는 이제 이를 위반할 수 있는 주권적 권한이 없는 셈이다. 주권적 권한이 없으면 주권적 행위를 할 수 없다. 따라서 강행규범 위반행위가 실제 행해졌다면 그 행위는 없는 권한을 행사한 것이므로 주권적 행위 자체가 될 수 없다. 노예무역·노예제나 제노사이드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행위, 침략행위 등이 강행규범 위반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국가들의 주권적 행위, 즉 합법화로 시행됐던 노예무역·노예제가 추후 금지되면서 그 금지는 보편국제법으로 형성됐고, 또한 국가들의 금지의무 준수와 그에 대한 믿음으로 이탈이 허용되지 않는 강행규범으로 성립했다. 즉 국가는 노예무역·노예제를 다시 합법화할 수 있는 주권적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됐다. 주권적 권한이 없으므로 주권적 행위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를 실제로 행했다면 없는 권한을 행사한 것이므로 그 행위는 주권적 행위가 될 수 없다. 주권적 행위가 될 수 없으므로 주권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페리니 사건’에서 강행규범과 주권면제 간의 관계를 다루었으나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자국민을 강제노역에 처한 독일군의 행위를 주권적 행위로 인정하면서도 강행규범 성격의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기 때문에 독일의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소는 먼저 심각한 국제법 위반행위가 주권면제를 배제한다는 명시적인 국제법 규칙이 없고 각국의 실행도 거의 없다는 이유로 독일의 주권면제를 인정했다. 이어 재판소는 “강행규범은 실체규칙이고 주권면제는 절차규칙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아 강행규범 위반으로 주권면제가 영향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행규범을 위반한 행위가 주권적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밝혀 둘의 관계를 분석했어야 한다. 국가의 행위가 주권적 행위에 해당하는지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다는 영미권 학자들의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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