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앞 1m'가 집이었던..리트리버 이야기

남형도 기자 2021. 2.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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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예뻐서 입양했다 말썽부린다며 좁은 펜스에..새 보호자 만나 행복한 삶, "그게 최고의 복수지요"
화장실 앞 자그마한 공간, 골든 리트리버 찬란히가 5개월 간 머무른 곳이 그랬었다./사진=독자 제공

화장실 앞 반경 1m 남짓한 공간.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더는 못 가는 좁다란 곳. 골든 리트리버 '찬란히(이름)'가 5개월 동안 살던 첫 집은 그랬다. '첫 집'이라 했으니,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단 뜻이리라.

꼬물이 때 귀엽다고, 잘 모르고 데려왔다가…
첫 주인에게 붙여진 이름은 '딕씨'였고, 말썽을 부린단 이유로 이렇게 철제 펜스 안에 갇혀서 지냈었다고./사진=독자 제공
첫 주인은 새끼 때 찬란히를 데려왔다. 그 때 이름은 '딕씨'였다. 한창 꼬물이 때니 얼마나 작고 귀여웠을까. 그런데 그 이후 벌어질 일을 주인은 짐작하지 못했다. 미리 알았어야 할 일을, 데려온 뒤에야 덜컥 알아버렸다.

찬란히는 생각보다 더 커졌고, 생각보다 더 말썽을 부렸고, 생각보다 더 많이 먹고 쌌으며, 생각보다 털이 많이 빠졌다. 그건 찬란히 잘못이 아니었다. 녀석은 리트리버였고 원래 그런 거였다. 리트리버답게 잘 크고 있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찬란히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화장실 앞 1m 공간에 갇혀 지냈다. 한창 뛰어 놀아도 모자란 나이, 그 덩치에 오죽 답답했을까.

새 주인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 살던 찬란히에게도,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생겼다.

지난해 11월 3일, 찬란히는 귀한 이를 만났다. 홍이(시츄, 12살)와 진이(사모예드, 12살), 행복이(진도믹스견, 6살)를 강릉서 잘 키우는 보호자였다. 줄여서 '홍진행복이네'라 하겠다.

홍진행복이네는 찬란히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했다. "아이가 너무 말랐었다"고. 그래서 녀석을 좋은 곳에 보내주고 싶었다. 타이밍이 맞아, 찬란히 견주도 키우는 걸 포기한다고 했다. 입양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찬란히는 견주 지인의 집 앞 마당에 묶여 지냈다. 바닷 바람이 세서 추웠다.

홍진행복이 보호자는 찬란히를 당장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집엔 이미 세 녀석이 있었다. 특히 노견인 사모예드 진이와의 합사가 걱정이었다.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다행히 찬란히가 입양가기 전까지 녀석을 보호해 줄 '임시보호처'를 찾았다. 대구에 있는 곳이었다. 2~3일 뒤엔 그리로 가게 돼 있었다. 이동 봉사를 해줄 사람도 찾았다.

화장실 앞에서 살았단 걸 알고, 화내준 사람
그리 기다리던 와중에 홍진행복이네는 찬란히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됐다. 입양 보낼 곳을 찾으려 견주에게 사진을 받은 덕분이었다. 사진 속 찬란히는, 화장실 앞에서 살고 있었다.

그날 밤, 홍진행복이네는 찬란히를 집에 데려왔다.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단다. 다른 녀석들과 합사가 힘들어도, 화장실 앞보단 나을 거라 여겼다.

그 때부터 찬란히는 홍진행복이네에서 머물렀다. 합사도 다행히 잘 됐다. 그러면서 평생 함께할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찬란히가 처음 왔을 때 모습은 이랬다. 우선 많이 말랐었다. 배변을 많이 본다고 첫 주인이 사료양을 조절해서였다. 발바닥과 발톱은 애기 때 모습 그대로였다. 산책을 많이 해보지 않은 거였다. 찬란히는 홍진행복이네서 불과 4일 만에 달라졌다. 비로소 웃었고, 꼬리도 살랑댔고, 배도 뒤집고 잤단다.

마침내, 찬란히는 새 보호자를 만났다
고된 날들에 대한 보상일까. 찬란히를 평생 품어주겠단 새 보호자도 나타났다.

당초 찬란히를 대구 임보처까지 이동 봉사해주겠다던 수민씨였다. 이제 홍진행복이네서 임시 보호를 하고 있으니, 이동 봉사할 일이 없어졌음에도 그는 녀석을 보고 싶어했다.

경기도 가평서 사는 수민씨는, 찬란히가 있던 강원도 강릉까지 소고기를 들고 찾아갔다. 굶주렸을 아이에게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찬란히와 잠깐 놀아주고 돌아갔다.

다음 날, 수민씨는 찬란히를 입양하고 싶단 뜻을 전했다. 홍진행복이네와 수민씨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 다시 버려질까 싶어서. 수민씨는 진심이었다. 마음을 많이 쓰는 게 보였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5일, 찬란히와 수민씨는 평생 가족이 됐다. 찬란히는 그저 주인이 아닌, 보호자를 처음 만났다. 보호자와 주인은 다른 것이다.

찬란히가 전하는 말, "부디 함부로 키우지 마세요"
표정이 많이 달라진 골든 리트리버 찬란히. 강아지도 웃는 표정이, 행복해하는 얼굴이 다 있다. 오랜 키운 이들은 그걸 다 안다./사진=독자 제공
수민씨네 가족 품에서 찬란히는 달라졌다. 비로소 잘 살게 됐다.

친구들과 뛰어 놀고, 캠핑도 가고. 가족들과 맘껏 좋아하는 물놀이(리트리버종이 좋아함)를 하다, 나란히 앉아 고구마도 먹고. 말썽을 부려도 새 보호자는 나무라지 않는단다. 커 가는 과정을 이해해서다. 그리 찬란히는 새 가족을 만난지 불과 보름도 안 돼 표정도 좋아졌고, 살도 많이 쪘단다.

녀석이 제 2의 삶을 살도록 준 홍진행복이 보호자는, 지난달 찬란히의 첫 주인에게 연락했다. 찬란히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사는지, 사진과 영상을 그에게 전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찬란히를 위한 최고의 복수는, 녀석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며.

"화장실 앞에서 살아야 하는 개는 없어요. 찬란히는 지금 평생 가족과, 세상 어느 강아지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요. 다음에 또 개를 키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포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개였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야기. 찬란히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랬다. "부디 저를 함부로 키우지 마세요. 제발 저에 대해 잘 알아보고, 또 살펴보고, 재차 확인하고요. 그러고도 자신이 있을 때, 환경이 될 때, 능력이 가능할 때, 그리고 뭣보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데려와주세요."

(위 움짤 설명)찬란히는 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홍진행복이 보호자를 보자마자 알아보고는, 신나서 반기고 뛰어다니고 난리였다. 잠깐의 정(情)을 주었음에도 금세 알아보는 녀석들. 함께하는 이에게 마음을 주는 게 그렇다. 그런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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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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