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고레에다 감독과의 交感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듬해였다. 왓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들고 강릉영화제에 참석하는 그를 인터뷰할 사람으로 나를 섭외했다. 여러 해 전 그의 책을 번역했던 게 인연이 됐다.
만사를 제쳐두고 인터뷰 준비를 했다. 인터넷에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신작 관련 자료가 차고 넘쳤다. 서양 배우들과 프랑스에서 찍은 그 영화를 두고, 일본의 여러 언론은 “프랑스에서 촬영한 소감은 어떤가” 같은 대동소이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우리 인터뷰를 볼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해줘야 하니, 나라고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낡은 질문들이 감독을 피로하게 만들까 봐 두려웠다. 각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생생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인터뷰 당일, 강릉 시내의 한 카페에서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카트린 드뇌브, 쥘리에트 비노슈와 같은 대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했냐”는 진부한 질문에도 그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진지하게 답해줬다. “주인공이 늘 가지고 다니는 삼각형 물건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진짜 뭔지 알고 싶어요?” 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정답은 삼색 형광펜이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대한 첫 기억’을 물었을 때 그는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거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 집에 있었던 작은 필름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설날에 신사에 가려고 카메라를 찾았더니 사라지고 없어 가족 모두가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고 했다. 그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처럼 돈이 궁한 아버지가 전당포에 맡겨버렸던 것이다. “아픈 기억이네요” “슬픈 추억이죠” 하며 우리는 쓰게 웃었다. 그 순간 그와 나 사이에서 인터뷰라는 의례의 장막이 사라졌다. 어떤 ‘감정’이 오갔다. 우리가 대화를 나눴구나, 비로소 생각했다. 인생에 다시 없을 멋진 순간이었다. 이지수 번역가 ·'아무튼, 하루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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