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울컥.."  여성 심장병 증상은 남성과 다르다

권대익 2021. 2. 16.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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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서 듣는다]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여성도 협심증이나 급성심근경색 등 심장 질환에 많이 노출되지만 가슴통증 등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관상동맥)이 좁아져 심장근육 일부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심장병이 발생한다. 이 같은 심장병은 대부분 남성에게서 발생하는 ‘남성의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가슴 통증을 느끼더라도 협심증ㆍ급성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장 질환(ischemic heart disease)’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심장 질환 증상은 전형적이지 않은 것이어서 골든 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심장 질환의 증상은 가슴이 울컥하거나, 체한 것 같거나, 토할 것 같은 느낌 등 일반적인 심장 질환 증상과 다르다”고 했다. 박 교수는 대한심장학회 산하 여성심장질환연구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여성 심장 질환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여성심장센터 개소를 앞두고 있다.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심장 질환은 남성보다 예후가 좋지 않은데.

“현재까지 알려진 임상 데이터를 살펴보면 여성 심장병, 특히 허혈성 심장 질환의 경우 여성의 예후가 남성보다 좋지 않다. 우선 비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여성이 많은 데다 환자와 의료진이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허혈성 심장 질환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치료법이나 약물 용량도 남성에 비해 소극적인 치료를 받는다. 또 여성의 경우 관상동맥조영술(다리나 팔에 있는 동맥을 통해 심장의 관상동맥까지 미세한 관을 넣고 조영제를 주입해 관상동맥이 막혔는지 확인하는 검사)로는 진단할 수 없는 미세혈관협심증이나 비협착 심근경색이 많이 발생한다.

심장 관상동맥의 가지인 미세혈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미세혈관협심증이라면 일반적인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면 정상으로 보인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젊은 여성의 사망률은 같은 나이의 남성보다 두 배나 높다.

또한 여성의 경우 심장 기능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호흡곤란이 발생하는 ‘좌심실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이 많이 발생한다. 좌심실 박출률은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심장의 좌심실에서 내뿜는 혈액 비율(정상적인 좌심실 박출량은 55~60%)로 심장이 혈액을 온몸에 얼마나 잘 공급하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좌심실에서 내뿜는 혈액이 정상적인 좌심실 박출률 보존 심부전은 전체 심부전의 절반을 차지한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률이 여성에서 유의하게 증가하고 있기에 남녀 간 심장 질환 차이를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심장 질환이 폐경과 관련이 있나.

“폐경 후 여성에서 심장 질환 위험 인자(고혈압ㆍ당뇨병ㆍ이상지질혈증 등)가 생길 위험이 높아지면서 심장 질환도 크게 늘어난다. 심장 질환을 치료한 뒤에도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평소 심장 질환 위험 인자를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폐경 전인 젊은 여성이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젊은 여성도 흡연과 경구피임약 복용 시 심장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조기 폐경이나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앓거나, 조기에 난소제거술을 받았을 때도 여성호르몬 감소와 함께 심장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젊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홍반성낭창(루푸스)ㆍ류마티스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도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여성 심장 질환이 생기면 전형적인 증상이 아닌 다른 증상이 나타나는데.

“심장 질환의 전형적인 증상은 빨리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 신체 활동을 할 때 가슴이 죄는 듯이 뻐근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심장 질환 증상은 ‘가슴이 울컥하다’ ‘답답하다’ ‘체한 것 같다’ ‘토할 것 같다’ ‘숨이 차다’ ‘피곤하다’ 등 다양하다. 실제 한국 여성 가운데 협심증이 의심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남성은 왼쪽 가슴을 죄는 듯한 증상을 주로 호소했지만, 여성은 주로 가슴 중앙이나 명치가 답답한 증상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여성이 심장 질환에 노출돼도 제때 적절한 진료와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장 질환이 발생했을 때 골든 타임을 지키려면.

“대표적인 허혈성 심장 질환인 급성심근경색(acute myocardial infarction)이 생겼을 때 발생 3시간 이내에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면 생존율이 23%, 1시간 이내라면 50% 정도가 된다. 흉통이 생길 때 즉시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장 질환의 경우 성별 차이가 크므로 빠르고 정확한 감별과 조치를 위해 남녀 간 기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의료선진국에서는 성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는 50세 이상 여성이 어떤 형태로든지 흉통을 호소한다면 허혈성 심장 질환 위험이 중증도 이상인 것으로 판단해 심장 검사를 시행한다. 우리도 한국 여성에 맞는 진단ㆍ치료 지침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심장 질환을 예방하려면.

“평소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은 적정 체중과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흡연이나 경구피임약 복용 등을 되도록 피하고, 정기 검진으로 고혈압ㆍ당뇨병ㆍ이상지질혈증 등 심장 질환 위험 인자를 관리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관절 질환이 생기고 근육량이 감소하면서 동반 질환에 의해 심장 질환이 악화할 때가 많으므로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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