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친일=반민족' 등식은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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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민원식(1886.7.12~ 1921.2.17)의 정치적 신념과 지향, 관료로서 그가 판단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한계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식민과 독립을 불의와 정의로 이분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제의 관료였던 그는 선명한 친일파였고, 독립의 타당성마저 부정한 만큼 매국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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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민원식(1886.7.12~ 1921.2.17)의 정치적 신념과 지향, 관료로서 그가 판단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한계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식민과 독립을 불의와 정의로 이분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제의 관료였던 그는 선명한 친일파였고, 독립의 타당성마저 부정한 만큼 매국노였다.
하지만 그는 조선 문벌의 무능과 부패, 낡은 신분 세습제에서 비롯된 층층의 차별이 온존하는 상태에서의 독립은,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최고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노비 백정의 자손도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방관료 시절 직접 야학당을 지어 문맹 타파에 힘썼다. 그렇게 자립, 자치의 민족적 실력을 쌓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확장해가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에 대해서도 자신의 권한으로 다룰 수 있는 일이면 직접 시정했고, 그게 불가능할 땐 총독부와 일제 의회에까지 청원하며 개선하고자 했다. 위 글에서 나는 권력에 아부하며 출세를 도모하거나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추구하지도 않았던 그를, 여느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민족의 진취적 미래를 추구하고 염원했던 그를, 단순히 '친일파'라고 제쳐 두는 건 부당하다고 썼다.
'독립운동가' 양근환(1894~1950)은 조선인 참정권·자치권 청원 서명을 제국 의회에 전달하기 위해 도쿄에 간 그를 '민족의 독립심을 와해, 분열시키는 매국노'라며 칼로 찔러 살해한 인물이다. 그는 무기형을 선고받아 11년 옥살이 끝에 1933년 출소했고, 해방 후 한민당 창당과 우익운동에 가담하며, '혁신탐정사'라는 "건국 도상에 장해가 되는 일체의 불순분자 소청(掃淸·청소)을 목적"으로 한 단체를 설립해 총재를 지냈다. 한마디로 우익 테러단체였고, 그는 실제로 송진우, 여운형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미군정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 그는 한국전쟁 와중에 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했고,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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